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예술 - 포스터로 읽는 100여 년 저항과 투쟁의 역사
조 리폰 지음, 김경애 옮김, 국제앰네스티 기획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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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사슬에 묶여 있다면 우리 모두가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난민(이민자), 페미니즘, 반전 및 반핵, 전쟁 학살, 노동자, 성소수자 차별, 인종차별, 기후 위기 등 지난 100여 년 동안의 인권과 환경에 대한 저항 운동에 관련한 포스터와 그 설명을 수록한 화보집이다. 포스터는 19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당시의 사회적 이슈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포스터도 포스터지만 이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강제 불임 수술,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저항과 시위 등)과 과거 전쟁에 대한 반대 운동과 시위가 적지 않았음에도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정확한 용어 표기를 잘 모르겠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는 점이 떠올랐다(나만 모르는 건가?) 





 




수록된 작품들 대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지만 그중 몇 가지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1994년부터 1997년 사이에 유엔난민기구에서 전 세계에 배포한 홍보물은, 난민과 '우리'가 어디가 다르냐는 질문을 제목으로 레고 피규어를 이용해 직접적이나 거부감없이 제작되었는데, 포스터 아래를 보면 '제발 난민에게 화재지 마세요 (후략)'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제발 화내지 마시라. 


조시 맥피가 2016년에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데 저항하기 위해 디자인한 딥틱에서 '그 누구도 불법인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썼는데,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은 없다는 의미가 와닿았다. 각국 정부가 자국민의 안전, 보건,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이동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바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 사회를 둘러보면 누가 '불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여성 참정권에 대한 포스터 중 로즈 세실 오닐이 디자인한 작품도 눈에 들어온다. 'Give Mother the Vote, We Need It.' 이 포스터에 오닐의 서명이 독특하다. 뒤쪽 큐피의 발 뒤쪽에 마치 걷고있는 다리처럼 보이는 사인이 있는데, 설명처럼 행진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재치있다. 


ㅡ  


좋아하는 화가 케터 콜비츠의 작품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그의 작품이 포스터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는데, 이 포스터에는 노동자와 어머니(여성)이라는 두 요소를 담고 있다. 전쟁이 초래한 참혹함을 어머니와 아이들로 표현했는데, 산 자보다는 죽은 자에 더 가까운 어머니의 표정에는 강인한 저항의 힘이 느껴진다. 


반전 포스터 중에 전쟁은 인간만이 아닌 모든 생명 차원에서 접근하는 로레인 슈나이더의 해바라기 포스터, 반핵 포스터 중 더크 베터의 콜라주 포스터가 무척 인상적이다. 1982년에 제작된 폴란드 단결 운동 포스터는 붉은 색 바탕에 부리에는 올리브 가지를 물고 있고 몸통 아래에 무한궤도가 돌고 있는 기계 비둘기가 그려져 있는데, 상당히 임팩트있다. 이 포스터에 담겨 있는 내용은 삽화에서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안타깝다. 


"지친 자여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착취하겠노라..." 자본주의를 넘어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더 이상의 적절한 문구가 있을까 싶다. 1978년 루스 스텐스트롬이 제작한 삽화가 없는 포스터인데, 이 포스터의 전체적인 설명을 읽어보면 지금 당장에 이 포스터를 사용한다해도 괴리가 없을 듯 하다. 


시민권 운동가 프랭크 시에시오르카가 제작한 포스터는 비도덕적이고 외설적인 작품이라고 비난받는데, 자유의 여신과 정의의 여신이 여덟 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여 윤간당하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설명에는 당시 흑인을 상대로 한 경찰 폭력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음인데, 제목은 역설적으로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다. 사실 이러한 포스터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주장하는 바를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겠지만, 정작 전달하려는 바를 인지하기 전에 불편함에 외면당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평등은 인간의 권리」 라는 이 흔한 말, 초등생도 학교에서 교육받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말이 실현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세상이다. 


ㅡ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아니시 카푸어가 서문에서 쓴 문장들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시위는 결사의 자유를 주장하는 방법이다. 개인의 목소리가 모여 다수의 목소리, 더 나아가 한 세대 전체의 목소리를 담아 낸다. 이는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의지, 억압과 강요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결연하고 절박한 몸부림이다. 그래서 말한다. 단결하라. 


