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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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품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라인업이 화려하다.
실린 작품이 모두 좋았다. 어느 작품이 대상감이라고 말할 수 없었지만, 「김영춘」이 대상인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 왜곡된 진실 사이에서 전달자 역할을 하는 서술자와 이를 받아들일 청자(독자)에 대한, 즉 보편적인 우리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짚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가장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할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사건)들에서 가장 가볍게 무시되곤 한다. 
  





 
작가의 노트가 아니더라도 소설의 몇 페이지를 넘기면 이 소설이 1980년 4월에 일어난 사북항쟁을 모티브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속 등산객의 부부처럼, 나는 김춘영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길 기대했던 걸까. 광부와 광부의 가족만 연상되는 탄광촌. 그 이면에 다른 이들의 삶도 있었음을 미처 생각치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진실을 알고싶다기보다는, 우리가 바라는 혹은 짐작하 바가 진실이기를 기대하는 건 아닐까. 박정윤은 기대와는 다른, 대중의 잣대에 올바르지 않았던 김춘영의 생애를 청자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김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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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푸집의 형태」는 돌봄과 혈연으로 묶인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이에 대한 제도적 문제 등에 대한 질문을 작은 사건들을 통해 노골적으로 던진다. 중증 환자에 대한 돌봄 지원, 가족 간의 보이지 않는 질투와 시기와 의존. 사실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불편하다. 그 짧은 소설에 기가 빠지는 느낌이다. 전혀 따뜻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은 이 이야기가 혐오와 멸시에 가득찬 우리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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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정말 어느 것하나 쉽게, 혹은 거저 얻어지는 게 없더라. 어떻게 해야 좀더 손해보지 않고 영악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지, 어떻게 해야 서로 오해 없는 소통을 할 수 있는지, 도대체 어느 정도 거리에 있어야 중력이 유지되는지... .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고민은 더 깊다.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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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 자의든 타의든 삶은 우리를 흔들며 시험에 들게 한다. 매일이 복붙처럼 그날이 그날같은 지루함 속에 자아는 저 깊숙한 어딘가에 묻어둔듯 싶지만,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반복 역시 내 자아 중 하나임을 잊지말기. 그럼에도 때때로 작은 일탈이 필요하기는 하지. 그 사소한 일탈조차 오해로 점철된 타인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는 건 또 불편한 일이고. 어쩌면 삶이 지루해지는 것은 복붙의 일상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
(「빈티지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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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럿한 줄거리 없이 사건의 나열이 전부인 「눈먼 탐정」. 대부분의 사건은 죽음, 상실, 실종과 연관되어 있다. 의식의 흐름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나'와 '눈먼 탐정'이 구술하는 그들의 서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를 잃어도 삶은 계속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그들은 자신을 내주어 현재를 살아가라 말하고,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그들처럼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 그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우리는 그래왔고 그래야함을. 하지만 그 길을 가는 동안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이 소설 「눈먼 탐정」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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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이 국회의사당의 창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는 그 시각, 조은빛은 낯선 곳에서 지갑과 귀중품을 빼앗긴다. 폭력배들은 온갖 협박과 폭력을 이용해 조은빛을 위협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다리도 다친 조은빛은 두려움에 떨지만 결국 스스로 그 두려움에서 빠져나온다. 소설은 계엄과 조은빛을 각기 다른 프레임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마치 하나의 장면으로 읽힌다. 헌법에도 명시된 행복추구권. 조은빛도, 계엄에 저항한 이들도 궁극적으로 가고자하는 지향점일 것이다.
(「돌아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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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숱하게 접하는 돌발적인 사건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것이 기후 위기가 됐든, 뉴스에서 보도되는 여타의 사건들이든. 항상 사건의 최전선에서 목놓아 이야기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쉽사리 전달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나 자신이 그 무리 속에 들어가게 될지 알 수 없음에도 말이다. 제목이 무척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문제없는, 하루」) 



이번 수상작들은 대체로 적잖이 무겁다. 그러나 그 무게감 이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아마도 작품들 대부분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우리네 모습들을 현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리라. 때로는 주인공이나 서술자에게서, 때로는 소설 속 제3자에 속하는 어느 인물에게서, 나 자신 혹은 우리 주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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