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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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수아즈 사강이 바라보는 사랑과 권태를 담은 단편 열아홉 작품이 실려있다.  









10년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변함없이 사랑하지만 익숙함이 커지고 깊은 대화가 단절된 부부, 부유한 중년의 여성에게 사랑을 구걸하며 기생해서 살아가는 지골로,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곁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보게 되는 남자, 긴 세월 동안 감춰오면서 아내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남편의 비밀, 지나간 사랑의 아련함과 그와는 무관한 현실에서의 처세, 외로움 때문에 이별도 쉽지 않은 연인,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헤어진 남편을 향한 그리움, 사는 게 연기인지 연기가 삶인지 이제는 분간하기도 어려운 가장, 위기를 겪어보니 곁에 있는 사람의 현실적(?)인 소중함을 깨닫는 여인, 공개적으로 멋지게 결별을 선언하고 싶었으나 막상 헤어지자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 야비한 남자의 심보, 한때의 추억으로만 남은 젊은 시절의 열정적인 사랑. 



프랑수아즈 사강은 거의 대부분의 소설을 통해 사랑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결혼 생활 혹은 연애란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듯 하다. 마치 결혼을 하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외도는 거쳐야하는 수순인것처럼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상처받는 마음과는 별개로 하나같이 배우자 혹은 연인의 외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사랑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는 자는 덜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돈을 가진 자이고, 때로는 인생에 있어 사람보다 더 사랑하는 게 있을 수 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인생, 경쟁에서 오는 긴장감. 헛되이 살지 않았으나 인생이란 참으로 고단하다. 그래서일까. 사랑의 끝에는 늘 권태와 고독이 기다리고 있음을 프랑수아즈 사강은 말한다. 

 
ㅡ 


기억에 남는 작품은 표제작 [길모퉁이 카페]와 [고독의 늪]이다. 


암으로 3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은 마르크. 별거 중인 아내, 자기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는 노부모, 법적 자식이 아닌 실수로 낳은 아이들. 이들이 그와 관계된 사람들 면면이다. 암이라는 병으로 인해 마르크는 별다른 변명없이 그들을 떠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직후 마르크가 무덤덤하게 찾아간 곳은 병원 앞 길모퉁이 카페다. 그는 카페의 모든 손님들에게 한 잔씩 돌린다. 이는 그가 더 이상 초라하지 않아야 할 자신에 대한 호의 였다.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생각해야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친구들과 매력적인 주말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닷없이 붉은 가을 길을 걷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던 서른 살 프뤼당스. 자기의 삶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녀가 고독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음에도, 그 순간 사무치도록 고독하다. 고독을 느끼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삶이려나. 나는 프뤼당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알 것 같다.   


ㅡ 


[낚시 시합], [왼쪽 눈썹], [개 같은 밤]은 프랑수아즈의 작품이라는 게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 혼자서 큭큭 거리며 읽었는데, 그에게 이런 꽁트같은 작품이 있다니, 여기에 이 책의 의의를 두어도 좋을 성 싶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분량이 많지 않은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책들은 특히나 한 편당 20여쪽을 전후로 할 만큼 아주 짧은 소설들인데, 느낌이 그렇게 썩 가볍지만은 않아서 좋았다. 





뻘.
이 책은 행간과 텍스트 간격이 넉넉해 눈의 피로도가 낮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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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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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귀족도 큰 부자도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검소한 집안에서 태어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의 소년으로 성장한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학업 뿐이기에 책에 파묻혀 지냈고, 좋은 성적으로 김나지움을 졸업해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잠시나마 찾아온 청년기의 일탈과 자아 주체성에 혼란을 느끼면서 아버지와 대립했고, 아버지에게 모든 면에서 온전히 독립하기 위해 철도청 공무원 시험에 지원했다. 수습 사원을 거쳐 사랑스런 여인과 결혼했고 조금 이른 나이에 작은 역에 부임해 역장이 되어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했다. 아내가 바라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다정했던 부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가 정한 생활방식에 익숙해진다. 전쟁이 일어났고 끝났으며 황폐해진 철도역을 뒤로 하고 프라하로 전근했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어 아내가 먼저 떠났고, 죽음을 예감한 후 회고록을 쓰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야말로 별다를 것 없는 보통 사람의 한 생애를 따라가는 듯하다. 궁극적으로 인생의 목표란 가능한 한 출세하여 부와 지위를 울려놓는 것인가? 화자는 자기가 그런 명예욕을 품기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소설의 반전은 외적 사건이 아닌 내면에 있다.  