포스터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구체적이라서 포스터와 당시 시대상을 연계해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사이사이 각 분야의 사회운동가들의 글들도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포스터이기 전에 좀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하고자 저항하는 예술인들의 작품집이다. 삽화와 문구가 어느 작품은 재치와 위트로 무장하기도 하고, 어느 작품은 암울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공통하는 부분은 인간 존엄성, 정의와 평등, 종차별 없는 생명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현재는 이 포스터 이면에 보이지 않는 이들의 저항과 투쟁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 그래서 이제는 그 역할을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문제를 다룬 그 어떤 문헌보다 직접적이고 사실적으로 와닿은 책이었다. 가능하면 한 번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113.
모든 사람과 모든 사회는 저항과 거역의 문화가 필요하다. 자본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비폭력 저항주의자를 통틀어 국가기관을 운영하는 이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룬다티 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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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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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과학은 지식을 추구하는 완벽한 도구라고 할 수는 없다. 과학은 우리가 가진 최선의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2019년말부터 2021년까지 '코로나19'라는 캄캄하고 긴 터널을 지나왔고, 현재에도 완전한 종식은 커녕 수그러들었던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몇 년 사이 온갖 소문이 나돌았더랬다. 코로나19의 원인부터 예방.치료에 이르기까지 어처구니 없는 말들이 떠돌았고 이로인해 생명을 위협받는 이들도 있었다. 작금의 시대에 이 책이야말로 새삼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유사 과학이 정치, 경제,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짚으면서 유사 과학의 폐해에 대해 심도있게 얘기한다. 또한 과학과 유사 과학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위해 과학의 비판적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과학을 역사, 종교, 사회, 교육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한다.  


저자가 과학자로서 가장 노력하고, 이 책에서 강조하는 점은 과학의 대중화다. 그런데 정작 과학과 기술이 극소수의 사람 손에 들어가 공공의 이익과 대중의 비판 능력을 저하시키는 동안 대중 매체의 콘텐츠들이 앞서 미신과 유사 과학을 조장하고 있다. 저자는 긍정적 의심의 정신을 강조한다. 이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의심의 정신을 가르치는 곳이 없다. 그 이유는 회의주의, 의심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만 사용되어 일반적으로 기피 대상이고,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자와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자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이를 이용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일례로 UFO에 대한 환각을 대표하는 것은 상업성이다. 이 둘은 맞물려 요정, 괴물, 마녀 등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 다각적으로 돈벌이에 이용한다. 심령 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약점을 파고들어 이를 먹이 삼아 증식한다. 과학의 오류는 명확해서 실패할 경우 교정이 가능하다면 심령 치료는 오류 자체도 모호하고 이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처럼 헛소리와 속임수는 정치, 사회, 종교,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사실들에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악마를 숭배하고, 누군가를 제물 삼아 위기를 넘기려는 시도는 불안정한 시대와 맞물려 나만 무사하면 된다는 사고 방식과 닿아있다. 그래서 과학보다는 유사 과학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내 나름으로 짐작해 본다. 


ㅡ 


저자는 무엇보다 회의주의(의심성)의 가치에 대해 역설한다. 확증을 잡고, 실질적인 논쟁이 가능하도록 해야하며, 권의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반증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신중하게 설계된 실험이다. 또한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인식하고 최대한 폭넓게 여러 의견을 들으며 자신이 저지른 오류나 실수를 거울삼아 자기 비판을 하는 것이 과학자의 임무다. 인간이 갖는 한계를 인지하고 더 나은 데이터를 찾으려 노력하며 기회주의에 물들지 않고 지속할 가치를 잃지 않아야 한다.  


과학의 핵심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것과 모든 아이디어를 회의적인 시작에서 철저히 조사하는 것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만 헛소리로부터 심오한 진리를 구별해 낼 수 있다. 즉 창의적인 사고와 회의적인 사고의 합작이 필요한데, 이 슬기로운 합작이 과학을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다. 의심할 줄 아는 정신과 경이를 느낄 줄 아는 감성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는 것이 공교육의 역할이라고 얘기한다.   


