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가리라는 작가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던 걸까?
고급스러운 우울함이 느껴진다. 여운이 남는 결말, 그만이 느낌이 살아있다. 그래서 계속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비둘기 시민>
라쿠센은 나에게 힐난의 눈길을 던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살아오는 동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수없이 보지 않았던가. - P179
<역사의 한 페이지>
충성스러운 슈바이크가 정중히 총독의 몸을 민다. 총독은 멜빵에 매달려 흔들린다. 충격 때문에 술이 좀 깨는 것 같다. 모범군인 슈바이크는 주의 깊은 눈길로 그가 하는 양을 바라본다. 매달린 몸뚱이가 연신 흔들린다. 그 규칙적인 움직임이 슈바이크에게 현기증을 일으키는지 그는 상관의 다리를 꼭 붙잡는다. 흔들림이 멎을 때까지. 이윽고 슈바이크는 상관의 몸으로부터 돌아선다. - P206
<벽>
"그렇다네, 벽은" 하고 의사는 꿈꾸듯이 중얼거렸다. "자네의 아주 참신하고 흥미로운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주제가 될 걸세. 사람들의 가슴속에 이제 신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야" - P215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바다 위야. 아들린, 내가 유명해지면 평생 내 여자가 되어준다고 약속했지. 미친 듯이 날뛰는 이 높은 파도 아래에서 난 당신에게 외치고 있어. 곧 만나자고 말야." - P222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사람들이 내 동상을 세웠다던군. 이젠 끝짱이야. 난 이제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거야. 아들린, 난 당신의 꿈을 실현시켰어. 하지만 도대체 어떤 대가를 치른거지?"
(무모한 대가를 기대한건가? 사랑은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쉽게 변하는 것이다) - P223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그녀는 "영원히 당신의 것인 아들린 피샤르동"이라고 서명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영원을 제멋대로 축소시키면서.
(감탄... 영원은 상투적인 말로 쓰일 수도 있다...) - P225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올라가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질 기운조차 없었다. 나는 저항할 수 없는 깊은 혐오감에 사로잡혀 낙담한 채 그 자리에서 꼼작할 수 없었다. 세상은 다시한번 나를 배신했다. 대도시에서든 태평양의 가장 작은 섬에서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계산이 아간의 영혼을 더럽히고 있다. 순수에 대한 내 끈질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정말이지 무인도로 들어가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인가. - P272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저놈은 일 년여 동안 자넬 매일같이 고문한 자가 아닌가! 저 놈은 자넬 괴롭히고 학대하지 않았나! 그런데 경찰을 부르는 대신 저 작자에게 매일 저녁 먹을 것을 갖다주다니? 그럴 수가 있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그가 자음번에는 잘해준다고 약속했다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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