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주의자 대산세계문학총서 168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정란기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22039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다르고 싶어 하는데, 당신은 남들과 똑같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순응해서 살아가는 것과 순응해서 살아가는 척만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꼭 순응해서 살아가는게 맞는걸까?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순응주의자>를 통해 정상적인 삶의 기준은 어떤건지, 과연 기준이라는 게 있는건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마르첼로˝는 어린시절에 무언가를 죽이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진짜 권총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으며 과대망상적인 생각을 하는 다소 특이한 아이였다. ˝마르첼로˝는 본인이 잔인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부모님에게도 말하려고 하였으나 부모님은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엄마를 죽일 거야.‘ 마르첼로는 문가에 가만히 선 채 확신했다. 그때 이상하게 잔인하고 공격적인 흥분이 엄습해왔다. 동시에 그 싸움에 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버지를 도와야 할지 어머니를 보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또한 훨씬 더 심각한 죄로 인해 자신의 죄가 무마되는 것을 보고 싶은 희망이 고개를 들면서 한껏 고무되기도 했다. 사실, 한 여자를 죽이는일에 비하면 고양이를 죽인 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P.36



예쁘장하게 생긴 ˝마르첼로˝는 학교에서 여자애 같다는 놀림을 받았고, 친구들이 강제로 치마를 입게 하는 등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때 ˝마르첼로˝를 구해준 이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리노˝ 였다. ˝리노˝는 ˝마르첼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려 하고, ˝마르첼로˝는 자신에게 권총을 준다면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해서 ˝마르첼로˝는 ˝리노˝를 따라가는데....˝리노˝는 그냥 호의를 배푼 게 아니었다. ˝리노˝는 소아 동성애자 였고, ˝마르첼로˝를 덥치기 위해 그를 유인한 거였다.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마르첼로˝는 그를 따라갔고, 결국 ˝마르첼로˝는 자신을 덥치려 하는  ˝리노˝를  총으로 쏜다. 그리고 도망친다. 과연 ˝리노˝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이후 시간이 흘로 30살이 된 ˝마르첼로˝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의 비밀요원으로 성장한다. 어린시절 남들과 달랐던 성격과 총격사건의 충격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과 유사해 보이는, 그리고 사회의 체제에 따르는 순응주의자로 살아간다.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고, 집도 대출받아 사고, 국가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삶.

[결혼은 자신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결혼을 통해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평소처럼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신이 정상적이고 예측 가능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P.204



하지만 ˝마르첼로˝는 이러한 삶을 진심으로 원한게 아니었다. 그는 단지 진심으로 보이게 행동할 뿐이었다. 마음속에는 항상 다른 생각, 다른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마르첼로˝의 특성때문에 그가 ‘비밀요원‘ 이라는 직업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마리아˝와 결혼한 ˝마르첼로˝는 프랑스 파리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 신혼여행에는 다른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목적은 자신의 대학시절 교수였던 그리고 반파시즘 운동가인 ˝콰드리˝의 암살을 돕는 것이었다. ˝마르첼로˝ 부부는 파리에서 ˝콰드리˝의 집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콰드리˝와 그의 부인인 ˝리나˝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또한번 이상하게 전개된다.

(참고로, 어린시절 ˝마르첼로˝를 범하려 했던 동성애자의 이름이 ˝리노˝였는데,  ˝콰드리˝의 부인의 이름이˝리나˝이다. 그렇다. ˝리나˝도 동성애자 이다. 이름이 비슷해서 동성애자가 아니라, 일부러 작가가 그렇게 의도한거다.)


˝마르첼로˝는 처음보는 ˝리나˝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의 부인인 ˝마리아˝에게서는 진심으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데 ˝리나˝는 동성애자였고, ˝마르첼로˝의 부인인 ˝줄리아˝를 처음 보자마자 사랑을 느낀다. 반면 ˝줄리아˝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감싸안아준 ˝마르첼로˝을 여전히 사랑한다. 이게 다 첫 만남에서 이뤄진 것들이다.(역시 열정의 나라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마르첼로˝는 ˝리나˝와 함께할 수 있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순응해온 모든 것, 심지어 방금 결혼한 ˝줄리아˝ 까지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참고로 ˝마르첼로˝는 신혼여행중이다...) 그리고 ˝리나˝가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의 부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리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면서,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왔으면서 갑자기 감정의 변화가 생긴 원인은 무엇이었일까? 무언가가 그의 건드리지 말아야할 것을 건드렸기 때문일까?