과학적 사고는 인류의 태동부터 함께해 왔고, 과학적 성향은 어느 시대, 장소, 문화에서든 우리 안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는 과학이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누구나 과학적 소질을 타고 났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과학은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어린시절의 뜨거운 과학적 호기심이 지속되지 않는 것에 대한 원인을 무관심, 부주의, 회의주의에 대한 불안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과학을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일반 청중에게 이야기할 때 쉬운 어휘를 사용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중매체나 일반 대중을 위한 강연, 초중고등학교의 교재에서 과학의 핵심 내용과 그 방법을 전달하기 위해 애써야한다고 말한다. 과학은 과학자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 전체에 의해 이해 및 수용되어야하고, 그러한 일들은 과학자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ㅡ 


과학은 경이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대중화를 소홀히 한 까닭에 틈새를 허용했고 그 자리를 사이비 과학이 채웠다. 어떤 것이 지식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수용되기 위한 적절한 증거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널리 이해했다면 유사 과학이 발붙일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나쁜 과학이 좋은 과학을 몰아내고 있다.  


질병, 의학, 에너지, 농업 등 어느 한 분야도 과학과 기술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과학을 포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삶의 편리성 저하가 아니다. 물론 무기, 생체 실험, 상업적 이용 등 부정적 측면도 있다. 이러한 과학의 힘은 과학자와 정치인에게 책임을 요구한다. 저자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장기적인 결과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전 지구적 관점과 미래 세대의 관점을 가지고 민족주의 및 쇼비니즘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자 의무라고 지적한다. 좋든 싫든 우리는 과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려면 차라리 과학을 최대한 이용하는 편이 낫다. 미신과 유사 과학의 방해를 이겨내고 과학의 본성을 신뢰하고, 과학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무기)로 인해 과학이 불온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추구하려는 본질적 진실은 민족적.문화적 편견과 대체로 무관하고, 국경을 따지지 않으며, 과학 자체는 국적을 초월한다. 그래서 오히려 이러한 요인들로 과학자 대부분이 정치 및 사회 비판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과학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공교육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럼으로써 더 나은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5장의 속임수와 비밀주의를 군사와 무기, 중세 문헌의 사례를 들어 얘기하는 부분에서 무척 흥미로웠고, 12장의 헛소리 탐지기는 격하게 동의한다. 특히 다른 사람과 논쟁하기 전에 자기 주장을 헛소리 탐지기로 점검하라는 말씀이 나 스스로에게도 적용 가능한 일이라 무척 좋았다. 특히 23장에서 기초과학의 예산 축소에 대한 정부를 향한 쓴소리는 깊이 공감하는 바다.   



저자의 과학에 대한 애정을 책 전반에서 느낄 수 있다. 유사 과학과 그로인한 피해, 과학의 대중화와 더불어 인류에 미칠 영향까지 고민하며 과학자가 가져야할 소명 의식을 피력한다. 생각보다 쉽게 읽을 수 있고, 과학자가 쓴 책에서는 드물게(?) 뭉클함까지 전해진다. 과학의 대중화를 강조하는 저자의 책답다라는 생각이 든다.  




사족
그야말로 가독성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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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19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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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우리는 열심히 행복을 추구하지만, 곧잘 길을 잘못 들어선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한번은 읽어야지했던 책이다. 많은 핑계로 밀어놨던 제프리 초서의 책을 기회가 닿아 읽는다. 여러 선입견으로 나름 긴장하며 책을 펼쳤는데,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 한마당이다. 깔깔대며 읽다보니 어느새 한 권을 훌쩍 읽었다.  









4월이 되면 여러 나라의 순례자들은 그들이 아플 때 도와주었던 거룩하고 복된 순교자를 찾기 위해 영국의 캔터베리를 향해 길을 나선다. 화자 역시 캔터베리로 순례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서더크 지방의 타바다라는 숙소에 묵게 되었는데, 밤이 되자 스물아홉 명 정도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또한 모두 순례자로서 캔터베리로 가는 길에 운연히 만나 동행하게 된 사람들이다. 기사, 수습기사, 수행원, 수녀, 신부, 수도사, 대학생, 변호사, 시골 유지, 잡화 상인, 목수, 직조업자, 염색업자, 태피스트리 제작자, 선장, 의사, 귀가 약간 먼 어느 부인, 장원 감독관, 방앗간 주인, 법정 소환인, 면죄부 판매인, 식품 조달업자, 청지기 등 직업도, 신분도, 살아온 환경도 다양하다.  


