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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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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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박상영 작가님의 작품은 얼마 전에 피드를 올린 <1차원이 되고 싶어>와 더불어 <대도시의 사랑법>, 이렇게 총 두 권이다. 두 권 모두 공통적으로 성적 소수자(게이)의 사랑을 다룬 작품들로서, 단지 인물들의 나잇대가 20대냐(대도시의 사랑법), 10대냐(1차원이 되고 싶어)의 차이 그리고 분량이 장편이냐 단편이냐 정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믿음에 대하여>는 앞선 두 권과 상당 부분에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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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느껴졌던 (전작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작품의 ‘초점’이었다. <대도시의 사랑법>이나 <1차원이 되고 싶어> 모두 ‘사랑’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믿음에 대하여>는 보다 더 현실적인 소재들과,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듯한 외적 요인에 집중하는 듯했다. 대표적인 예로 표제작 <믿음에 대하여>의 ‘임철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철우’는 이태원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코로나로 인해 ‘매출 폭락’이라는 직격탄을 맞는다. 더군다나 이자카야의 주소지도 하필 ‘이태원’이다. 다들 기억할지 모르겠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태원의 어느 게이 클럽에서 이른바 ‘슈퍼 전파’가 일어났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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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되었던 사람들 중 강제 아웃팅이 되던 경우도 있었고, 그 때문에 확진되었음에도 검사를 받지 않고 숨어 지내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때문에 그 시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게이들을 싸잡아 욕하기도 했고, 그 탓에 이태원의 상권은 90% 가량이 떨어지게 되기도 했다. 박상영 작가님은 이런 현실적인 요소들을 <믿음에 대하여>에서 여실히 드러내었다. 나는 군 복무 시절, 훈련소에 있을 때 그 소식을 들으며 ‘이 시국에 클럽을 왜 가냐’면서 화를 내었던 기억이 있는데, 실은 클럽을 갔다는 사실 자체에 화를 낸 것이 아니라, 게이들을 싸잡아서 그들이 문제라고 욕을 했던 것 같다. 양심의 가책이 많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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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퀴어 문학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취향에 대해 말해보자면, 그들의 사랑 자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작품 보다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냉담한 시선들을 고발하듯 그려내어 읽는 이로 하여금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믿음에 대하여>는 정말 좋았다. 읽는 동안에는 가독성도 좋고 술술 읽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다 읽은 뒤에는 지금까지의 나 자신의 사고방식을 반성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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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거의 출간되자마자 바로 책을 구매했기 때문에, 사은품으로 ‘북토크 초대권’을 받아 그곳에 가서 작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기자님들과의 일화이다. 작가님은 이 작품으로 문학 기자분들과 많은 인터뷰를 하셨다고 하는데, 이번에 유독 1-5년차의 신입 기자분들을 많이 뵈었고, 그분들께 ‘사회생활의 PTSD를 느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믿음에 대하여>는 사회 초년생들의 애달픈 사회 생활의 시작을 하이퍼리얼리즘 틱한 생생한 묘사로 그려내어 씁쓸한 공감과 위로를 많이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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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들리와 그레이스
수잔 레드펀 지음, 이진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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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들리와 그레이스> - 수잔 레드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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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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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실 때, 영화 ‘달마와 루이스’가 생각나는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이 책을 설명하셨다. 책을 받아보니 뒷표지에도 그렇고 작품 중간에도 ‘달마와 루이스’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애석하게도 ‘달마와 루이스’라는 영화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유튜브에 널리고 널린 영화 소개 채널에서 ‘달마와 루이스’를 15분 가량으로 깔끔하게 압축해놓은 영상을 보는 것으로 영화 감상을 대체하였다. 확실히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두 작품(영화와 책)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나는 자꾸만 영화 ‘킹스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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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마와 루이스’와 내용적인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말한 이유는, 두 여성의 도주극(?)과 연대를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남편 ‘프랭크’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 ‘하들리’와, 동일인물 ‘프랭크’의 밑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토사구팽 당할 위기에 처하는 ‘그레이스’는 우연히 같은 시간에 프랭크의 사무실에서 만나 금고를 털어 그 안에 있던 엄청난 돈을 들고 본격적인 도주를 시작한다. 애석하게도 그 돈은 출처가 더러웠기 때문에 (마약 사업 등의 불법적인 돈이었다) FBI에서 출처를 주시하고 있었으므로, 두 여성은 FBI에게 추적을 당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극적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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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영화 ‘킹스맨’이 떠올랐던 이유를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영화 ‘킹스맨’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1편은 그래도 괜찮았는데 2,3편은 도통…) 그 이유를 가장 최근에 상영했던 3편을 두고 설명해보자면,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다시 말해 납득이 가지 않는 전개를 정말 싫어하는데 3편에 그런 전개가 많이 나왔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다리 부상이 메인 빌런의 초자연적 능력으로 갑자기 치유된다든지, 아들이 신분을 바꿔치기해서 전쟁에 참전한다든지, 그러다가 또 갑자기 죽는다든지(어떻게 죽는지 말 안했으므로 스포 아님) 등등… 영화관에 같이 갔던 친구들은 그게 ‘킹스맨’의 매력이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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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느닷없는’ 전개 방식이 <하들리와 그레이스>에서도 등장한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 몇 가지만 말해보자면, 두 여성을 추적하던 FBI 요원 ‘마크’가 역으로 둘에게 납치를 당한다(?!). 여성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우람한 덩치에 근육질 몸매로 묘사되는 FBI 현장 요원이라면 무장 강도 둘은 그냥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한 훈련을 받았을 터인데, 너무 허무하게 둘에게 납치되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다가 심지어 이 ‘마크’라는 요원은 ‘하들리’와 갑자기, 정말 느닷없이 사랑을 나눈다(?!?!). 이게 무슨 전개람……?하는 심정으로 계속 읽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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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너무 당황스럽고 개연성 없는 전개를 보니 영화 ‘킹스맨’이 떠올랐던 것이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이런 전개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혹은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는 맞지 않았을 뿐. 하지만 작품 자체는 가독성이 정말 좋아 페이지를 빠르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런 부분마저 ‘킹스맨’과 비슷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달마와 루이스’ 혹은 ‘킹스맨’을 재밌게 보았던 사람들에게는 이 작품 <하들리와 그레이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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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말들의 흐름 1