[사랑이 무엇이기에 이제 자신의 전 생애를 망치고, 막 아내가 된 여자를 버리고, 정치적 신념을 배반하고, 돌이킬 수 없는 불륜에 모든 것을 걸려고 하는가?]  P.305





이후 우여곡절 끝에 ˝마르첼로˝는 임무 달성에 기여한다. 하지만 결국 ˝리나˝와는 함께 할 수 없었다.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마르첼로˝와 ˝줄리아˝는 처음처럼, 다시 시대에 순응하며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그리게 10년이 지나고,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부는 붕괴된다. 그리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독재의 상징물들을 모두 부서버린다. 과거 사람까지 죽이며 비밀요원으로 근무하면서 파시스트 정부에 순응하며 살았던 ˝마르첼로˝와 그 가족의 미래는 어떻게 바뀔까?

[‘하느님, 저들이 폭격을 맞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들은 죄가 없습니다.‘ 그런 다음 체념한 그는 풀밭에 입을 댄 채 비행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차는 문이 열린 채 조용했다. 그는 아무도 나오 지 않을 것을 알고 통렬한 슬픔을 느꼈다. 마침내 폭격기가 그의 위에 왔다가 불타는 하늘과 침묵과 밤 속에서 질질 끌듯이 다시 멀어져갔다.]  P.443





<순응주의자>는 강압적인 정치체제 안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간다는게 어떤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진실성이 없는, 겉으로만 정상적으로 보여지는 삶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정상적이지 않은 사회가 만든 허상을 아무 비판 없이 순응하면 살아가는 삶 역시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모라비아˝는 ˝마르첼로˝처럼 어떠한 진실성 없이, 잘못된 사회 관습과 권력에 순응하며 살아갔던 사람의 미래는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독자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Ps 1. 내가 정상적이라 생각했던 것들 중에 어쩌면 비정상적인 것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 겠다.

Ps 2. 책이 막 흥미롭고 그런 건 아닌데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정말 몰입감 있게 읽었다. (안쉬고 다이렉트로 다 읽음) 이게 작가의 필력인가 보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3-08 16: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어린시절의 마르첼로덕에 성장 후의 마르첼로를 조금 따뜻하게 볼 수 있었어요 ㅎㅎ

새파랑 2022-03-08 17:10   좋아요 2 | URL
역시 따뜻한 심장을 가지신 미니님~!! 그렇게 볼 수도 있을거 같네요. 전 뭐 이런 놈이 있지? 이런 생각하고 읽었는데 😅

수이 2022-03-08 17: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추신 보니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다가옵니다 새파랑님! 대산세계문학총서 언제 저렇게 예뻐졌어요? 깜놀!

새파랑 2022-03-08 17:12   좋아요 2 | URL
최근에 나온 대산세계문학은 표지가 좀 다르더라구요 ㅋ 제가 쉬지않고 읽었다고 해서 막 좋았다는건 아닙니다 ㅎㅎ다른 분들의 리뷰를 꼭 보시고 결정하세요 😅

청아 2022-03-08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쉬고 다이렉트로 읽음‘재밌네요ㅎㅎㅎ 주인공 캐릭터 무섭지만 흥미롭고요.
(왜 이런 캐릭터가 끌리는지ㅠ) 음..비밀요원에 잘 어울리는것 같아요. 이 캐릭터가 특별한 케이스일뿐 누구나 어느정도씩 순응하며 살아가는듯 합니다.
친구랑 오늘 얘기한거랑 겹쳐 놀랐습니다. 😳

새파랑 2022-03-08 17:17   좋아요 2 | URL
친구랑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셨나 보네요~!! 다 읽고나니 어느새 밤이었습니다 ㅋ 미미님도 이책 사셨을텐데 한번 읽어보세요 ^^

페넬로페 2022-03-08 18: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다가 멈추고 말았는데 어릴때의 마르첼로가 정상적인 아이는 아니더라고요. 혹시 소시오패스 기질을 지녔는가 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조금밖에 읽지 않았지만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책 같았어요^^
모라비아 작가의 필력이 느껴지더라고요^^
정상과 비정상은 정말 모호한 것 같아요**

mini74 2022-03-08 18:47   좋아요 2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부모의 모습이 ㅠㅠ 그래서 마르첼로가 짠해보이기도 했던 거 같아요. ~ 페넬로페님 말씀처럼 정상과 비정상은 정말 모호한 듯 합니다 ㅎ

새파랑 2022-03-08 19:38   좋아요 2 | URL
소시오패스가 사라지고 대신에 순응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잡긴 쉽지 않은거 같아요~!!

2022-03-08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08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2-03-09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순응이라 해도 그게 정말 옳은지 그른지 생각은 해봐야 할 듯한데, 마르첼로는 그런 건 하지 않고 순응하고 살았네요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게 사랑이었지만, 이루지 못할 사랑이었군요 정상 비정상이 따로 있을까 싶기도 해요 많은 사람이 그렇다 하면 이상한 것도 정상이 되기도 하니... 언제나 생각하고 살아야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03-09 09:43   좋아요 1 | URL
순응도 어떤 사회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지는거 같아요~! 정상이라는 것도 기준에 따라 다르고~~ 바른 생각이 가장 중요한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