숙소 주인은 그곳에 머무는 손님들에게 순례길 동안 그들을 즐겁게 해줄 게임을 제안한다. 그 제안이란 캔터베리로 갈 때 두 개, 돌아오는 길에 또 두 개씩 각자 가장 교훈적이면서도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1등을 한 사람에게는 동행했던 순례자들이 돈을 모아 마지막날 저녁을 대접한다. 숙소 주인은 이 순례에 동참해 안내자를 자처하고, 모든 이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이제 그들의 유쾌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ㅡ 


상권에서는 법정 변호사, 어느 부인, 수사, 법정 소환인, 대학생, 상인, 수습 기사, 시골 유지가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고대 아테네가 등장하기도 하고,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해학 넘치는 소동극이 펼쳐지기도 하며, 몽골의 사막, 그리고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그려지기도 한다. 서술자들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다. 


부정부패, 사랑과 질투, 삶의 모순, 매순간 우리에게 던져지는 딜레마, 한 치 앞을 모르면서도 부질없는 탐욕과 욕정으로 다투며 제 발등 제가 찍는 인간의 어리석움, 노년의 회한, 당시 여성들에게 강요되어진 인내와 순종 등을 해학과 풍자로 유쾌하게 써내려갔다. 읽다보면 우리나라의 옛이야기를 읽는 듯한 기분도 드는데, 아마도 저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교훈적인 메세지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다. 육체와 정신의 족쇄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 사랑은 위대하나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 나이가 들어도 꺼지지 않는 허세, 거짓말, 분노, 탐욕 등 네가지를 들면서 노년이 갖는 어리석음은 미래가 아닌 지난 과거에 연연하는 것, 인생사 뿌린대로 거둘 것이니 잘 뿌리며 살라는 것 등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이야기들이다.  


ㅡ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법정 변호사의 이야기>와 <바스에서 온 어느 부인의 이야기> 서문, 그리고 <대학생의 이야기>다.  


먼저 <법정 변호사의 이야기>에서 콘스탄스를 미워하고 위기로 몰아넣는 술탄의 모후들이 악마 혹은 악의 뿌리로 표현되는데, 이는 지극히 기독교적 시각에서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콘스탄스를 사랑했던 술탄왕과 이교도(기독교도 입장에서)들은 개종하지만, 두 모후와 콘스탄스를 욕망했던 젊은 기사는 개종하지 않았다. 시리아에서 기독교도들과 개종자들을 학살하고 콘스탄스가 3년간 바다를 떠도는 과정은 박해와 순교를 상징하는 듯 보인다. 콘스탄스의 남편은 이교도였지만, 개종자다. 즉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은 모두 신이 버린 악마와 다름없다는 얘기다. 또한 연약한 콘스탄스가 건장한 남자를 상대로 몸싸움에서 이겼다는 설정이 상징하는 것, 신의 전능함을 부각시킨다. 그야말로 지극히 기도교적인 시각에서 쓰여진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가 십자군 전쟁 이후 세대임을 감안하면 납득할만하다.


<바스에서 온 부인 이야기>에서 부인은 서문에서 이렇게 얘기해도 되나싶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가정내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갖는 기득권에 대해 비판과 가정 및 사회에서 여성이 가져야할 당연한 권리에 대해 호탕하게 주장하는데, 아이러니는 서문의 마지막에 있다. 네 번이나 결혼하고, 스무 살 어린 남자와 다섯 번째 결혼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으로 끌고가지만 정작 결혼 이후에는 남편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점이다. 부인의 개인사를 통해 당시 여성에게 있어서 결혼이 갖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연장선으로 부인의 본격적인 이야기에서는 가정생활에서 여성의 주도권과 남편의 통제권을 주장하는데, 읽으면서 통쾌함을 느끼기도. 


<대학생의 이야기>에서는 순종의 끝판왕이 등장한다. 아내를 시험하는 후작의 작태는 어처구니 없는데, 초서는 이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결혼한 남자들에게 그리셀다 같은 여자는 절대 없으니 자기 아내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아내들에게는 겸손 때문에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일은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또한 여성들에게 침묵하지 말고 말대꾸를 하고, 순진해서 속지 말고, 적극적으로 지배권을 잡으라고 충고하는데, 결정적으로 남자들이 기분 나쁘게 할 때 참지 말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내가 이렇게 맛없이 썼지만, 초서는 상당히 맛깔나게 썼다. 


