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세구 : 흙의 장벽 1~2 - 전2권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마리즈 콩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구는 술책이 자라나는 정원이다. 세구는 배신 위에 세워진다. 세구 바깥에서 세구에 대해 말하라. 하지만 세구 안에서는 세구에 대해 말하지 마라." (첫문장) 








출간 전부터 진심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그들의 긴 이야기의 읽기를 마친 지금, 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작품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감히 말한다. 이 장대한 이야기에 대한 소감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난감하다. 어느 하나의 감정과 이성으로 단정하기에 그들의 인생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대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운명은 가혹했다.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네 형제의 운명이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였을까. 


 ㅡ 


소설은 세구의 전성기 최정점에서 시작한다. 세구의 지배력은 대규모 교역 도시 제네, 사하라 사막의 경계에 위치한 통북투, 페울족의 마시나 왕국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쳤고, 이외의 여러 부족들은 세구라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를 조아렸다. 그 중심에는 밤바라족이 있다. 밤바라족을 대표하는 트라오레 가문, 그 가문의 '파' 두지카와 그의 아들들. 소설은 그들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해 제국주의, 노예무역, 이슬람 전파 등 18~19세기 격동의 아프리카를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인간성, 종교, 종파, 부족주의, 민족성, 가족애, 여성차별, 노예무역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상징성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영국, 브라질 등 광대한 공간적 배경과 사대를 잇는 긴 시간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쫀쫀한 밀도감을 유지하는데, 천 쪽에 가까운 소설을 읽는 동안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깝다가도, 그들의 운명에 이입해 다음 장을 얼른 넘기고 싶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두 가지 핵심 사건은 노예무역과 이슬람 개종과 종파 간 대립이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인 트라오레 네 형제의 운명이 결정된다. 다신교이자 '파'중심의 가족주의 나라인 세구에서 과감히 이슬람 신도의 길을 걷는 장남 티에코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태어나 몇 시간 먼저 태어난 형의 운명에 결속된 시가, 단 한 번의 일탈로 아버지의 땅에서 끌려나온 나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된 방황으로 인해 비극적 운명의 족쇄를 차게 된 말로발리. 


우리가 미처 깊게 알지 못했던 노예무역의 사실, 노예무역 이후 대체된 팜유무역,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던 이슬람 종파의 대립, 신앙이 갖는 본질과 근원적 사명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권력과 야합하고 변질된 종교, 가부장 사회에서 비롯된 여성 차별, 같은 인종 내에서도 벌어지는 인종 차별, 제국주의의 폐해와 세월이 흐를수록 밀려오는 서구 문명을 두고 갈등하는 아프리카의 젊은 세대 등 이들의 운명을 따라가다보면, 참혹했던 그 시대를 대면하게 된다.  


특히 소설 후반인 1840년 겨울, 에우카리스투스가 사제 교육을 받기 위해 영국에 도착한 후에 갖는 소감이 인상적이다. 백인을 정중하게 맞았던 다호메 왕국과는 달리 백인은 흑인을 짐승처럼 간주하는 것, 빈부격차가 극심해 거지와 다를 바 없는 백성이 이토록 많은 영국이 자기네 나라에서 해결해야 문제들이 산재해 있음에도 그들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다른 대륙에 전파하려는 것, 이를 보면서 가장 아름다워야할 건축물인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실추되었음에도 물리적 건축물에 관심을 갖는 것 등을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문자와 문헌들의 경이로움에 매혹되어 유럽인들의 성과에 열렬한 찬미를 보낸다. 에우카리스투스는 이러한 자신의 이중적 행태가 스스로도 혼란스러우면서 동시에 남미 원주민의 문명을 가차 없이 파괴하는 유럽 문명을 통해서 아프리카의 미래를 예감한다. 이러한 모습은 에우카리스투스 뿐만 아니라 그들과 유사한 근현대사를 겪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가졌을 양가적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소설 속 주인공들 만큼이나 많은 감정과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유약하게만 보였던 티에코로의 예상치 못했던 강인함, 더없이 슬펐던 나바의 삶과 나디에의 절망, 거칠고 비겁하게 보이지만 죽을 때까지 성장하지 못한 내면의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살아야했던 말로발리에 대한 안타까움, 더할 수 없는 사랑이 전부였던 로마나의 측은함, 트라오레 가문을 실질적으로 지켜낸 니아의 굳건함이 전하는 감동. 자책과 후회, 치욕과 인내, 사랑과 욕망, 혼란과 갈등이 점철된 인생. 죽음을 맞이한 자도, 타인의 죽음에 책임을 갖는 자도, 그 아프고 고된 삶에서 그들만의 화양연화가 있었음이 독자에게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그보다는 트라오레 가문과 연관된 많은 인물들의 삶 속에 깊숙이 빠져드는 독서를 추천한다.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었던 세구. 소설의 마지막에서 흙으로 둘러쳐진 세구의 장벽이 무너짐은 무엇을 상징할까. 뻔한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소설을 완독하면 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모하메드의 마지막 말이 오래 기억될 듯 하다.  


483.
더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살아남는 것 말고는. 


 

사족.
사이사이 문장이 주는 이 벅찬 감동.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