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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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휴학중에 정신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직접 보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환자들이 너무 멀쩡하다. 심지어는 나보다 멀쩡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여기가 정신병원인지 아니면 그냥 일반 병원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전까지는 정신병자라고 하면 풀어헤친 머리카락에 꽃을 찔러 놓고 정처없이 돌아다니고 정체모를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거나 이유없이 베시시 웃는 모습을 연상하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누구나 한눈에 정신병자라고 알아볼만큼 외적으로 표가 나는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는데에 놀랐다.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정신병이다 아니다를 무자르듯이 구분지을수 있는 것인지, 자로 재는것도 아니고 근으로 달아 구별하는 것도 아니고, 어서오세요 여기서부터는 정신병입니다 하는 이정표같은 것이 있을리도 만무하다. 여기에 대해 당시에는 모든 게 의사마음이다 라는 시시콜콜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사실 우리는 모두가 크고 작은 정신질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 중 일상생활에서 장애를 느낄 정도의 중증인 사람들이 병원을 찾게 되는 것이고,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광기를 이런저런 형태로 발산하면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사라마구가 극찬했다는 이 소설은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구스티나와, 그녀의 헌신적인 로맨티스트 남편 아길라르가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어릴적 가정에서부터 비롯된 정신적 상처로 방황하는 아내를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 아길라르는 고군분투한다. 아길라는 아내의 광기가 시작된 그 과거를 하나씩 더듬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무런 규칙없이 마구잡이로 서술되는 것 같던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그 형태가 구체적으로 보여온다. 등장인물들의 시점이 이리저리 뒤바뀌면서 서술과 독백과 대화마저도 하나로 뭉뚱그려 놓은 독특한 형식은, 일반적인 소설과는 그 문법이나 서술방식이라는 면에서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조금 답답하게 다가올수도 있지만, 이런 과거시제와 현재 시제가 교차하는 특이성이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들 부부 이외에도 마약거래, 돈세탁, 부정부패등의 콜롬비아라는 나라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는 인물들, 그리고 아구스티나의 광기의 원인이 된 가족사까지 포함해서 단순해질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고 심오하게 만들어 준다.
재미로 따지자면 주인공격인 아구스티나/ 아길라르 부부보다도 오히려 콜롬비아의 군사독재와 불법 마약 거래로 대변되는 인물들의 파트 쪽이 더 흥미로웠던 듯 싶다. 이것은 아마도 저자가 부정부패를 일삼는 콜롬비아 상류층에 대해 광기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크게는 정치적으로, 작게는 가정사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에서 발산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인간 군상의 광기의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