그의 순수한 선의와 열정이 사실은 무의식적인 도피와 출세를 위한 욕망의 행위였고, 평범한 삶에 만족한고 있다는 자아와 어쩔 수 없는 패배감을 인정하기 싫어 평범으로 포장한다는 내면의 자아가 서로 싸운다. 그를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쓰고 있는 이 회고록조차 자신의 업적을 비치기 위해 쓴 것이라고 몰아세우는데, 이는 그가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해온 모든 행위는 주목을 받고 출세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강한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는 패배자였기 때문에 평범한 인생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내면에 자리한 여러 자아 중 하나의 목소리는 그의 삶이 헛되고 보잘것없고 굴욕적이었다고 말한다. 그 끔찍한 삶이 바로 평범이라고. 



때로는 의식하지 못했던 유년 시절에 실현하지 못한 욕구와 동경이 혹은 트라우마가 성인된 자아를 이끌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 역시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단어로 채 규정하지 못한 다양한 인격체를 내재하고 있고, 그들은 끊임없이 매순간 충돌하며 혼란과 갈등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넣는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믿는 것들은 대체로 사건과 상황에 의한 우연일 뿐. 인간이 어머니의 자궁에 안착하는 순간부터 우연은 시작된다. 삶은 완전하지도, 단편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생각한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 아니, 어쩌면 제각각의 생김대로 완전한 것일지도 모른다.


치열했던 각자의 역사 안에서 자신만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평범'한 인생을 얘기하는 작가의 역설. '평범'이라는 단어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무형의 존재에 불과하다. 평범을 가장해 비범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그러기에 우리는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내 것에 그치지 않은 우리의 삶,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평범한 삶'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 하다.


모두의 '평범'하고, 안온한 삶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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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주
실비 제르맹 지음, 류재화 옮김 / 1984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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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으로만 따지자면 앉은 자리에서 한두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었겠지만, 진득하게 읽은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면서 이틀을 넘게 붙잡고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그동안 읽어온 작가의 등장인물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소설을 읽었을 당시에는 이 기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의 행위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다시금 곱씹게 된다.  






 



실배 제르맹은, 등장인물은 소설가에게 자신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협력할 것을 요구하고, 대부분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오므로 소설가는 이를 재빨리 듣고 번역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하는데, 이와 같은 맥락의 얘기를 반복한다. 그는 등장인물이 작가가 일방적으로 부여한 서사가 아닌, 등장인물과 작가가 서로 상호작용할 뿐만 아니라 마치 소설 속 인물들이 서사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듯 말한다.   


또한 글쓰기란 불확실성과 결핍의 상처로 인해 갈라진 틈을 메우는 일이라고 썼다. 최초의 언어를 비롯한 수많은 언어와 문자가 소멸되고 탄생하며 때로는 부정확하고 왜곡되었을지언정 언어와 문자의 영속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에 있음을 얘기한다고 이해했다.  



실비 제르맹이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가장 낮은 자들의 살가죽이 종이와 다름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면서 이와 함께 여성의 몸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부분이 있다. 읽으면서 문득 지난 수천 년 동안 여성이 억압당했던 까닭 중 하나가 '피'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에 위해를 당하지 않고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여성의 몸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피가 흐른다. 작가는 '여성의 몸이 지니고 있을 이 위험을 견제하기 위해'라고 썼는데,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가해자(특히 집단)가 가장 잔인하고 가학적인 폭력 방식으로 강간을 선택한 이유, 그리고 고대부터 이어져온 주술에 왜 여성이 피해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새삼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그 어떤 문서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몸의 기록. 실비 제르맹은 소설에서 인간의 몸이 가장 매력적인 오브제라고 얘기한다. <밤의 책>에서 한 가계의 혈육들에게 특정해 놓은 신체적 특징, <분노의 나날>에서 사랑하는 카트린의 시신에 집착하는 앙부루아즈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실존의 불확실성, 인간 자체의 난해함, 지극히 어려운 사랑과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열정, 피해갈 수 없는 고독, 그리고 그 모든 끝에 따라오는 냉소와 죽음과 허무 등을 얘기하며 소설에서 '인간' 외에 다른 주제란 없음을 단언한다. 


