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도우리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출판사 ‘한겨레출판’의 공식 블로그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 ‘청년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다양한 문화 요소를 분석하며 빈곤과 단절, 욕망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신랄하고 통통 튀는 문투로 비평하는 사회서.’ 

책에 대해 내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더욱 적확할 것 같으므로, 나의 설명은 부가적인 차원에서 위의 문장에 덧붙일까 한다.

.

‘청년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다양한 문화요소’라는 말은, ‘갓생, 배민맛, 방꾸미기, 랜선 사수, 중고 거래, 안읽씹, 사주 풀이, 데이트 앱, #좋아요’ 까지 총 9개의 키워드를 함의하고 있다. 이런 주제들 모두 ‘MZ’라고 불리우는 요즘 세대들이 빠져있는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와닿지 않는 주제들도 있었지만(이를테면 ‘사주 풀이’는 절대 불신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글에서 ‘젊음’이 느껴지는 듯한 문체, 즉 출판사의 소개에서 말하는 ‘신랄하고 통통튀는 문투’로 쓰여서 평소에 관심없는 주제에 관한 부분들까지도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

9가지 주제를 모두 다루면 글의 분량이 터져버릴 듯하여,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주제 하나를 꼽아 글을 쓰려한다. 바로 ‘갓생’이다. ‘갓생’이라는 말은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며 타의 모범이 되는 성실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다. 요즘들어 ‘갓생 실천’과 관련한 주제의 컨텐츠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곤 했다. 특히 책에서도 언급한, 갓생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미라클 모닝’과 관련해서 새벽 5-6시쯤 일어나 생산적인 삶을 실천하는 모습들을 인스타 피드, 유튜브 브이로그 등의 SNS 상에서 유달리 많이 보았던 것 같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들에 비해 내가 뒤쳐지고 있는 듯하여 울적해지기도 했다.

.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갓생’을 추종하는 듯한 요즘 트렌드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특히 앞서 말한 ‘미라클 모닝’에 대한 비판으로는, 애초에 ‘미라클 모닝’이라는 것이 억만장자들의 습관에서 비롯한 용어로, 최소 1년 이상은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즉, ‘미라클 모닝’을 실천할 수 있는 ‘억만장자’적인 배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억만장자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한 달 이상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인스타 피드에서 찾아보기가 매우 드물고, 오히려 ‘3달 하고 포기’ 등 포기했다는 투의 게시물을 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최후의 ‘팩트 폭행’을 신랄하게 내리꽂는다.

🗣 성공의 등급을 매기고, 내 주변 다섯 사람의 평균이 자신의 수준이므로 성공한 사람들 위주로 사귀어야 한다는 <미라클 모닝>식의 갓생 가치관이 오히려 혐생일 수 있다. (39p)

때문에 책을 읽으며 ‘갓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막연하게 ‘갓생’에 대해 부러워(만 하고 실천은 안)했던 나에게 이 책은 시니컬한 위로를 던지는 듯했다. 

.

‘갓생’ 뿐만 아니라 배달 음식에 관한 ‘배민맛’, 카카오톡 잘 읽지 않는 ‘안읽씹’, 인스타의 하트 수에 집착하는 듯한 ‘좋아요’ 등등 이 책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에 대해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저자는 독자에게 궁극적인 질문을 하나 던진다. 이 책에 언급된 주제들이 ‘요즘의 문화 트렌드’라고 미화되어서 칭해지지만, 실은 그 안에 ‘중독’이라는 말이 포함된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긍정의 교과서 - 한순간에 행복해지는 방법
다케다 소운 지음, 강현숙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0월
평점 :
품절


<긍정의 교과서> - 다케다 소운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예전에 올렸던 <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의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자기계발서를 혐오하는 사람이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정도(正道)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에서 던지는 교훈이나 가르침 등이 와닿지 않는 듯하다. 사실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요청받을 때에도 ‘자기계발서’의 경우에는 웬만하면 거절하는 편이고, 이번 소미미디어 출판사의 서포터즈 ‘소미랑’으로 활동하게 된 것도 이 출판사에서는 거의 문학 작품만이 출간되었기 때문이었다.

.

