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체인지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8
최정화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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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1기 

아마 2025년 ‘올해의 영화’로 「서브스턴스」를 꼽게 될 듯하다.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 담고 있는 메세지의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으니, 아마 올해 안에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서브스턴스」를 능가하는 여운을 선사하는 작품을 찾기는 힘들지 않을까. (설마 귀칼 극장판이…?) 그런데 이번에 ‘은행잎 1기’로 읽게 된 작품 『호르몬 체인지』은 그런 「서브스턴스」를 떠올리게 했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비슷했고, 서사가 진행되는 방향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둘 다 정말 재미있었다.


근미래의 대한민국은 ‘늙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셀러’라 불리는 젊은 사람들의 호르몬을 빼내어 ‘바이어’ 노인에게 주사하면, 노인들은 젊어진 몸으로 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완전하게’ 발달되지 못한 탓일까, 셀러의 입장에서 큰 신체적 부담과 위험을 피할 순 없었다. 호르몬을 추출하는 수술을 받은 뒤에는 2~3주 간 좀비처럼 누워만 있는 채 회복기를 거쳐야 하고,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호르몬 체인지』는 거대한 옴니버스 마냥 꽤 많은 인물들의 시점이 짧은 챕터마다 교차하며 전개된다. 그렇기에 바이어의 시선, 셀러의 시선, 바이어 가족의 시선, 셀러 가족의 시선, 호르몬 체인지 수술을 영업하는 인물의 시선 등등 하나의 소재를 두고 정말 많은 입장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젊음에 대한 욕망’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화 서브스턴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면서도, 이 책이 영화보다 더욱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왜 젊은 몸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렇게 젊어지면 행복한 삶을 보내는가, 신체적 위험이 따름에도 어째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가, 그런 사람을 보내는 가족들은 어떤 심정인가. 각각의 입장들이 모두 납득이 되어 모순적인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 너무너무 재밌게 읽은 영화 서브스턴스의 한국문학 버전 『호르몬 체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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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정해연 지음 / &(앤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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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총 두 개의 중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피해자 유족의 시점, 다른 하나는 가해자 노인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두 편의 소설은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사의 흐름을 개별적으로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두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똑같다. 

‘모든 것은 엉망이었다.’


피해자 유족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챕터는 딸을 잃은 어머니의 감정이 ‘우울, 체념’이라는 하강의 늪이 아닌, ‘분노’라는 상승 곡선을 타고 가파르게 치솟는다. 그녀는 이성을 잃고 ‘파국’이라 부를 법한 일까지 저지르게 된다. 독자로서 너무도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발 멈추라고, 거기까지만 하라고, 속으로는 수백 번도 더 외쳤다. 그러나 실제였다면, 현실에 그런 사람이 내 옆에 만약 있다면 아마 절대 그럴 수 없겠지. 그 누가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감히’ 헤아릴 수 있으랴. 


이와 달리 가해자 시점을 읽을 때에 나의 마음을 완전히 덮쳤던 감정은 ‘분노’였다. 가해자 본인의 감정보다 그를 둘러싼 가족의 행동들, 그리고 법과 제도들이 상당히 큰 분노를 유발한다. 어떻게든 낮은 형량을 받으려 발버둥치는 노인의 딸, 그런 그녀에게 ‘공탁금’ 제도를 제안하는 변호사 등… 여기서 공탁금이란 ‘합의를 제안하는 차원에서 걸어두는 돈’으로, 만약 피해자 측에서 합의를 거절하면 이는 국가로 귀속되지만 ‘합의를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으로 참작되어 낮은 형량을 받게 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제도이다. 현실적인 제도의 부조리함까지 고발하는 날카로운 작품이어서 더더욱 이 책을 읽기가 힘들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을 우리는 피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불편해서, 불쾌해서 이런 작품들을 피하면 우리는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잃어버린다. 우리는 문학을 읽는가. 감정을 느끼는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슬픔과 분노 등의 감정에 공감할 있기 위해서, 연대할 있어서 읽는 아닌가? <드라이브> 읽기 전까지 나는공탁금제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교통사고 사건에 부여되는 평균적인 형량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 충분히 벌어질 있는 일임에도 나는 이들의 감정에 대해 전혀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직접 겪어야만 있는 것들이 있겠지만,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역할을 하는 것이 나는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책이 상당히 불편하고 힘들었다는 점에서 쉽게 추천하지는 못하겠으나, 읽히면서 동시에 묵직한 사회적 메세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읽어야 하는책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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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5 소설 보다
강보라.성해나.윤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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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어의 정원」 - 강보라

오랜만에 구입하여 읽기 시작한 소설 보다 시리즈, 그 첫번째 수록작부터 나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하였다. 그렇게 읽은 세 편의 소설들 중 두 편이 너무도 좋았어서, 그에 대한 감상을 짤막하게나마 남기고자 한다. 첫 수록작 「바우어의 정원」의 주인공은 세 번의 유산을 겪은 여배우 ‘은화’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연극 오디션의 연기 소재로 활용하여 재기를 꿈꾼다. 그렇게 참여한 오디션장에서 은화는 후배 ‘정림’을 만난다. 정림 또한 자신이 갖고 있는 상처를 극화하여 이 오디션에 참가한 것인데, 이 둘이 만나 대화를 나누며 빚어지는 트라우마의 발현과 구원의 과정이 너무도 애틋하고 뭉클하다. 단편의 분량임에도 감동의 규모가 거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무드」 - 성해나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전혀 없는, 오히려 부정하기까지 하는 ‘듀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에 대한 설정부터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는 것이 ‘성해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스무드」는 그런 주인공이 한국을 방문하고 관광하던 와중에 ‘타이극기’ 집회에 뭣도 모르는 채 참여하며 벌어지는 일화를 담고 있다. 이 또한 성해나 작가다운 유머가 듬뿍 느껴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여기에 더해 메세지 하나를 던지는데, 바로 주인공의 생경한 한국 체험을 통해 주인공과 아버지 간의 어색하고 서투른 관계를 고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을 안내하던 ‘미스터 김’으로 인해 어렸을 적 아버지와 있었던 일화를 떠올리며, 알 수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아버지에 대해 잠시나마 깊이 생각해보는데… 이 또한 뭉클하고 아름다운 여운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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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주차장 찾기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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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단13기