실비 제르맹은 글을 쓰는 행위는, 우리가 침묵을 향해 가는 것라고 하는데 이에 앞서 작가는 청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등장인물의 말과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렬한 표현은 등장인물의 몫이고, 그들의 외침이 드러나도록 침묵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라는 걸까. 등장인물 혹은 작가 본인이 화자가 되어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작품이 있다. 그런데 곰곰 떠올려보면 그의 작품은 인물도, 화자도 말이 많지 않다. 그러나 작품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독자를 압도한다. 여러 지점들을 되짚어보니 실비 제르맹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실비 제르맹의 소설들은 유독 아름답고 우아하며 시적이다. 이 에세이를 통해 그가 사유하는 인간의 육체와 내면, 언어와 철학, 소설과 시, 그리고 쓰여짐으로써 텍스트를 통해 생을 얻는 그의 '환상적인 거지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후 실비 제르맹의 작품을 읽는다면 덕분에 더 이입해서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이 양반은 에세이도 소설처럼 쓴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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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1~3 세트 - 전3권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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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포르투나의 선택을 받았다고 자부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바라던대로 전쟁의 신이라 불렸던 스승을 누르고 최고자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죽기 전 호쾌하고 흐드러지게 놀다 간 술라는 자신의 삶에 만족했을까?
로마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세르토리우스와 스파르타쿠스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을까? 


현재의 지구촌만큼이나 어수선한 시기에 포르투나의 선택을 받고 싶었던 자들.
지금도 자기가 '운명의 여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만, 제발 정신차리시기를. 


개인적으로 로마 시대의 법 제도에 관심이 많은 독자로서 3부는 그런 점에서 흥미로웠다. 로마 공화정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사건(인물) 중 하나라고 꼽는 카이사르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4부~5부에 걸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대감 가득 채우며 3부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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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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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은 전쟁 무기다."


 
이 책은 전시 강간에 대한 책으로서 성폭력을 전쟁 무기로 사용된 경우들에 집중해 서술했다. 독자는 역사책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군대와 민병대 강간 뿐만 아니라 성노예제, 강제결혼, 강제 임신, 강제 불임, 아기 유괴 등의 범죄와 강간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들이 당하는 배척과 학대까지 수많은 여성의 참혹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목도 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르완다, 보스니아, 아르헨티나, 독일, 이라크, 콩고, 필리핀 등 전쟁과 내전이 벌어지는 거의 모든 곳에서 전시 강간은 이루어졌다. 생후 몇 달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 구분없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적 학대와 폭행을 당했고,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들까지 성노예로 내몰렸다. 존엄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공포에 떨게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경쟁 종족이나 이교도로 여기는 사람을 말살하기 위해 가해자들은 강간을 사용한다.  


강간 가해자들은 ISIS를 비롯해 보코하람, 버마 무슬림을 상대로 한 버마 정규군,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당시의 파키스탄군, 르완다의 종족 전쟁, 보스니아인을 상대로 한 세르비아인, 2차 대전 막바지의 소비에트 연방의 붉은 군대,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권, 콩고 민병대, 아시아 곳곳의 여성을 이용한 일본군 위안부 시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음에도, 강간은 세계에서 가장 소홀히 다뤄지는 전쟁범죄다.  









철장에 갇혀 있는 여성들을 산 채로 불태우고, 제노사이드를 목적으로 학살당하고, 성노예로 팔리고, 여성들을 인터넷에서 거래한다. 집단으로 납치 강간하며, 강간 후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책에 언급된 내용들을 일일이 다 열거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지경임에도 이들의 고통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체념으로 무시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다. 



​아웅 산 수 치의 사례를 읽으면서 우리가 갖는 양면성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2016년 수 치가 선출되고 1년 뒤 군 보안부대는 라카인 북부에서 로힝야족의 마을을 불태우고 수백 명을 학살했으며 여성들을 집단 강간했고, 약 9만명이 폭력을 피해 달아나야 했다. 어린 아기를 죽이고, 그 장면을 아기의 어머니가 목격하게 하고, 그 어머니를 집단 강간하는 군대가 한 나라의 안위를 책임져야할 정상적인 군대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가. 수 치 정권 하의 이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에 맞선 불교 가치의 수호자로 인기를 얻었다. 버무 군부는 페이스북을 이용해 이슬람을 불교에 대한 세계적인 위협으로,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버마의 민족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해 로힝야족을 향한 대중의 분노를 부추겼다. 그릇된 민족주의와 폭력적 국수주의. 아주 익숙한 흐름이다. 수 치의 이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여러 나라의 역사 속에서 흔히 자행되어 왔고, 경중의 차이일 뿐 대다수 사람에게서 보여지기 때문일 터다.  