정은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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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 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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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커피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카페인 분해 능력을 갖추지 못하여 과도한 커피(한 잔 초과)를 섭취하게 되면 그날의 숙면은 글렀다고 봐야하지만, 그럼에도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책과 함께 즐기는 캡슐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오전 아홉 시쯤 독서실로 출근하여 챙기는 컴포즈 커피의 대용량 아메리카노 한 잔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캡슐커피 한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 느껴지는 씁쓸한 상쾌함이 비몽사몽한 나의 정신을 맑게 개어주고, 인터넷 강의 선생님의 자장가(를 빙자한 강의)를 들으며 스르륵 눈이 감길 때 컴포즈 커피가 내 등을 토닥이며 다시금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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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를 읽으며 내가 커피를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는지를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은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커피에 대한 일종의 신념을 보면서, 괜히 기분 좋아지는 커피 향을 지금 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저 잠에서 깨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커피가 실은 나의 삶 속에서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하나의 요소라는 걸 깨닫기도 하였다.

🗣 지나친 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때때로 마음의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는 허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지만 때때로 커피는 ‘내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나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커피는 내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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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볶은 지 한 달 지난 파나마다. 파나마는 퍼음 볶았을 때는 맛이 복잡해서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 달 이상 묵힌 다음 마시면 숙성되면서 맛이 부드럽게 하나로 모여져서 놀랍도록 맛있어진다. 긴 세월 있는 듯 없는 듯 분위기파로 지낸 배우가 갑자기 그것 자체가 새로운 성격이 되어 대단히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중략) 한 달 지난 파나마 커피는 사치스럽다. 왜냐하면 한 번에 콩을 1킬로그램씩 볶는데, 이 원두가 한 달 동안 안 팔리고 남아 있어야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나마 원두를 주문받을 때마다 미적거리며 천천히 봉투에 담는다. 혹시라도 마음을 바꾸시지 않을까 기대하며. (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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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관련한 부분들은, 내가 비흡연자라 조금 아쉬웠다. 정은 작가님의 글이 아쉬운 게 아니라, 내가 담배를 피웠더라면 이 글을 더 재밌고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말이다. 다만 그럼에도, 담배와 얽힌 작가님의 추억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할아버지가 주셨던 담배부터 금연 구역인 절에 들어가서 몰래 담배를 피던 추억,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첫눈에 반해버린 남자를 따라 본격적으로 피우기 시작한 기억 까지도. 커피와 담배는 둘 다 쓰고 맛없지만 그것들이 담고 있는 한 개인의 추억은 아주 깊었다. 그 추억을 작가님은 <커피와 담배>라는 책으로 사람들과 공유하였고, 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 그 추억의 공유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생각에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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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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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읽다> - 서현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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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을 전하기로 작정한 듯한 책들을 지금까지 많이 읽어왔지만, 근래에 들어 ‘책’을 통해 가장 큰 힐링을 받은 건 바로 <소년을 읽다>를 읽은 뒤였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이, 어째서 내게 이렇게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을까, 또한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들게 하고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며 반성하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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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소년원’ 이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그런 생각들‘만’ 들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소년심판>이라는 드라마만 하더라도, 무거운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처벌 수위가 가벼워지는 현 제도를 비판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컨텐츠들이 ‘소년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다 못해 강화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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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소년심판>의 주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소년원’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이다. 내 주변에 소년원을 나온 사람을 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만약 누군가가 ‘소년원 출신’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아무래도 그 사람으로부터 심리적 거리감이 생길 내 모습이 너무도 쉽게 예상이 된다. 소년원을 다녀온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팔과 등에 용 문신이 그려져있을 것 같고, 조금만 쳐다봐도 뭘 꼬라(?)보냐고 소리치며 화낼 것 같은… 그런 이미지가 연상이 된다.

🗣 “선생님, 여기 오시니까 어떠세요?”

