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네이트 (노블판) - Alternate
가토 시게아키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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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네이트> - 가토 시게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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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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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원물’ 장르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무언가 ‘성장소설’이라 하기도 애매하게 느껴지고, 로맨스나 추리 등의 특정 장르에 충실한 것도 아닌 듯하고… 아무튼 이래저래 나의 취향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출판사로부터 이 작품을 받을 때에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랑 잘 맞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띠지에 적혀있는 ‘정용준 추천’이라는 말이 나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내가 사랑하는 정용준 작가님이 추천을??? 이건 못참지;;; 하는 마음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더불어 일반판과 노블판, 두 권이나 보내주신 출판사 담당자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미미디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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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얼터네이트’라는 고등학생 대상의 SNS를 소재로 하는 작품으로, 세 명의 주인공 각각의 서사가 교차되는 구조로 전개된다. 일종의 옴니버스 소설로도 볼 수도 있을 듯하고, 연작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용준 추천’이라는 말을 믿고 약간의 기대감을 가진 채 독서를 시작했지만, 줄거리 자체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타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흔하디 흔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다만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얼터네이트’라는 소재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바가 있어 그 부분에 대한 감상을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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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펐어. 난 딱히 인기인이 되고 싶었던 게 아냐. 그저 날 드러내고 싶었을 뿐이야. 그야 많은 사람들이 봐주면 기쁘잖아. 하지만 그게 첫째는 아니야.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해서 그걸 본 누군가가 기뻐해주면 기분이 좋겠다, 정도의 느낌이었어. 그 녀석은 그렇지 않았던 거지. 어떻게 하면 더 주목을 받을지, 그게 기준이 돼버렸어. (후략)“ (73p)

🗣️ “난 얼터네이트가 92.3 퍼센트로 표시했기 때문에 플로우했을 뿐이야. 내 직감같은 거야말로 나한테 있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야.” (2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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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스타그램에 독후감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책의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지금보다 ‘추리소설’ 같은 류의 장르 문학에 훨씬 편중된 독서를 했었기 때문에 책을 다 읽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용이 머릿속에서 금방 휘발되어버리곤 했다. 그게 싫어서 완독할 때마다 감상을 억지로라도 한두줄 적은 것인데, 그게 하나둘 쌓이면서 팔로워가 늘고 협찬을 받기도 하는 등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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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름의 북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한 것이 내게 좋은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스타 덕분에 한국문학이나 세계 고전문학, 나아가 인문교양서 등등 독서 범위가 훨씬 확장되기도 했고, 좋은 분들과 소통도 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스타를 하다보면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훨씬 더 깊은 감상을 남기신 분들의 글을 보며 열등감 내지는 자기혐오감이 들 때도 있었고, 좋아요 수에 ‘일희일비’하여 감정 소모가 클 때도 있었다. (지금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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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으면서,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문장들 속 주인공을 보면서 인스타에 감정적으로 많이 매몰되어있던 당시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물론 작중 인물과 내가 SNS에게서 받은 영향이 서로 다른 종류이기는 하지만, SNS가 가지고 있는 양면적인 영향력을 느꼈다는 것 자체는 주인공과 나 둘 다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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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어떤 분들은 SNS 속 타인의 모습(혹은 글)을 보며 오히려 힘을 받아 계정을 더욱 활발하게 운영하는 원동력으로 삼겠지만,) 나는 오히려 인스타와 거리를 두려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독서 기록용이라고, 속으로 계속 되뇌이면서 나름의 마인드컨트롤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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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에 지금은 열등감이나 자기혐오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지 않는 같다. 다른 사람이 어떻든지 간에 타인과 나를 비교해가며 스스로를 우울의 늪에 빠뜨리지 말고, 그냥 나는 길이나 가자고 생각하니 이전보다 속이 훨씬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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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일기 - 당신이 두고 간 오늘의 조각들 카페 소사이어티 1
이미연 지음 / 시간의흐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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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일기> - 이미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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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이제 커피의 신이야. 커피를 달라고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커피를 마시기 전이니까 제정신이 아닌 좀비들이거든? 그들에게 커피를 줄 수 있는 너는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들이 아무리 재촉해도, 무례하게 굴어도 쫄지 말고 네 페이스대로 천천히 해줘. 어쩌겠어? 커피를 가진 자는 너인데.” (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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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나의 취향과 완전히 잘 맞는 에세이를 읽었다. <카운터 일기>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저자가 뉴욕 브루클린의 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적은 글(일기)을 엮은 에세이로,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뒤도 안돌아보고 무작정 이 책을 들이밀고 싶을 정도로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투썸 플레이스에서 6개월, 개인 카페에서 1년 남짓한 기간을 아르바이트 해본 적이 있는지라,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파는 입장이라는 같은 처지로서 크게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었고 한국과는 다른 뉴욕 카페만의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으며, 작가님의 현란한 글솜씨로 지금의 내 심정에 가장 필요했던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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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은 리듬에 맞춰 고개까지 그덕이며 (물론 아무도 못 듣게)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손님 중에서 무의식적으로 같은 부분을 흥얼거리는 사람이 나 말고도 두 명이나 더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남몰래 재밌어 했다. (27p)