그런데 이번에 자기계발서 <긍정의 교과서>가 출간되어 배송받았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라고도 하고, 원래 자기계발서를 잘 출간하지 않던 출판사에서 출간된 자기계발서기에 그래도 조금은 괜찮을까 싶은 마음을 가지고 책을 펼쳐들었다. 그러나, 역시 나와 자기계발서는 정말 맞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기만 한 채 책장을 덮었다.

.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상당히 중요하게 간주하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11개의 챕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각 챕터 안에는 저자가 제시하는 방식이자 교훈과 함께 그를 뒷받침할만한, 저자가 직접 경험했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 이야기들은 내게 모두 소위 ‘뜬구름 잡는다’고 말하는 듯한, 피상적인 이야기로만 읽혔을 뿐이었다.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아는, 혹은 한번쯤은 들어본 내용이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건 어려울 듯한 이야기 말이다.

.

예를 들자면, 책의 한 챕터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리더십이 없으니 경영은 무리다.] ->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주위 사람이 하나로 뭉쳐 적극적으로 성공한 팀도 많이 있습니다. (56p)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언급한 뒤, 그에 대한 반박의 의견을 남기는 듯 서술한 문장이다. 그러나 위의 문장 같은 경우에는, ‘리더십이 없으니 경영은 무리다’에 대한 반박을 저 한 문장으로만 끝냈다. 구체적인 실제 사례 하나 언급하지 않았고, 그게 아니라면 리더십이 없음에도 주위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과학적인 근거라도 있어야 할텐데 그마저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더 명확한 근거를 갖추고 쓰였다면 더욱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

내돈내산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은 책이기 때문에 좋은 점을 하나 정도는 언급하고 싶지만… 내게는 그런 모습이 아예 보이질 않았다. 목차를 보더라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사고방식 하나 없이, 어디선가 한번쯤은 다 들어봤을 법한 내용들이다. ‘아무리 해도 지나치치 않는 감사’, ‘다른 사람을 바꿀 순 없다. 자신을 바꿔라’ 등등…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평소에 읽어보고 싶었으나 한번도 읽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입문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인 듯싶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자기계발서 분야의 ‘독서 만렙’ 수준의 사람들에겐, 이 책은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진 못할 것 같다.

.

(출판사 담당자님… 신경써서 책을 출간하셔서 보내주셨을텐데 이렇게밖에 읽지 못하여 너무 죄송할 따름입니다… 자기계발서는 저와 정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출간되는 문학 작품들은 더욱 열심히 읽고 좋은 글 남기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테네시 윌리엄스 ⭐️

.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는 어린 시절을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주색(酒色)을 즐기는 호탕한 성정이었던 데에 반해 어머니는 히스테리 일보 직전의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특히 모계 쪽에서 정신 병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의 영향으로 작가의 누이는 정신 분열증으로 전두엽 절제 수술을 받고 평생을 금치산자(정신 상실자)로 살아가게 된다.

.

이러한 작가의 주변 인물들은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로 재창작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평범한 삶을 꾸리던 ‘스탠리’와 ‘스텔라’ 부부에게 연락 한 통 없이 스텔라의 누이 ‘블랑시’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블랑시는 귀부인 행세를 해대거나 동생에게 제부의 뒷담을 일삼는 등 불청객 행세를 보이며 스탠리, 스텔라 부부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안긴다. 하지만 블랑시의 이러한 태도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극의 중반부에서 스탠리가 그녀의 과거를 알아버린 것이다.

.

(스포일러 주의)

블랑시는 사실 동성애자 남편의 자살 이후 다른 남자들과의 잠자리를 전전해왔다. 그 정도는 영어 교사였던 그녀의 직장 학교의 한 학생을 범하는 것까지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그녀는 고향에서 추방되어 동생의 집을 찾은 것이다. 이 사실을 스탠리는 그녀의 동생 스텔라와 새 연인 ‘미치’에게 폭로하였고, 결국 블랑시는 극도의 정신 착란을 겪게 된다.

.

물론 블랑시가 좋은 행동을 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인 미치에게 과거 행적의 추궁을 받고 이별 통보를 당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항상 우아함을 유지하였고,

🗣 나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아요.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을 말해요. (144p)

그녀의 정신 분열을 견디지 못한 스텔라와 그 사실을 이용한 스탠리의 계략(?)으로 인해 블랑시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게 되었음에도 그 과정에서 그녀는 고상함을 절대 잃지 않으며 위엄을 드러낸다.

