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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2 - 4부 ㅣ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평점 :
키케로가 집정관으로 취임한 때는 심각한 경제 불황이 한창이었다. 경제는 그의 전문분야가 아니었기에, 상당한 부담감을 안고 임기를 맞이했다. 그는 수석 집정관으로서 로마의 황금 번영기를 안겨주었다는 평가와 차석 집정관 히브리다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임기를 마치기를 바랐으나 쉽지 않을 듯 보인다.
로마의 경제 문제는 동방에서 비롯됐다. 20년 동안 미트리다테스 왕이 그 땅을 정복했고, 이어서 술라의 독재가 개입되면서 기사 계급이 혜택을 볼 수 없었다. 더하여 해적 문제까지 동방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의 장애물이 되었다. 거기다 세르토리우스와의 전쟁과 연이은 가뭄으로 히스파이나에서까지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로마는 지중해 양쪽 끝의 지역에서 사업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요인으로 20년간 자본과 투자가 로마와 이탈리아에 집중되어 대출 금리와 집세가 낮은 반면 물가상승률은 높아졌다.
그런데 폼페이우스가 로마 대외 경제의 막힌 혈관을 뜷어버린 것이었다. 해적을 소탕하고 미트리다테스를 몰아내면서 무수한 사업 기회가 동방에 열리게 됐고, 이에 따라 이탈리아 내에 묶여 있던 자본이 밖으로 흘러나갔다. 그 결과 금리가 급등하고, 고리대금업자들이 묵은 빚을 회수하기 시작하자 신용경색이 있어났다. 또한 도시에서는 집세가 치솟았고, 농부들은 대출금을 상환하느라 돈에 쪼들릴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곡물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정부는 한꺼번에 몰아닥친 이 상황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키케로의 불운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차치해두고, 키케로는 자신의 주종목인 법률 분야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뇌물수수 금지법, 법무관급 총독의 집정관 선거 부재중 출마 금지법 등 법류를 제정했으나 이러한 자잘한 법안으로 그의 명성을 높이기는 힘들었다. 집정관으로서의 명성을 얻기 위해서 키케로에게 필요한 건 국가적 위기였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위기가 임기 후반에 왔다.
키케로가 카틸리니의 전면적 부채 탕감 공약 사건에 집착하는 이유는 지위가 갖는 소명의식도, 애국심도 아니다. 그는 공화국을 구한 인기 스타의 반열에 올라가 자기의 명예를 높이고 싶었을 뿐이다. 키케로도 별 수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