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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평점 :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김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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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가슴 아픈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해 우리의 군함이 침몰되어 당시 배에 타고 있던 46명의 군인들이 순직하게 된, 바로 ‘천안함 사건’이다. 놀랍게도, 그리고 너무 부끄럽게도 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 당시 12살의 나이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정도의 수준으로만 알고 있던 것이 너무도 무안하고 낯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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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이 책이 바로 그 ‘천안함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제목만 보고 구입했던 책이어서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는 차원의 르포 형식으로 쓰인 책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보다 집중적으로 조망하여 서술한 책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천안함 사건’ 자체의 숨겨진 진실보다는 그 사건을 겪어낸 ‘생존장병들의 사건 이후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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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이들이 사건 이후 고통스러운 삶에 시달려야 했던 원인을 미시적 관점(PTSD)과 거시적 관점(냉혹한 한국 현실)에서 분석하고, 실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해소하기 위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었으며,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할 시각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전부 적기엔 인스타 피드 양의 한계치를 넘어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과 분노했던 부분 등을 중심으로 이 책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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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가장 화나고 놀랐던 것은 바로 생존장병들을 대하던 한국의 현실이었다. 이 사회는 살아남은 병사들을 보듬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냉담하고 참혹한 태도만을 보였다. 이를테면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게 된 책임을 생존병사들에게 떠넘겼고, 언론은 이런 시각을 더욱 크게 확산시켰다. 그들의 주장은 정리하자면 이렇다.
- 천안함의 장비로도 적의 잠수정과 어뢰를 충분히 탐지할 수 있었다.
- 당시 대잠 위협이 있었음에도 경계 등급을 상향 조정하지 않았다.
- 즉, 병사들의 경계 작전 실패로 인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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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80년대에 만들어진 당시 천안함이 보유한 장비는 9~13kHz 정도의 주파수를 청음하게 되어 있으나, 북한이 썼던 유도 어뢰의 주파수는 3~8kHz 수준이었다. 즉, 천안함의 장비로는 북한 어뢰의 탐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사건 발생 전에 기무사령관이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의 사전 징후’를 국방부와 합참에 보고하였으나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사건 직후 청와대는 어뢰에 대한 내용이 일절 없이 ‘선체 파공으로 인한 침몰’이라는 보고를 받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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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진실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여론은 천안함 사건에서 살아돌아온 병사들에게 ‘패잔병’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정치계에서는 이 사건을 서로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만 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PTSD’라는 심리적 고통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그 누구도 정확히 가르쳐주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을 ‘행운아’로 취급할 뿐이었다.
🗣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은 피해자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난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1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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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비참함’이 피해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회적 폭력을 대할 때 가해자의 행동을 따져 묻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인지 확인하는 데 더 큰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이에 반박하지 못하였다. ‘천안함 사건’ 뿐만 아니라 ‘세월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등의 수많은 피해를 낳았던 참사들 모두 희생되셨던 분들께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고에서 살아돌아온 분들께도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그분들은 평생을 잊지 못할 끔찍한 경험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인데, 감히 우리가 그들을 ‘살아돌아왔으니 운이 좋’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