상권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시골 유지의 이야기>는 조금 씁쓸하다. 아내의 정절보다 약속을 더 중요시 여기며 아내가 한 약속을 지키라고 아우렐리우스에게 보내는 아르베라구스, 도리겐을 가엾게 여겨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약속을 무효화해준 아우렐리우스, 아우렐리우스의 고귀한 행동에 감동받아 채무 비용을 면제해준 천문학자. 화자는 이들 중 누가 가장 관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런데 그들의 관대함에 도리겐의 의견은 없다. 도리겐의 입장에서 애초에 이들이 관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ㅡ 


사실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들은 나의 입장에서 흥미로웠을뿐, 더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외의 이야기들이다.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박지원의 <양반전>, 동화 <마법에 걸린 개구리 왕자>, 애니메이션 <슈렉> 등이 떠오를만큼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소동극들이 입가를 끌어올려준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하권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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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1천 권의 조선 - 타인의 시선으로 기록한 조선, 그 너머의 이야기
김인숙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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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쉽게 만나지 못할 책과 그 책이 품고 있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조선을 다녀간 혹은 조선에 대해 간접적으로 접한 서구인들이 쓴 우리에 대한 글이 실려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 소설 <소현>에서 보였던 김인숙 작가님의 역사에 대한 고찰도 곁들여지는데, 소소하나마 이 부분의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에 소개된 책들은 개항기의 책들만이 아니라 하멜 이전의 유의미한 기록들, 그리고 기록의 길이 탓과 그외의 이런저런 이유로 어쩌면 영원히 번역본으로는 출간되지 못할 내용들에 대해서도 담겨있어 역사와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소중한 읽기의 시간이었다. 









 
사실 언급된 문헌의 내용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슬슬 빈정이 상하기 시작한다. 넘쳐나는 오류, 조선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시선, 약소국의 비애가 전해진다(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한국인이니까 어쩔 수 없다). 일례로 마테오 리치의 기록에는 임진왜란이 일본과 조선의 전쟁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의 승자가 조선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만봐도 당시 조선이 갖는 존재감을 짐작할만하다. 다른 하나를 더 보자면 맥레오드의 <조선과 사라진 열 지파>에서는 조선인이 유대민족의 후손이라고,  미케위치의 <한국인은 백인이다>에서는 고대 그리스인의 후예라고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한다. 일본의 일본의 천황이 이스라엘의 후손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고 하는데,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은 끝이 없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례들이 있는데, 오래된 문헌들의 번역과 원전의 충실도가 중요한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된다. 또한 기록이 사실이라고 해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 그리고 객관성에 따라 전달하는 바의 온도는 달라진다. 스웨덴 기자 아손과 차벨의 서술 방향이 전혀 달랐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해할 수 있다. 보이는 것 이상의 이면을 보지 못할 깜냥이라면 적어도 비틀린 선입견과 왜곡된 시선을 불러일으킬만한 주관적 판단은 지양해야함을 다시 새긴다. 개인적으로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는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사실 하멜이 표류기를 쓴 이유는 억류 기간 동안 밀린 임금을 청구하기 위한 보고서에 불과했는데 상업적으로 출판되어 조난 모험 소설처럼 팔렸다. 정작 하멜은 조선을 야만의 나라라고 한 적이 없건만, 유럽 독자의 입맛에 맞추려다보니 하멜의 모험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조선을 부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처럼 상술에 의해 왜곡된 경우가 있는가하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뒤크로와 로티의 기행문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른 차이가 얼마나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지 알 수 있다. 사실이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삐뚤어진 고정관념에 의한 시선은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아손과 차벨의 서술 방향이 전혀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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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를 다녀간 기록문과 항해기 뿐만 아니라 백과사전, 잡지, 지도, 화집 등 다양한 문헌들을 다루고 있다.  