🗣 당신이 누구든,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180p) 

.

이렇듯 인물의 매력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블랑시 뿐만이 아니었다. 남부의 사라진 영광에 연연해하며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는 당시 미국인을 대변하는 ‘블랑시’와 성(性)적 욕망을 상징하는 ‘스탠리’ 사이에서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이는 ‘스텔라’가 그러했다. 과거의 자신을 놓지 못하는 블랑시와는 대조적으로 현실에 완전히 적응한 듯 살아가는 스텔라는, 언니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언니를 정신병원에 보낸 그 결정에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스탠리가 주는 육체적 만족감을 버리지는 못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모습이 너무도 인간적이고 현실적으로 느껴져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인물이었다.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당시 미국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지만, 사랑과 꿈을 잃었음에도 새로운 사랑을 환상이나 거짓으로라도 만들어서 그를 놓지 않으려는 블랑시의 모습이,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할 법한 인간 군상으로 느껴진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제목 역시, 블랑시가 스텔라의 집으로 올 때 ‘욕망’ 열차를 타고 간 다음 ‘묘지’ 열차로 갈아타는 그 과정 중 블랑시가 추구했던 것은 ‘욕망’이었으나 결국엔 ‘묘지’를 향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로웠고, 함의하는 바도 묵직해서 너무도 좋았던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김승섭

.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가슴 아픈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해 우리의 군함이 침몰되어 당시 배에 타고 있던 46명의 군인들이 순직하게 된, 바로 ‘천안함 사건’이다. 놀랍게도, 그리고 너무 부끄럽게도 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 당시 12살의 나이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정도의 수준으로만 알고 있던 것이 너무도 무안하고 낯부끄러울 뿐이다.

.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이 책이 바로 그 ‘천안함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제목만 보고 구입했던 책이어서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는 차원의 르포 형식으로 쓰인 책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보다 집중적으로 조망하여 서술한 책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천안함 사건’ 자체의 숨겨진 진실보다는 그 사건을 겪어낸 ‘생존장병들의 사건 이후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

책에는 이들이 사건 이후 고통스러운 삶에 시달려야 했던 원인을 미시적 관점(PTSD)과 거시적 관점(냉혹한 한국 현실)에서 분석하고, 실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해소하기 위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었으며,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할 시각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전부 적기엔 인스타 피드 양의 한계치를 넘어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과 분노했던 부분 등을 중심으로 이 책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

읽으면서 가장 화나고 놀랐던 것은 바로 생존장병들을 대하던 한국의 현실이었다. 이 사회는 살아남은 병사들을 보듬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냉담하고 참혹한 태도만을 보였다. 이를테면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게 된 책임을 생존병사들에게 떠넘겼고, 언론은 이런 시각을 더욱 크게 확산시켰다. 그들의 주장은 정리하자면 이렇다.

- 천안함의 장비로도 적의 잠수정과 어뢰를 충분히 탐지할 수 있었다.

- 당시 대잠 위협이 있었음에도 경계 등급을 상향 조정하지 않았다.

- 즉, 병사들의 경계 작전 실패로 인해 벌어진 것이다.

.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80년대에 만들어진 당시 천안함이 보유한 장비는 9~13kHz 정도의 주파수를 청음하게 되어 있으나, 북한이 썼던 유도 어뢰의 주파수는 3~8kHz 수준이었다. 즉, 천안함의 장비로는 북한 어뢰의 탐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사건 발생 전에 기무사령관이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의 사전 징후’를 국방부와 합참에 보고하였으나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사건 직후 청와대는 어뢰에 대한 내용이 일절 없이 ‘선체 파공으로 인한 침몰’이라는 보고를 받았을 뿐이었다.

.

하지만 이러한 진실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여론은 천안함 사건에서 살아돌아온 병사들에게 ‘패잔병’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정치계에서는 이 사건을 서로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만 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PTSD’라는 심리적 고통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그 누구도 정확히 가르쳐주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을 ‘행운아’로 취급할 뿐이었다.

🗣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은 피해자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난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151p)

.

