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22090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꿈을 꾸지 않으면 미쳐버려. 책에 그렇게 나와. 그건 배출구리구, 사람들은 잠잘 때마다 모두 꿈을 꿔 꿈을 안꾸면 돌아버려.˝


레이먼드 카버를 다시 만났다. 작년에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었는데 아마 그때 별 세개를 줬던것 같다. 그때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대성당>은 첫번째 만남보다 확실히 더 좋았다. 책을 읽었던 시기의 문제인걸까? 내가 문제인걸까?


총 12개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단편집 <대성당>을 읽다보면 약간은 일관된 흐름이 느껴지는데,

일단 단편들은 모두 새드앤딩이고, 결말 부분은 상당히 모호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일관되게 등장하는 소재인 술과 이혼, 그리고 체념, 체념, 체념.


인상적인 몇편의 단편을 소개해 보자면,


<깃털들>의 경우 ‘잭‘과 ‘프렌‘ 부부가 ‘버드‘의 집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끝나는데, 도대체 ‘버드‘의 집에서 어떤 감정을 경험했기에 아기를 원하지 않았던 ‘잭‘과 ‘프렌‘이 아기를 가지려 했는지 갸우뚱 했다. 못생긴 ‘버드‘의 아기를 봐서? 아님 ‘버드‘ 집에 있는 공작 때문에? 아님 ‘버드‘와의 비교를 통한 현실에 대한 자기만족 때문에? 정확히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왠지 알듯 모를듯한 감정을 느꼈다.

[버드와 올라의 집에서 보낸 그날 저녁은 특별했다. 특별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내 인생이 여러모로 썩 괜찮다고 느꼈다. 내가 느낀 걸 프랜에게 말하고 싶어서라도 나는 어서 둘만 있고 싶었다. 그 저녁에 내게는 소원 하나가 생겼다. 식탁에 앉아서 나는 잠시 두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했다. 소원이란 그날 저녁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것, 혹은 다시 말해 그날 저녁을 놓아버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소원은 실제로 이뤄졌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은 내게는 불행이었다. 하지만, 물론, 당시에는 그걸 알 도리가 없었다.] P.40



<셰프의 집>은 마무리가 더 아련하다. ‘셰프‘라는 지인이 별장을 ‘웨스‘에게 빌려주고, 주인공은 그곳에서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고, 전 부인(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처음으로 마주한 행복한 장소.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셰프의 딸이 별장을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웨스‘는 집을 비워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행복했던 순간이 다시 찾아올까? 하지만 왠지 이 행복이 마지막일 거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가 눈을 떴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는 그대로 가만히 앉아서 창문을 바라봤다. 뚱땡이 린다 라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녀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미했다. 그저 이름일 뿐, 웨스는 일어나 커튼을 쳤고 바다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러 갔다. 아이스박스에는 아직 물고기가 몇 마리 남아 있었다. 다른 건 별로 없었다. 오늘밤에 다 먹어치워야겠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P.53



<칸막이 객실>은 감정이 변하는 한순간을 포착해서 그린 멋진 작품이다. 부인과 이혼하고, 아들과는 서로간의 폭언과 폭행을 통해 영영 사이가 멀어져 버린 주인공 ‘마이어스‘는 부인과 아들의 소식도 모른채 살아간다. 그렇게 8년을 살아가던 중, 아들에게서 편지가 온다. 자신은 프랑스에 살고 있다고,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너무나 갑작스런 편지에 당혹함과 안도감을 느낀 ‘마이어스‘는 아들을 만나러 프랑스로 간다. 그리고 프랑스에 가기 전 이탈리아에 들려서 아들에게 줄 선물로 시계를 산다.


