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계를 초월한 무엇인가가 그 아이에게서 느껴져. 그 아이는 마치 어떤 예외적 존재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는 동떨어져 살고 있잖아.‘ - P26
그의 열정은 어딘가 다른 데 원천을 둔 것으로, 이 지상에 존재하는 것에 기인하지는 않은 듯했다. 옥타브의 지극히 고상한 용모까지도 부인의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아들의 눈은 그토록 아름답고 다정했지만 어머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눈은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천상에서 펼쳐지는 행복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그 눈 속에는 지옥의 고통이 내비쳤다. - P27
‘아르망스는 나에게 듣기 좋은 말을 건네지 않았어. 이 장소에서 그녀 혼자만 나에게 관심이 없어. 돈 때문에 나에 대한 관심이 갑절이 된 이곳에서 말이야. 이곳에서 그녀만이 유일하게 고상한 심성을 지니고 있어.‘ 그러자 아르망스를 바라보는 일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다. ‘천박함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야.‘ 옥타브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게 저녁 시간이 무르익어갈수록 그는 앞서 가슴속에 차 있던 우울함만큼이나 선명한 기쁨을 맛보았다. - P34
‘어디를 둘러봐도 천박함뿐이야. 여기에 맞서려면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을 찾아내는 방법밖에는없어.‘ - P39
그래서 그녀만을 바라보고, 그녀와 더불어, 오로지 그녀를 위해 또 그녀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가는 거야 할 수만 있다면 열정을 다해서 그 여인을 사랑할 텐데………… 사랑할텐데! 하지만 나는, 얼마나 불행한가!‘ - P39
내가어떤 책들을 골라 읽는지 염탐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 내 머릿속의 생각을 짐작하게 놓아둘 수는 없어. 내 영혼이 평정을 잃고 흔들릴 때 그것을 다독이기 위해 쏟아내는 글들을 훔쳐보게 해서도 안 되고. - P42
그때 그녀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옥타브가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으로 고통 받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종류의 감수성이란 사람을 불행으로 밀어 넣으면서도 또한 사랑받을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법이다. 불꽃같은 상상력으로 인해 그는 자신이 누릴 수 없는 행복을 부풀려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메마르고 차갑고 사리판별에 충실한 성격을 지니고 태어 났더라면, 자신이 지닌 그 밖의 장점들을 합해서 더할 수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려는 기질이 부족했다. - P51
옥타브 앞에 장애물 하나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 장애물 때문에 그는 행복에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장애물을 응시하다 보면, 그 너머의 행복이 보였다. 적어도 괴로움은 끝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어떤 고통은 끝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제 그의 삶에 목표가 하나 새로 생겼다. 그는 자신을 향한 아르망스의 존중심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 P67
‘다른 모든 여자들로부터 저렇게 공격당하는 그녀가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걸!‘ 이것은 뚜렷한 문장으로 떠오른 생각이라기보다 차라리 느낌이었다. ‘다른 여자들이 부자인 만큼이나 그녀는 가난해. 그러니 설령이 자리에서 그녀만이 돈에 안달복달한다해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그녀는 돈을 경멸하거든. 1천 에퀴의 연수입도 없는 처지면서도 말이야. 반면 하나같이 풍족하게 사는 저 여자들은 오로지 돈만을 저렇게 천박하게 떠받들고 있구나.‘ - P82
"예전에 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차지했던 위치를 회복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줘요. 즉시 그렇게 할게요." 깊이 억누른 간절함이 배어 나오는 이 마지막 한마디는 아르망스가 버틸 용기를 내기에는 너무나 강력했다. 더 이상은 냉정함을 가장하고 있기가 불가능했다.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그녀는 소리 내어 울었다. 그녀는 옥타브가 무엇인가 말을 더 해서 가슴이 더욱 아파질까 봐, 그렇잖아도 간신히 자제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 P93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들어 세상에 남은 유일한 기쁨에 한층 더 맹목적으로 매달릴 뿐이었다. 바로 옥타브를 생각하는 기쁨이었다. 그녀는 매일 몇 시간 정도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내온 터였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겪게 되는 소소한 사건들이 쌓여 마침내 자신의 사촌오라버니를 예전과는 다른 감정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그 감정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그녀가 그와 친밀한 대화를 나누지 않으려고 그토록 조심했던 것은 마음을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지 그를 경멸하게 되어서가 아니었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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