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간만에 열린책들 35주년 세트 읽기.
인간실격은 이번에 읽으면 세번째 읽는 건데 다시 읽어도 역시 너무 좋다.



<인간실격>
참으로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 P9

<인간실격>
나는 과연 행복한 것일까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정말 자주 들었는데, 나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같은 심정이었고, 오히려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한 듯 보였습니다.

(밝아 보이는 사람일수록 내면에 더 큰 어둠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 P14

<인간실격>
나는 인간에 대한 공포감에 늘 버들버들 떨면서, 또 인간으로서의 자기 언행에 조금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온갖 고뇌를 가슴속 작은 상자에 숨기고, 그 우울과 긴장감을 기를 쓰고 감추며, 오로지 천진난만한 낙천성을 가장하면서 점차 광대 짓만 하는 기괴한 사람으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는 사람이 많을까, 솔직히 맨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을까?) - P17

<인간실격>
하지만 나의 본성은 그런 장난질과는 거의 정반대였습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하녀와 하인들로부터 애처로운 일을 배웠고, 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린아이에게 하는 그런 짓거리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범죄 중에서 가장 추악하고 저급하며 잔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참았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본성을 또 하나 보았다는 기분마저 들어서 맥없이 웃고 말았습니다. - P23

<인간실격>
피차 거짓말을 하고,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서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실로 번듯하면서도 그야말로 깔끔하고 밝고 뒤끝없는 불신의 예가 인간 생활에 충만해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나는 서로를 속인다는 것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나 역시 광대 짓을 하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을 속이고 있으니까요. - P25

<인간실격>
그리고 아무에게도 호소하지 못하는 나의 그 고독한 냄새를 수많은 여성이 본능적으로 맡은 탓에, 훗날 갖가지로 이용당하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여자들에게 사랑의 비밀을 지킬 수 있는 남자였던 셈이지요.

(입이 무거운 남자) - P26

<인간실격>
나는 아네사뿐만 아니라 여자는 대체 어떤 기분으로 살아가는 지를 생각하는 게 지렁이의 마음을 더듬는 것보다 어렵고, 성가시고, 징글징글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나는 여자가 그렇게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 뭐든 단것을 입에 넣어 주면 그걸 먹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만큼은 어려서부터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성의 마음을 이해하는건 어느 시대나 어려운 난제인 것 같다.) - P36

<인간실격>
신이 나서 일어납니다.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여자를 실망시키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남자가 뭔가를 부탁하면 여자는 기뻐한다는 것을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요. - P58

<인간실격>
‘외로워요.‘
여자가 그 한마디를 중얼거려 주면, 나는 천만 마디의 신세타령보다 한결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 세상 어느 여자들에게서도 그 한마디를 끝내 듣지 못한 것을 나는 기이하고 이상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외롭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말 못 하는 처절한 외로움을 3센티미터 정도 너비의 기류처럼 온몸에 지니고 있었어요. - P95

<인간실격>

"세상이 용서치 않을 거야."

"세상이 아니겠지. 당신이 용서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 하는 사상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세상은 당신 개인일 뿐이다.) - P97

<인간실격>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그 생각이 언뜻 뇌리의 한 끝을 스치고 지나가, 퍼뜩 놀랐습니다. 혹시 그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을 시노님이라 생각지 않고 앤터님으로 여겼다.면? 죄와 벌, 절대 서로 통하지 않는 것,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것. 죄와 벌을 앤터로 생각한 도스토옙스키의 녹조, 썩은 연못, 엉킨 실타래 속…… 아아, 이제 좀 알겠다. - P120

<인간실격>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 P122

<인간실격>
신에게 묻겠습니다. 저항하지 않는 것은 죄인가요? 호리키의 그 아리송하고 부드러운 미소에 나는 울었고,
판단도 저항도 잊은 채 차에 올라탔으며, 그리고 이곳에
따라와 미치광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나간
다고 해도 나는 역시 미치광이, 아니 폐인이라는 각인이
이마에 찍히게 되겠지요.인간, 실격. 이제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실격...) - P137

<인간실격>

지금내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몸부림치면서 비명을 지르듯 처참하게
살아온 인간) 세상에서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딱 한
가지는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
사람들이 대개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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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0-09 2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사진을 보다가, 뒤늦게 새파랑님의 손을 보았습니다.
새파랑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1-10-10 00:40   좋아요 2 | URL
ㅋ 한번 밖에서 책사진을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바람돌이 2021-10-10 0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실격 한번도 안 읽었는데 세번째라구요? 역시 새파랑님. ^^

새파랑 2021-10-10 08:26   좋아요 0 | URL
인간실격 완전 공감되고 좋아요. 좀 우울한 분위기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