개인 카페에서 있었던 경험이 떠올라서 낯부끄러움을 느꼈던 구절이었다. 투썸이나 스타벅스 같은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와는 다르게 개인 카페에는 손님이 언제나 많진 않다. 특정 시간대에만 몰리고 그 외에는 아주 한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때문에 손님들이 아무도 없을 때에는 카페에 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조작(?)하여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바꿔 틀곤 했었다. 그 사건 당시에도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나는 이때다 싶어 노래를 바꿔 틀고 밀린 설거지를 하며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설거지를 끝내고 뒤를 돌아보니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던) 손님이 와있었다. 웃참 챌린지를 하는 그 분의 얼굴을 보며 뒤늦게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니, 그때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수준을 넘어서 ‘열창’을 하다시피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테이크아웃으로 그 손님을 보내드린 뒤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창피해서 주저 앉아 속으로 부끄러움을 달랬던 기억이 났다. (참고로 그때 불렀던 노래는 지아의 ‘술한잔해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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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 망쳐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옳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다다르는 순간이 있을 것이고, 그때 가서 돌아보면 지그재그로 걸어온 지난 길이 그 순간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요소임을 수긍하게 될 테니까. 옳다고 생각되는 그 지점에서 눈 깜짝할 새에 다시 내려와 또 회의와 고민으로 점철된 길을 걸으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를 묻더라도 하나하나 도장을 찍다 보면 언젠가는 선물처럼 ‘리뎀션의 순간이 다시 온다는 것을 아니까 조금 덜 두려워할 수 있을 것 같다. (45p)

군대에서 전역한 뒤에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는 것일까, 잘못된 곳을 향한 것은 아닐까, 혹은 너무 돌아가고 있는 걸까 등등 고민이 많은 요즘의 나에게, 45페이지의 이 구절들은 너무도 정확하고 시기적절한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는 옳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다다르는 순간’이 오기를, ‘지그재그로 걸어온 지난 길이 그 순간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요소임을 수긍’하게 되기를 바라며 조금은 걱정을 덜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그대로 추진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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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 2020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지아 외 지음 / 강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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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 정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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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입소문 만으로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였다는 화제작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님의 단편이다. 사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대해 인친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추천 및 호평을 접하였으나, 다루고 있는 소재나 줄거리 등을 들었을 때 나의 취향과 맞지 않을 듯하여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싫어한다. 때문에 앞으로도 읽어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지아 작가님의 글은 읽어보고 싶었고, 때마침 내 책장에서 2년 전에 사두고 읽지 않고 계속 묵혀두었던 ‘2020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수상한 작품이 정지아 작가님의 단편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였으므로, 이거다 싶어 곧바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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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위암 환자인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을 줄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심정’을 담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택’(암환자+알코올 중독)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너무 이해되었고, 술을 계속 마실 수밖에 없었던 ‘기택’의 삶과 그의 내면도 역시나 너무도 와닿아서, 읽으면서 마음이 정말 많이 무거워졌다. 

🗣 평생 술 마시는 남편을 보고 산 큰어머니는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꿈쩍 않는 여장부였다. 그런 큰 어머니가 돌아온 기택이를 보고 대성통곡했다. 살이 어찌나 빠졌는지 꼭 허수아비 같았던 것이다. (31p)