위에서 일일이 열거하고 싶다고 쓰긴 했다만, 사실 피해 사례들은 너무 끔찍해 차마 쓸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스스로 살기를 거부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고, 살아남아 탈출해도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희생된 여성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모든 면에서 유린당한 그들은 가족에게 외면 당하고,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고향에서 쫓겨났고, 심지어 남편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강간 피해에 살아남은 여성들의 환경은 열악하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비참한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강간의 목적은 적에게 모멸감을 주고 사기를 꺾는 것만이 아니고 체계적인 전쟁 무기다. 이 무기는 개별적으로,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들이 아니고 종교적으로 '정당화'한 고의적이며 이념에 근거한 정책이다. 강간은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 공동체 전체에 최대치의 굴욕을 가하기 위해 유별나게 가학적인 방식으로 자행되었다. 또한 침략 중에 부수적으로 일어난 행동으로 볼 수 없고 의도적인 패턴으로서 그 자체로 전략적인 용도로 쓰였으며 공동체의 사기를 꺾고 공포를 조장해 그들을 고향으로부터 몰아내고 침략 세력의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에 따라 의식적으로 자행되었다.  


보편적으로 비난받는 범죄인 강간이 어떻게 전시에는 문제시되지 않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일까? 저자는 이 배경에 대해 고대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강간 위에 건설된 로마, 강간을 신화로 포장해 문제 삼지 않는 고대 그리스를 시작으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헌에서 나타나는 집단 강간의 역사는 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전쟁 강간은 역사적 사건이 있는 모든 장소에서 어김없이 일어난다.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시녀 이야기>는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 벌어졌던 사건들의 실제 사례를 가져와 썼다고, 작가는 밝힌 바 있다. 소설에서는 여성의 성노예가 체계적인 제도 하에서 이루지는데, 이는 우리 현실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전시 성폭력 가해자와 평상시에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에는 차이가 있다. 심리학자 잉에르 셸스베크에 따르면, "전쟁이라는 배경에서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이끄는 규볌과 가치로부터의 극단적 단절이 일어난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살인과 성폭력은 분명히 구분된다. 살인이 특정 상황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지만 성폭력은 그럴 수 없다. 그럼에도 전시 성폭력이 허용 가능한 행위처럼 여겨질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은 전시라는 상황이 평범하지 않은 데다 성폭력을 저질러도 군 지도부로부터 아무런 대응이나 처벌, 비난을 받지 않기 때문" 이다.  


그리고 앤터니 비버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다양한 군대 사이에서 성폭력의 정도가 다른 것을 두고 부분적으로 '군대 문화'를 든다. 또한 전시 강간이 모든 전쟁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 성폭력 보고가 거의 없다는 점이 잉에르 셰스베크와 앤터니 비버의 주장을 뒷바침해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하버드대 교수 다라케이 코언은 '전투원 사회화'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납치나 강제징병 같은 강제적 수단으로 신병을 보충한 무장 집단은 이방인들의 집합으로부터 단결된 전투 세력을 창조해야 한다. (...) 강간, 특히 집단 강간은 강제로 징병된 대원들이 처음 경험하는 공포스럽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충성심과 존경으로 결속될 수 있게 한다"고.  



강간은 여성에게만 자행되지 않는다. 남성 강간은 대다수 동성애와 연관되어 있어 드러나기가 더욱 어렵다. 2010년 콩고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분쟁 지역에서 남성의 23.6퍼센트 가량이 성폭력을 경험했다. 저자는 콩코 뿐만 아니라 보스니아, 아프카니스탄, 차드, 리비아의 이주민 수용소에서 남성 성폭력 사례를 마주했다. 또한 시리아에 억류된 남성 수감자의 최대 90퍼센트가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본다. 


전쟁 강간범들은 여성을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들이 마치 인도적 행동을 했다고 착각한다. 전범 가해자들 중에 전시 강간으로 기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전무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참하다. 읽는 것조차 힘이 드는데, 이 모든 것을 겪고 살아낸, 혹은 더이상 삶을 지속시킬 수 없어 스스로 삶을 끝내거나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그들에게 어떤 연민도 감히 드러내기 조심스럽다. 판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었다는 그라시엘라의 말,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최고의 치료제는 가해자의 처벌이라는 말이 깊게 와 박힌다.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 자신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모든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기 전에는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역사책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일방적인 침공이 버젓이 일어나고, 몇 년째 이어지는 역병으로 세상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무엇도 확실하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약자의 이야기를 듣고 침묵을 지키지 않으며 외면하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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