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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나주에 대하여> - 김화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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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써왔던 일반적인 리뷰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주에 대하여>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느낀 아쉬웠던 점은 딱 하나였다. 책을 덮은 뒤, 소설의 내용들이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보통 호흡이 긴 장편 소설보다는 여러 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엮여있는 ‘단편집’에서 더 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단편 각각의 소재나 줄거리가 선명한 인상을 남기지 않으면, 그것들이 내 머리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 뒤섞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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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역시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단편집이다. 출판사 소개글에서도 그렇고 작가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듯이, 이 작품집에는 수록된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짝사랑’이다. 이것은 비단 남녀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사랑을 비롯하여 존경, 우정, 애증(?) 등등 다양한 상황과 그에 맞는 감정들이 각각 다르게 존재하지 않는가. 작가님은 그 마음들을,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다양한 ‘짝사랑’에 대한 여덟 편의 이야기를 이 작품집에 풀어놓으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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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좋으면서도 싫다(?). 다시 말해,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엮인 소설들이기에, 제각각의 이야기들이 묶인 소설집보다는 맥락을 공유하는 느낌이 더 강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어쩐지 책을 읽는 내내 단편 마다 내용이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각각의 소재들은 전부 다르고, 어쩌면 ‘색’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완독 후 책을 다시 떠올렸을 때, 공통적으로 드는 감상 외에 단편 별로 다르게 느끼는 것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그 점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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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제목과 작가 이름 옆에 ‘⭐️’을 붙인 이유는, 즉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작가님의 ‘문장’ 때문이다. 한국문학을 읽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외국 문학의 번역된 문장에서는 절대로 느껴지지 않는 특유의 ‘읽는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상황들과 감정들을 만나더라도 어휘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것을 바깥으로 드러내기가 어렵거나 혹은 뭉뚱그려 말하게 되는데, 한국 문학의 작가님들은 그런 마음들을 더할 나위 없이 적확한 문장과 표현으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신다. 그래서인지 독자들은 그런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공감을 넘어서는 ‘통쾌함’까지 느끼고는 하는데, <나주에 대하여>를 읽으면서도 그런 문장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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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성장하시길 바라요. 그런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체가 좀 이상했을 뿐이다. 애정어리고 조심스러운 말에 사람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놀라웠다. (26p)
🗣 너는 너만 그렇게 현명하고, 그래서 남이 들어오고 들어오지 말아야 할 선을 분명히도 알고 있고, 그걸 나만 모른다고 생각하지. 나만 너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고, 네가 아무리 가까이 와도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더 깊이 너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그 선을 조정해가며 우리 둘이 만들어가는 걸 텐데 너는 이미 선이 있고 항상 단호하고 나는 선이 있던 적이 없으니까. (64p)
🗣 상대가 내 맘에 들든 맘에 들지 않든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상대의 마음에 드는 일. 그게 중요했다. 은주에게 나는 좋은 인상으로 남겠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 부근에서 전신으로 따뜻한 물질이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은 늘 그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었다. (190p)
🗣 친구는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스스로도 알고 있으나, 이게 한때의 흔들림인 건 아닌지에 대한 걱정과 오래 만나며 많은 걸 나누고 쌓아온 남자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사라지지 않아 괴롭다고 말하고 있었다. (19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