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예술 - 포스터로 읽는 100여 년 저항과 투쟁의 역사
조 리폰 지음, 김경애 옮김, 국제앰네스티 기획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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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사슬에 묶여 있다면 우리 모두가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난민(이민자), 페미니즘, 반전 및 반핵, 전쟁 학살, 노동자, 성소수자 차별, 인종차별, 기후 위기 등 지난 100여 년 동안의 인권과 환경에 대한 저항 운동에 관련한 포스터와 그 설명을 수록한 화보집이다. 포스터는 19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당시의 사회적 이슈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포스터도 포스터지만 이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강제 불임 수술,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저항과 시위 등)과 과거 전쟁에 대한 반대 운동과 시위가 적지 않았음에도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정확한 용어 표기를 잘 모르겠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는 점이 떠올랐다(나만 모르는 건가?) 





 




수록된 작품들 대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지만 그중 몇 가지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1994년부터 1997년 사이에 유엔난민기구에서 전 세계에 배포한 홍보물은, 난민과 '우리'가 어디가 다르냐는 질문을 제목으로 레고 피규어를 이용해 직접적이나 거부감없이 제작되었는데, 포스터 아래를 보면 '제발 난민에게 화재지 마세요 (후략)'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제발 화내지 마시라. 


조시 맥피가 2016년에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데 저항하기 위해 디자인한 딥틱에서 '그 누구도 불법인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썼는데,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은 없다는 의미가 와닿았다. 각국 정부가 자국민의 안전, 보건,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이동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바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 사회를 둘러보면 누가 '불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여성 참정권에 대한 포스터 중 로즈 세실 오닐이 디자인한 작품도 눈에 들어온다. 'Give Mother the Vote, We Need It.' 이 포스터에 오닐의 서명이 독특하다. 뒤쪽 큐피의 발 뒤쪽에 마치 걷고있는 다리처럼 보이는 사인이 있는데, 설명처럼 행진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재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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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화가 케터 콜비츠의 작품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그의 작품이 포스터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는데, 이 포스터에는 노동자와 어머니(여성)이라는 두 요소를 담고 있다. 전쟁이 초래한 참혹함을 어머니와 아이들로 표현했는데, 산 자보다는 죽은 자에 더 가까운 어머니의 표정에는 강인한 저항의 힘이 느껴진다. 


반전 포스터 중에 전쟁은 인간만이 아닌 모든 생명 차원에서 접근하는 로레인 슈나이더의 해바라기 포스터, 반핵 포스터 중 더크 베터의 콜라주 포스터가 무척 인상적이다. 1982년에 제작된 폴란드 단결 운동 포스터는 붉은 색 바탕에 부리에는 올리브 가지를 물고 있고 몸통 아래에 무한궤도가 돌고 있는 기계 비둘기가 그려져 있는데, 상당히 임팩트있다. 이 포스터에 담겨 있는 내용은 삽화에서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안타깝다. 


"지친 자여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착취하겠노라..." 자본주의를 넘어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더 이상의 적절한 문구가 있을까 싶다. 1978년 루스 스텐스트롬이 제작한 삽화가 없는 포스터인데, 이 포스터의 전체적인 설명을 읽어보면 지금 당장에 이 포스터를 사용한다해도 괴리가 없을 듯 하다. 


시민권 운동가 프랭크 시에시오르카가 제작한 포스터는 비도덕적이고 외설적인 작품이라고 비난받는데, 자유의 여신과 정의의 여신이 여덟 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여 윤간당하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설명에는 당시 흑인을 상대로 한 경찰 폭력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음인데, 제목은 역설적으로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다. 사실 이러한 포스터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주장하는 바를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겠지만, 정작 전달하려는 바를 인지하기 전에 불편함에 외면당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평등은 인간의 권리」 라는 이 흔한 말, 초등생도 학교에서 교육받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말이 실현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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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아니시 카푸어가 서문에서 쓴 문장들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시위는 결사의 자유를 주장하는 방법이다. 개인의 목소리가 모여 다수의 목소리, 더 나아가 한 세대 전체의 목소리를 담아 낸다. 이는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의지, 억압과 강요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결연하고 절박한 몸부림이다. 그래서 말한다. 단결하라. 


포스터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구체적이라서 포스터와 당시 시대상을 연계해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사이사이 각 분야의 사회운동가들의 글들도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포스터이기 전에 좀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하고자 저항하는 예술인들의 작품집이다. 삽화와 문구가 어느 작품은 재치와 위트로 무장하기도 하고, 어느 작품은 암울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공통하는 부분은 인간 존엄성, 정의와 평등, 종차별 없는 생명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현재는 이 포스터 이면에 보이지 않는 이들의 저항과 투쟁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 그래서 이제는 그 역할을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문제를 다룬 그 어떤 문헌보다 직접적이고 사실적으로 와닿은 책이었다. 가능하면 한 번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113.
모든 사람과 모든 사회는 저항과 거역의 문화가 필요하다. 자본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비폭력 저항주의자를 통틀어 국가기관을 운영하는 이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룬다티 로이)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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