미국성서공회의 <선교 안내 목록> 에 들어있는 지도 중 하나가 호텔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는데, 지도의 상단에는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이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통치하는 경성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약도에 가까운 지도 한 장만으로도 당시 국제사회에서 대한제국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어 씁쓸했다. 라페루즈의 <항해기> 부분을 읽을 때 제임스 쿡에 대해 잠깐 언급하는 대목에서 문득 어린 시절 제임스 쿡의 전기를 읽으며 그가 하와이에서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원주민들을 야만인이라고 비난했던 내가 떠올랐다. 고작 열 살 무렵에 이방인에 대한 나의 시각이 18, 19세기 유럽에서 조선을 바라본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그래서 객관성을 잃은 채 비판없는 책읽기가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새삼 느낀다. 


흥미뤄웠던 장은 올링거의 <코리언 리포지터리> 와 헐버트의 <코리아 리뷰>. 코리언 리포지터리는 1892년, 서울에서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 잡지다. 학술기사부터 기행문, 에서이, 최신 뉴스, 광고 등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한마디로 종합잡지였는데, 이 잡지가 발행된 1892년에 우리나라에는 신문을 비롯해 언론이라 불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따라서 이 잡지는 실제로 발행 당시 우리나라 근대의 생생한 기록이 담겨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사실. 직접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다. 


쥐 베르의 <조선 원정기>, 오페르트의 <금단의 나라 조선 탐험기> 를 보면 침공과 약탈의 순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쥐베르의 기록이 1873년에 발표될 때 외규장각을 비롯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는 이미 파리 국립도서관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후 의궤는 파리 국립 도서관의 폐지 창고에 중국 관련 문서로 분류된 채 버려져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11년, 145년이 걸려서야 완전한 반환이 이루어졌다. 작가의 말처럼 예술인이든 종교인이든 침략하는 순간에는 침략일 뿐이고 도적질을 할 때에는 도적일 뿐이다.   


작가는 우리나라를 소개한 서양 외서를 이야기할 때, 그 시작은 쿠랑이라고 말한다. 쿠랑의 <한국서지>는 조선의 책에 관한 책이다. 책에 관한 이야기, 책의 역사, 책의 언어, 책의 숨결이다. 책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야말로 책과 조선이다. 쿠랑이 서지로 작성한 조선 책이 3,821종에 이른다는데, 그는 조선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고. 모리스 쿠랑이 조선에 온 것은 개항 초기 1890년이었다. 파리에서 동양학을 전공한 후 베이징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다가 조선 공사관으로 발령이 났다. 당시 쿠랑의 상사이자 프랑스 초대 공사관이었던 플랑시는 우리의 금속 활자본 직지를 프랑스로 가져간 사람이다. 인간의 관계는 몇 다리 건너 모두 얽혀있다는 말을, 이 책을 읽으면서 곱씹게 된다. 


작가가 '나가는 말'에서 쓴 <함녕전 시첩>을 읽자니 참담하기 그지없다(이완용의 마지막 문구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내가 이러한데, 이 참담한 시를 비로 만들어 침전 후원에 세웠다니 고종은 다리 뻗고 잠들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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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문헌들이 모두 조선을 중심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고, 아주 적은 분량을 차지하고나 스치듯 지나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기록들이 중요한 이유는 각 시기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룬 마흔다섯 권의 책들이 현재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시 관람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보니 책에 실린 풍성한 사진 자료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또한 문헌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내용 뿐만 아니라 각 책들의 저자에 대한 에피소드와 사연, 그리고 이면의 이야기들이 상당히 재미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독서보다 책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만족스러울 것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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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구 : 흙의 장벽 1~2 - 전2권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마리즈 콩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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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구는 술책이 자라나는 정원이다. 세구는 배신 위에 세워진다. 세구 바깥에서 세구에 대해 말하라. 하지만 세구 안에서는 세구에 대해 말하지 마라." (첫문장) 