저자는 ‘비참함’이 피해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회적 폭력을 대할 때 가해자의 행동을 따져 묻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인지 확인하는 데 더 큰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이에 반박하지 못하였다. ‘천안함 사건’ 뿐만 아니라 ‘세월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등의 수많은 피해를 낳았던 참사들 모두 희생되셨던 분들께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고에서 살아돌아온 분들께도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그분들은 평생을 잊지 못할 끔찍한 경험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인데, 감히 우리가 그들을 ‘살아돌아왔으니 운이 좋’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빛 기다리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햇빛 기다리기> - 박선우 ⭐️

.

<햇빛 기다리기>는 퀴어 문학이었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책을 펼쳐들었기에 몇 장을 읽다보니 조금 흠칫하긴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좋았다. 내가 퀴어문학을 읽을 때에는 그들이 ‘사랑하는 방법’보다는 ‘감정과 심리묘사’를 보는 것에 기대를 갖고 읽는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성애자로서 겪어야하는 차별과 감내해야하는 고통, 맞닥뜨려야만 하는 현실의 두터운 벽에서 비롯되는 감정들, 분노일 수도 있고 무기력함일 수도 있는 그 다양한 심리들 말이다.

.

이런 측면에서 박선우 작가님의 글은 정말, 너무 좋았다. ‘성소수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이렇게나 세밀하면서도 만연하지 않고, 보드랍게 어루만지는 듯하면서도 직관적으로 느껴지도록 쓸 수 있나 싶어서, 그래서 그 인물의 마음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듯 몰입하게 할 수 있나 싶어서 너무도 놀라울 따름이다. 

🗣 사귀는 사람과 함께 직은 사진을 SNS 계정에 올리고 지인들에게 ‘좋아요’를 받는 일. 그런 일에 무슨 명목씩이나 필요하단 말인가. (중략) 동성애자로 살면서 끊임없이 겪어야 했던 억압과 멸시, 언행의 조심스러움 따위는 어쩌면 이 소박한 즐거움들의 총합에 비하면 ‘사소한 아픔’일지 몰랐다. 대다수가 아무렇게나 누릴 수 있는 기쁨들을 평생에 걸쳐 수탈당해왔다는 사실에 별안간 나는 참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었다. (22p)

🗣 그러면 어떤 말 부터 꺼내야 하나. 아니, 어째서 이 짓을 또 하고 있나. 끝난 일 아니었나. 연말정산도 아니고 무슨 커밍아웃을 해마다 새로 하나. 일 년에 한 번이면 그나마 다행인가. (185p)

.

하지만 <햇빛 기다리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널리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작품에 나와있는 인물들의 사랑은 ‘성소수자’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다. 그저 ‘사랑’을 하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다정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져있을 뿐이다. 때문에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 책을 읽더라도 충분한, 아니 훨씬 차고 넘치는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달콤한 애정에 눈이 멀어 서로의 새치나 뾰루지 마저 어여쁘게 여기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만날 때마다 뇌리를 스치는 의구심이랄까 의아함을 - 얘는 왜 이러는 거지? -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179p)

🗣 나는 그저 네가 원하는 일을 했으면 했다. 원하지 않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내게 말해주었으면 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솔직했으면 했다. 그게 진정한 의미에서 연인일 테니까. (180p)

.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한 구절이 굳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을 쏟아붓는 듯이 공감이 가는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 평소 일상에서 곧잘 경험하곤 하는 것들을 평상시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을 법한 표현들로 써낸 구절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빼앗는 듯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냥 박선우 작가님의 글이 나의 취향과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인생 작가님’ 리스트를 또 한번 갱신하게 되어 너무도 기쁘다.

🗣 나는 다시 혼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다만 예전처럼 의젓한 단독자로서의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내가 감당해야 할 고독의 양감이 사뭇 달라져있었기 때문이다. (29p)

🗣 이 사랑은 어떻게 끝날까. 그것은 연인과의 관계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이면 내가 빼놓지 않고 떠올리는 생각이었다. 앞서 파국을 예측해봄으로써 스스로에게 놓는 예방주사 같은 것이었다. (109p)

🗣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하나의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그의 몇 배 혹은 몇십 배가 되는 거짓을 꾸며내야 한다는 걸 떠올렸다. 일단 거짓말을 시작하면 언제 멈춰야 할지를 가늠하기보다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일에 훨씬 열중하게 된다는 것도. (22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