내 주변에 나만큼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는 없다. (없을만 한가….?) 하지만 ‘종종’ 문학을 읽는 친구가 있긴 하다. 그래서 가끔 그런 친구에게 책추천을 요청받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친구가 내게 너무도 충격적인 말을 하는 것이다.

🗣 한국문학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님?

그 말을 들은 나는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작년에 한강 작가님에 노벨상 받은 것만 봐도 한국문학이 이룩한 성취가 엄청나다는 걸 방증하는데, 감히 네가 뭔데 그딴 소리를 지껄…이냐고 말하려다 내 말을 끊으며 다급하게 그 친구가 위 발언에 대한 부연 설명을 더했다.

🗣 아니 그게 아니라, 한국문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분위기가 다 비슷비슷하다고.

흠…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혼자서 곱씹어보고 또 자세히 대화도 나누어보니 대충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이를테면 한국 문학은 장편보다 단편 소설집이 많이 출간되는데, 그런 단편들이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는… 특히 단편소설도 한국 사회의 일면을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긴 소설들이 많다는 것이랄까나…? 소설의 문체 또한 차분하고 부드럽게 진행되다가 위기-절정 부분에 들어 조금씩 날카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그런 느낌.

그런 친구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작가가 생겼다. 바로 이번에 읽은 <무료 주차장 찾기>의 오한기 작가. 네가 지금까지 읽어온 한국 작가와는 전혀 다른, 완전히 딴 판의 글을 쓰는 작가라고 자신있게 소개해줄 수 있다. 나 또한 한국문학을 지금까지 많이 읽어왔지만, 오한기 작가만큼 독특하고 튀는 ‘그만의’ 글을 쓰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크… 그 친구가 오한기 작가의 글을 읽고나서 느낄 당황과 경이를 상상하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난다.

이쯤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해볼까…. 아니 못하겠다. 지금까지 읽어온 오한기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이 책 외에 <인간 만세> 한 권밖에 없지만, 항상 이 작가님의 작품은 줄거리 요약이 너무 어렵다. 대신 내가 느끼는 오한기 작가의 문체에 대한 내 감상을 말해보고자 하는데, 쉽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극한의 리얼리즘과 환상문학이 교묘하게 결합한 문체’라는 것! 도입부를 읽을 땐 ‘이게 에세이야, 소설이야?’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러다가 서사가 진행될수록 말도 안되는, 도무지 현실에서는 일어날 일이 없는 사건들이 막 발생하는데, 그 지점에서의 기묘함이 아마 오한기 글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이번 연작 소설집 역시 그러했다. 때문에 한국문학의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이나 약간 지루해진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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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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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한 명의 삶 전체를 톺으며 진행되는 소설은 분명 <스토너> 말고도 많다. 그러나 <스토너>에서 묘사되는 ‘스토너’의 인생만큼 고요하고 지지부진한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던데, 그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스토너의 삶의 속성, 성격 때문에 이 소설이 또 많은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는 이유이기도 할 터이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스토너의 삶은 참 애잔하다. 온갖 실패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에 (거의) 실패했고 이 영향으로 자식과의 관계도 그리 썩 좋지 못하다. 문학도로서 꿈을 키워 결국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직장 동료와의 불화로 인해 결국 그는 퇴직 전까지 ‘정교수’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말년엔 암에 걸려 제대로 된 반격 하나 못하고 죽음을 맞으니, 어찌 이리도 허망하지 않을 수가 없는가.

그러나 이런 스토너의 불행과 슬픔이 비단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스토너는 자신의 삶에 닥쳐온 여러 고비와 역경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아주 우직하고 굳건하게 버텨낸다. 차마 이겨낸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지지 않는다. 스토너는 버티고, 견뎌낸다. 우리도 삶을 살면서 자신의 고집과 신념을 버릴 수밖에 없는 때가 종종 찾아오지 않는가?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적어도 나는 그들의 요구에 맞게 나 자신을 바꾸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스토너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태도를 묵묵히, 끈질기게 지켜낸다. 그런 그의 모습이 내게는 너무도 경외스러웠다.

게다가 스토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찍 깨달았고, 그 좋아하는 분야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추진력을 보인다. 이것은 우리내 인생에서 크나큰 축복처럼 여겨지는 것 아닌가? 좋아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애당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때문에 아무리 소설 속 스토너에게 닥치는 일련의 사건들이 불행과 시련처럼 보이더라도, 이 소설이 그렇게 암울하지 않았던 것은 스토너의 삶에서 비쳐보이는 행복과 존경이 빛이 같이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고로 <스토너>를 읽는 동안에 들었던 감상은 우울이 아닌 뭉클함, 침울이 아닌 애잔함이었다. 그러므로 스토너의 삶에서 언뜻 비치는 우리의 삶을 발견하는 순간, 분명 이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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