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단편들 하나같이 강렬하네.




벙어리, 우리 ‘양들‘은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버린 거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 하나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내 목은 오랫동안 노래를 부른 듯이 말라서 목소리가 나오기 전에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나는 몸속 깊은 곳에 무겁게 자리 잡은 굴욕감에 눌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인간양) - P161

"이봐, 학생." 선생은 간절한 소리로 말했다. "누구 한 사람은 이 사건을 위해서 희생자가 되어야만 해, 자네로서는 그냥 입 다물고 잊어버 리고 싶겠지만 눈 딱 감고 희생자 역할을 맡아 줘. 희생양이 되어 달라고."
(인간양) - P169

"나는 기어코 네 이름을 밝혀내고 말겠어." 선생의 목소리는 격한 감정으로 떨려 나왔다. 갑자기 선생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네 이름과 네가 당한 굴욕을 모두 밝혀내고 말 거야. 그리고 외국 군인들은 물론 너한테도 죽고 싶을 만큼의 수치를 안겨 주겠어. 네 이름을 알 아낼 때까지 나는 결코 너를 놓아주지 않겠어."
(인간 양) - P173

"협조를 좀 하란 말이다." 그는 거의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협조하는 건 진주군에게 협조하는게 되는 거야, 일본인은 앞으 로 진주군에게 협조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어, 너희는 패전 국가의 인간 아닌가, 승전국 인간들에게 학살을 당해도 불평할 수 없는 입장이야. 협조하지 않는다는 건 미친 것이지."
(돌연한 벙어리)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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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전쟁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분별력 있는 자라면, 군수산업을 일으켜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 앞에는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는 결 누구나 다 알았다. 전쟁 아니면 국내의 파국, 그러므로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 P57

그는 다시 담배를 한 개비 꺼냈다. 내 형편만 달랐다면 그여자를 붙들어 둘 수 있었을까?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붙잡아 둔단 말인가? 오직 환영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환영이라도 충분하지 않은가? 언제 그이상의 것을 얻기라도 했던가? 그 누가 이름도 없이 감각의 밑바닥에서 넘쳐흐르는 생명의 시커먼 소용돌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단 말인가? - P133

예전엔 여러가지가 있었지... 안전한 뒷받침, 믿음, 목적 ... 사랑이 뒤흔들려도, 그런 것들이 모두 정겨운 울타리가 되어 의지할 수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모든게 없어졌어.... 기껏해야 조금의 절망과 조금의 용기 그리고 안팎의 낯선 것들. 거기로 사랑이 날아 들면, 마른 짚더미에 불을 던지는 셈이 되지. 사랑밖에 남은게 없다면, 사랑은 다른 것이 되어 버리는 거야. - P191

"사랑 같은 것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우린 그런 걸 깊이 생각할 처지도 못돼. 지나치게 생각하면 망칠 뿐이야. 그래, 우리가 망해 버렸으면 좋겠어?" - P191

"전 억제할수가 없어요, 라비크. 무언가가 나를 몰아 가요. 마치 무언가를 늘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것을 붙들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내 것으로 만들고 나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래서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해요. 그렇게 해도 결국 이전과 마찬가지라는 것도 이미 알아요. 하지만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요. 그것이 나를 몰아가고 어딘가로 내동댕이처요. 그러면 한동안은 그것이 나를 가득히 채워 줘요. 그리고 다시 그것이 놓아주게 되면, 나는 다시 굶주린 것처럼 팅 비어 버려요. 그리고 같은 짓을 반복한다고요." - P228

"도망가지 않겠 어. 그냥 여기 있겠네. 그게 나의 운명이야. 이해하게." - P297

그는 한 인간을 사랑했고, 그 인간을 잃었다. 그는 또한 한 인간을 미워했고, 그 인간을 죽였다. 두 인간이 다 그를 해방해 주었다. 한 사람은 그의 감정을 다시 살아나게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과거를 씻어 주엇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소망도 미움도 비탄도 없었다. 새로운 시작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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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레마르크의 작품은 실망할 수 없다.


"젠장!"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쓸쓸한 미소 또는 그녀의 눈길, 그것도 아니라면 팅빈 거리 때문이었던가, 혹은 밤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그는 다만 저기 안개 속에서 갑자기 길 잃은 아이 같아 보이는 져 여자를 혼자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 P16

두어 시간 전에도 그는 지금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그동안 한 인간이 죽은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순간순간 몇천명씩 죽어 나가지 않는가, 거기에 대한 통계도 있다. 그런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죽은 그인간에게는 그 순간이 전부이며,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온 세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 P39

그는 주머니에서 여자 이름을 적은 쪽지를 꺼내 찢어 버렸다. 망각. 그 얼마나 멋진 말인가. 공포와 위안과 망령으로 가득 찬 말! 망각 없이 어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어느 누가 충분히 망각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 마음을 찢어 놓은 기억의 찌꺼기들. 살아가야 할 구실이 더 이상 없어 졌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 P67

"우리는 사람을 도와 주었다고 늘 그렇게 생각해 놓고는, 그 사람이 막상 아주 어려운 치지에 놓이면 쳐다보지도 않으니 말이야." - P95

쟃빛인, 쓸쓸히고 형태도 없는 그 무엇, 슬픔보다 더 슬픈 그 무엇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득한 시절의 헤아릴 길 없는 추억, 그 옛날에 밀려왔다 어느 섬에서 그대로 잊혀지고 말았던 것, 사람의 흔적, 약간의 빛과 생각을 되찾아 다시 묻어 버리려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 P120