출간 전부터 진심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그들의 긴 이야기의 읽기를 마친 지금, 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작품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감히 말한다. 이 장대한 이야기에 대한 소감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난감하다. 어느 하나의 감정과 이성으로 단정하기에 그들의 인생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대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운명은 가혹했다.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네 형제의 운명이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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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세구의 전성기 최정점에서 시작한다. 세구의 지배력은 대규모 교역 도시 제네, 사하라 사막의 경계에 위치한 통북투, 페울족의 마시나 왕국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쳤고, 이외의 여러 부족들은 세구라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를 조아렸다. 그 중심에는 밤바라족이 있다. 밤바라족을 대표하는 트라오레 가문, 그 가문의 '파' 두지카와 그의 아들들. 소설은 그들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해 제국주의, 노예무역, 이슬람 전파 등 18~19세기 격동의 아프리카를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인간성, 종교, 종파, 부족주의, 민족성, 가족애, 여성차별, 노예무역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상징성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영국, 브라질 등 광대한 공간적 배경과 사대를 잇는 긴 시간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쫀쫀한 밀도감을 유지하는데, 천 쪽에 가까운 소설을 읽는 동안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깝다가도, 그들의 운명에 이입해 다음 장을 얼른 넘기고 싶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두 가지 핵심 사건은 노예무역과 이슬람 개종과 종파 간 대립이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인 트라오레 네 형제의 운명이 결정된다. 다신교이자 '파'중심의 가족주의 나라인 세구에서 과감히 이슬람 신도의 길을 걷는 장남 티에코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태어나 몇 시간 먼저 태어난 형의 운명에 결속된 시가, 단 한 번의 일탈로 아버지의 땅에서 끌려나온 나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된 방황으로 인해 비극적 운명의 족쇄를 차게 된 말로발리. 


우리가 미처 깊게 알지 못했던 노예무역의 사실, 노예무역 이후 대체된 팜유무역,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던 이슬람 종파의 대립, 신앙이 갖는 본질과 근원적 사명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권력과 야합하고 변질된 종교, 가부장 사회에서 비롯된 여성 차별, 같은 인종 내에서도 벌어지는 인종 차별, 제국주의의 폐해와 세월이 흐를수록 밀려오는 서구 문명을 두고 갈등하는 아프리카의 젊은 세대 등 이들의 운명을 따라가다보면, 참혹했던 그 시대를 대면하게 된다.  


특히 소설 후반인 1840년 겨울, 에우카리스투스가 사제 교육을 받기 위해 영국에 도착한 후에 갖는 소감이 인상적이다. 백인을 정중하게 맞았던 다호메 왕국과는 달리 백인은 흑인을 짐승처럼 간주하는 것, 빈부격차가 극심해 거지와 다를 바 없는 백성이 이토록 많은 영국이 자기네 나라에서 해결해야 문제들이 산재해 있음에도 그들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다른 대륙에 전파하려는 것, 이를 보면서 가장 아름다워야할 건축물인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실추되었음에도 물리적 건축물에 관심을 갖는 것 등을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문자와 문헌들의 경이로움에 매혹되어 유럽인들의 성과에 열렬한 찬미를 보낸다. 에우카리스투스는 이러한 자신의 이중적 행태가 스스로도 혼란스러우면서 동시에 남미 원주민의 문명을 가차 없이 파괴하는 유럽 문명을 통해서 아프리카의 미래를 예감한다. 이러한 모습은 에우카리스투스 뿐만 아니라 그들과 유사한 근현대사를 겪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가졌을 양가적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소설 속 주인공들 만큼이나 많은 감정과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유약하게만 보였던 티에코로의 예상치 못했던 강인함, 더없이 슬펐던 나바의 삶과 나디에의 절망, 거칠고 비겁하게 보이지만 죽을 때까지 성장하지 못한 내면의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살아야했던 말로발리에 대한 안타까움, 더할 수 없는 사랑이 전부였던 로마나의 측은함, 트라오레 가문을 실질적으로 지켜낸 니아의 굳건함이 전하는 감동. 자책과 후회, 치욕과 인내, 사랑과 욕망, 혼란과 갈등이 점철된 인생. 죽음을 맞이한 자도, 타인의 죽음에 책임을 갖는 자도, 그 아프고 고된 삶에서 그들만의 화양연화가 있었음이 독자에게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그보다는 트라오레 가문과 연관된 많은 인물들의 삶 속에 깊숙이 빠져드는 독서를 추천한다.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었던 세구. 소설의 마지막에서 흙으로 둘러쳐진 세구의 장벽이 무너짐은 무엇을 상징할까. 뻔한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소설을 완독하면 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모하메드의 마지막 말이 오래 기억될 듯 하다.  


483.
더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살아남는 것 말고는. 


 

사족.
사이사이 문장이 주는 이 벅찬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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