하지만 기차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들에게 선물할 시계가 없어진 걸 알게 된다. 누군가가 훔쳐갔겠지만, 갑자기 그의 심경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시계를 잃어버린 것과 동시에 과거 아들에 대한 분노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그는 시계를 잃어버린게 아니라, 아들이 보고싶은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는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기차역을 지나쳐 그냥 지나간다. 불행했던 과거는 다시 조우하더라도 또 불행일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 아이는 마이어스의 청춘을 집어삼켜버렸고, 그가 연애해서 결혼한 젊은 여인을 신경과민의 알코올 중독자로 바꿔놓고는 번갈아가며 병도 주고 약도 줬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이 먼길을 나섰단 말인가. 마이어스는 자문했다. 그는 아이의 손, 자기 인생의 적인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싶지도 않았고 어깨를 토닥거리며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는 아이에게 엄마에 대해 묻고 싶지도 않았다. ] P.82



하지만 이 책의 많은 단편들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은 <열>이었다. 주인공인 선생님 ‘칼라일‘은 온갖 불행을 겪는다. 아내인 ‘아일린‘은 남편의 직장 동료와 바람이 나서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멀리 떠나버린다. 베이비시터는 불량하기 그지없고, 그의 인생은 그저 패배자로 전락한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에겐 불행일 수 밖에 없는 관계의 불균형.

[여름 동안, 아일린은 아이들에게 몇 장의 카드들과 편지들과 자기 사진들과 집을 나간 이후에 그린 펜화 몇 개를 보냈다. 그녀는 또한 칼라일에게 이 문제이 문제를 이해해달라며, 하지만 자신은 행복하다는 내용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행복. 마치 행복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투로군, 이라고 칼라일은 생각했다. 그녀는 늘 말한 대로, 그리고 자신이 정말 믿었던 것처럼 자신을 사랑한다면ㅡ자신도 그를 사랑했다는 걸 잊지 말라며 모든걸 이해하고 일어난 일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진실로 맺어진 것은 절대로 다시 풀리지 않아.˝] P.227



하지만 잠깐의 행복이 찾아온다. 새로 구한 노년의 베이비시터는 그의 가족에게 행복을 안겨준다. 아이들은 엄마의 공백없이 밝게 지내고, ‘칼라일‘도 여자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돌아들어온게 있으면 돌아나가게 있는걸까? 칼라일‘은 심한 열병에 빠지고, 게다가 베이비시터는 개인사정으로 곧 일을 그만두게 된다. 행복한 시간은 언제나 짧다.

[그동안, 칼라일의 인생은 몇 번의 변화를 겪었다. 하나를 들자면, 그는 아일린이 떠났으며, 그가 이해하는 바,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상황이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 그만뒀다. 캐럴과 함께 보내지 않는 밤에만 오직 그런 밤들의 아주 늦은 시간에만, 아일린에 대해 그가 여전히 지니고 있는 애정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게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P.241



하지만 열병은 곧 치유된다. 그리고 베이비시터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왠지 모르게 홀가분해지는 기분. 베이비시터는 떠났지만 ‘칼라일‘과 자녀들의 삶은 어쨋든 계속될 것이다. 미래가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모르지만 그냥 어떻게든 살아가지는게 인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P.253


이 모든 것 또한 결국 지나간다.
Everything must go

댓글(57)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러블리땡 2022-08-12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부끄럽지만 사놓고 안 읽은 책인데 단편집이었군요 ㅠ <열> 기억하고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좋은 책 추천 감사해요 즐거운 연휴보내세요~ ^^

새파랑 2022-08-14 10:28   좋아요 0 | URL
저도 부끄럽지만 안읽고 쌓아둔 책이 백권이 넘는거 같아요 😅 즐거운 연휴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초란공 2022-08-14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분명히....언젠가 저도 읽었을 텐데, 기억이 안납니다. ㅜㅜ 급하게 소화도 시키지 않고 후루룩 읽어버리고 덮었나 봅니다.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집니다. ㅋ

새파랑 2022-08-15 11:39   좋아요 0 | URL
이 책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신 책이더라구요. 그래서 저 리뷰가 좀 부끄럽긴 합니다 😅 축하 감사합니다~!!!

2022-09-20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0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1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