"이전에 우리를 붙들어 매고 있던 것이 지금은 파괴되고 말았소. 우리는 이제 줄 끊어진 유리알처럼 산산이 흩어져 있어요. 단단하게 고정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요." - P120

"인간이란 뜻은 크지만 실천은 미약한 법이야. 거기에 우리 불행도 있고, 우리 매력도 있는 거지." - P150

"잘 잊어버린다면, 그게 나중엔 손해로 돌아옵니다. 손님."
"옳아, 하지만 잊지 않는다면 그건사람에게 생지옥이 되는 거지."
"제 경우는 안그래요. 그냥 지나갔어요. 잊지 못한다고 어째서 인생이 지옥이 되는거죠?" - P175

"행복이라고," 라비크가 말했다."도대체 그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 거지?" 그의 발이 국화꽃을 건드렸다. 행복이라니 하고 그는 생각 했다. 청춘의 푸르른 지평선. 행복은 황금빛 찬란한 삶의 균형 아니던가! 맙소사, 행복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전 당신에게서 시작하고 당신에게서 끝나는 거예요." 조앙이 말했다. "아주 간단해요." - P234

"상관 있고말고! 사랑하는 사람이란, 같이 늙어 갈 사람을 말하는 거야"
"그건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 없이는 내가 살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건 알아요." - P235

그동안 너무 잘 살았어 하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던 거아. 없어지면 괴롭기만 한 것을.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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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작가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데 너무 좋다. 다른 책도 읽어봐야 겠다.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지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어떤 시간들은 뭉처지고 합해지고 늘어나고 누워 있고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에요. - P91

내가 보았던 시쿠라이 다이조의 연극 중에는 ‘미래 기억‘이라 는 말이 들어가는 연극이 있있다. 얼본어로 진행되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있지만 나는 그 제목을 가금 떠올렸다.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살고 와야 할 것을 살아낸다면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을 미래를 기억이 되도록 살가고 있을 때 어느 날 그것이 보인다면 그럼에도 그것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미래로 우리 앞에 벌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 P153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을 숨을 죽이고 전한다. 글로 목소리로 전달된 그것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이후 서서히 알게 되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80년 6월의 80년 7월의 80년 8월의 80년 12월의 81년의 82년의 광주는 어떤 곳인가. 그때 광주의 공기와 냄새는 어떠했는가.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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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하루키가 제일 좋다. 요즘 신작 소식도 없지만, 그러면서 계속 개정판이 나오길래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구매했다. 이미 가지고 있지만... 나같은 사람 때문에 개정판이 계속 나오나보다. 최근에 내가 산 하루키 개정판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그리고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이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았다. 재독을 계속해도 질리지 않는다. 기분전환이 필요할때 역시 하루키 책이 최고다.



1.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N25073

하루키의 첫 작품. 특별한 줄거리도 없지만 정말 재미있다. 누군가는 이런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냐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하루키 특유의 문체와, 텅 비어 있지만 허무로 가득찬 분위기가 좋더라. 나와 쥐의 특별할건 없지만 특별한 이야기 속에는 청춘의 불안과 우울이 잘 그려져 있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 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2. 1973년의 핀볼   N25074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연작 느낌의 작품으로, 첫 작품에 비해 다소 덜 인정받는 작품이지만 나쁘지 않다. <바람의...>에서는 나와 쥐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 작품에서 나와 쥐는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인물의 우울함과 허무함이 닮아 있어서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소울메이트라고나 할까? 이제는 사라져 버린 핀볼 기계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인 이 작품은 다음 작품인 <양을 쫓는 모험>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다시 입을 다물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건 아주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되는 그 따스한 추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을 지금도 여전허 방항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집아서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때까지의 짧은 한때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3.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N25075

1995년 고배 대지진 이후를 배경으로 한 여섯편의 단편이 실린 연작소설로, 하루키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집이다. 지진 이후 편지한장만 남기고 떠난 아내, 모닥불에 빠진 쓸쓸한 사람들, 자식의 탄생을 부정하는 오른쪽 귓볼이 없다는 아버지, 지진으로부터 도쿄를 구한 개구리, 고베 대지진 이후 악몽을 꾸는 아이까지 모든 단편들이 좋았지만, 하루키의 작가로서의 다짐을 엿볼 수 있는 <벌꿀파이>가 가장 좋았다.

˝지금까지지와 다른 소설을 쓰자, 하고 준페이는 생각한다. 날이 새어 주위가 밝아지고, 그 빛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꼭 껴안고 누군가가 꿈꾸며 애타게 기다리고있는 것 같은 그런 소설을.˝




앞으로 하루키의 어떤 신작이 나올까에 대한 기대와 함께 걱정도 든다. 하루키의 연세를 생각하면 쉽지 않을거 같지만 그래도 하루키니까 가능할거라 믿는다. 하루키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어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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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8-29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소설을 쓰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요. 꼭 썼으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5-08-29 16:25   좋아요 0 | URL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불확실한 벽>이 설마 마지막은 아니겠죠~!!

페넬로페 2025-08-29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하루키 사랑
정말 대단하신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