“여기? 다른 학교에 간 거랑 똑같은데.”

“그래도 소년원에서 강사로 와달라고 했을 때 기분이 좀 그렇지 않으셨어요? 안오고 싶지 않으셨어요? (중략) 그런 거 있잖아요. 사회 사람들도 ‘소년원’하면 안 좋게 생각하고, 이상한 아이들 있다고 생각하는 시선, 그런 거 있잖아요.”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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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년을 읽다>에서 작가가 만난 소년원의 소년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문신 등 외적인 모습이 상상했던 것과 비슷하더라도, 내적인 모습에서 전혀 생각치도 못한 순수함을 작가는 마주하고선 놀란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과몰입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책을 아껴가며 읽으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소년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괜히 내 마음까지 순수해지는 듯한 힐링을 느낌과 동시에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이 어째서 이런 곳에 들어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곳의 소년들은 저마다 다양하고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 부분은 내가 이 글에서 적는 것보다 책으로 직접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따로 적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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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원 본연의 목적처럼 우리 사회는 그들이 행동을 교정하고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이상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의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일까.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실현하지 않아도 좋으니, 좋은 삶을 살지 못해도 좋으니, 사회의 아래에서 우리에게 무해한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기만을 바라는 것은 혹시 아닐까. (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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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이라도 소년들의 입장을 헤아려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자신을 자책하게 만들었다. 단지 더욱 강력하게 처벌 수위를 높여야한다, 소년원이 아니라 일반범죄처럼 교도소에 보내야한다, 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겪은 사연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소년원에서 나왔을 직면해야 냉담한 사회적 시선들을 고려해보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아니 우리가 역으로 그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책을 덮고선 많은 생각에 잠겨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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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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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 벵하민 라바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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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논픽션소설’이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게 무슨 궤변인가 싶었다. ‘논픽션’과 ‘소설’이라는 상극의 두 단어는 한 어절 내에서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논픽션소설’이라는 단어보다 더 정확하게 이 작품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등 유수한 과학자들의 연구 및 이론 등의 ‘사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일생이라는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덧붙여 그 연구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던 이유를 설명하는 이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객관적 사실에 소설적 허구를 더했다는 측면에서 ‘논픽션소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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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중단편 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아무래도 ‘양자역학’과 관련된 표제작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이다. 이해하기 너무 어려웠고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받아들인 양자역학을 설명해보자면, 양자역학은 자기 모순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모두 양자로 이루어져 있고 양자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아무런 조직없이 움직이므로 예측이 절대 불가능한 개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물들이 그들로써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운’ 때문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인간)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즉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운’ 때문이란 걸 간과하면 매우 끔찍하고 참혹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마치 전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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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물질 자체에 관계된 것이고, 만물이 창조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원리이며, 어떤 현상이 완벽하게 정의된 특징들을 한꺼번에 가질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애초 직관은 옳았다. 양자의 실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자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양자의 성질들 중 하나를 규명하면 다른 것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양자계를 기술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림도 은유도 아니라 숫자의 집합이다. (216-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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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도 너무 어려운데 이 작품에는 양자역학 외에도 많은 과학적 지식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때문에 읽으면서 ‘과학’이라는 어둡고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발버둥치는 ‘문과생’이라는 순한 양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과적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한 점 부끄럼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처음으로 나의 과문함에 대한 통탄의 심정이 들었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과학적인 지식이 있었더라면, 이 작품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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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인생을 반추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과학계에 지각 변동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성취를 일구어낸 과학자들의 서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노인과 바다>에서 청새치 한마리를 잡기 위해 몇달 가량 온몸과 온마음을 다 바치는 노력 끝에 결국 잡아내고야 마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모습이, 광기 어린 집착과도 같은 노력을 통해 세상의 통념을 뒤집어 엎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던 과학자들의 모습에서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은 과학적 지식이 일절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살아가면서 이 정도의 혹은 반의 반 정도의 노력을 한번이라도 해보았는지, 노력없는 대가를 바라지는 않았는지를 반성하게 만드는 교훈을 선사하는 이 책을, 이과 문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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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슈바르츠실트는 신들린 사람처럼 일하며 논문을 쏟아냈다. 복사에 의한 항성 간 에너지 이동을 분석하고 태양 대기의 평형을 연구하고 천체 이동 속도의 분포를 기술하고 복사 전달을 모델링하는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중략) 그는 물리학에 만족할 수 없었다. 연금술사들이 추구한 지식과 같은 무언가를 열망했으며 자신조차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긴박감에 휩싸인 채 고투했다. (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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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필요하다면 몇 시간이든 제 의지대로 자고 일어나 연구에 온 정력을 쏟을 수 있었다. 아침에 개념을 전개하기 시작하여 이튿날 새벽까지 낡은 남포등의 불빛 아래서 눈을 찡그린 채 책상 앞에서 꼼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친구 이브 라드겔레리는 이렇게 회상한다. “천재와 함께 연구하는 일은 매혹적이었다. 이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로텐디크는 다른 어떤 말로도 묘사할 수 없다. 그는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웠는데, 그것은 이 남자가 어떤 인간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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