🗣 눈을 못 감겄어. 눈만 감으면 있잖애. 온 시상이 시커먼디, 시커먼 것이 똑 목을 졸르는 것맹키여. 무서서 눈을 못 감겄어. 술을 마시면 나도 모리게 잠을 장게, 무서서, 잘라고 마시는 것이여. (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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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에피소드만을 가지고 한 인물의 전 생을 보여주는 솜씨가 능숙하고, 한 개인의 삶이 역사와 사회라는 힘센 요소들에 의해 조형된다는 사실을 티 내지 않고 말하는 화법이 탁월하다’고 말한 이승우 소설가님의 심사평에 크게 공감하는 바이다. 원래 같았으면 읽는 동안 가족의 입장에 서서 술을 계속 퍼마시는 ‘기택’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택’이 어떤 생애를 살아왔는지와 술을 계속 마실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적, 가족적인 요인이 온전히 납득이 되니, 이도 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버린 양 너무도 가슴 아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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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인위적으로 과장하거나 절제하는 것 없이 날 것 그대로를 적는 듯한 작가님의 문체가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더 깊이 빨아드는 것 같다. <작별>에서 느낀 한강 작가님의 문체가 슬픔을 절제하듯 담담한 문체로 오히려 독자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의 정지아 작가님은 애처로운 상황 그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어 안타까움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듯하였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가 아니라, 다르게 둘 다 너무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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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택배로 왔다 창비시선 48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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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택배로 왔다> - 정호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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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끝에 떨어지는 폭포는 아니다

절벽 끝에 부서지는 파도도 아니다

해 뜨기 전부터 풀잎에 맺혀

나를 기다리는 아침 이슬도 아니다

가을비 오는 날

낡은 아파트 홈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늦가을의 눈물이다

바쁘나 내가 니하고 이야기 좀 하고 싶다

그런데 니가 너무 바빠서

말끝을 흐리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늙은 눈물이다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러 바쁘게

세상을 돌아다니는 동안

흙이 된 아버지 앞에 떨구는

내 참회의 때늦은 눈물이다


- <낙수(落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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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택배로 왔다>는 정호승 시인님의 등단 50주년을 맞는 올해에 출간된 시집이다. 확실히 ‘50년’이라는 시력(詩歷)에서 묻어나오는 연륜이 여실히 느껴지는 시들을 풍부히 감상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낙수>에서는 정호승 시인께서 경험한 부모님의 죽음과 그로 인해 연상되는 부모님과의 추억이 사무치도록 너무도 아프게 느껴졌다. 장르를 막론하고 ‘부모님’을 소재로 한 작품들, 그중에서도 특히 ‘죽음’을 다루고 있는 것들은 내가 쉬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마음이 심하게 요동칠 것을 알아서 책을 펴기가 무섭다. 그럼에도 막상 그런 작품을 읽고 나서는, 언제나 내 마음 속에 묵직하게 박히는 여운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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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다시 회초리를 들어 사는 게 왜 그 모양이냐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피가 나도록 제 종아리를 때려주세요

간절히 소리쳐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종아리를 걷은 채 서서 울먹이다가

어머니가 빨래하던 수돗가에 회초리를 갖다놓았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 회초리에 매화꽃이 피었다

- <회초리꽃>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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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호승 시인님은 부모님을 회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서는 (남아있는 약간의 미련을 버리고서) 죽음을 담담하게 준비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나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나도 나이를 먹고 늙게 된다면, 정호승 시인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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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이 되어 당신이 찾아오셨다

창밖에 바람은 부는데

내다 엄마다 문 열어라

인터폰을 누르고

찬바람과 함께 성큼 들어오셨다

당신은 나를 한번 안아주지도 않고

머리에 이고 온 천국의 진흙 한동이

내 아파트 일층 베란다에 붓고

꽃밭을 만드신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

머위도 심고 메꽃도 채송화도 심고

어둠이 깃든 창밖을 한참 내다보시다가

다시 진흙이 되어 돌아가신다

가자 이제 엄마하고 같이 가자

나는 신용카드가 든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몇 번이나 뒤돌아보다가

아들도 며느리도 출근한 사이에

지갑도 집도 버리고

성큼 당신 뒤를 따른다

이번에는 당신 손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당신 손을 꼭 잡고


- <진흙>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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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몇 년 더 살아본 선배로서 이런 마음가짐이 중요하더라, 하고 교훈을 주는 듯한 시도 있었고, 험난한 세상살이 때문에 사는 게 힘들지는 않냐고 어깨를 토닥이는 듯한 시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집을 읽으면서 마음 한켠이 따스하게 편안해졌다. 분명한 건 이 시집이 내 마음을 많이 건드리고 움직이게 했다는 것이다. 시를 아직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정호승 시인님을 내 인생 시인으로 마음 속에 담아둘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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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저에게 상처 준 자들을 용서하게 해주세요

용서할 수 없어도 미워하지는 않게 해주세요

그렇지만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받지 않게 해주소서

무엇보다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새해의 기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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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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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 김화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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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써왔던 일반적인 리뷰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주에 대하여>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느낀 아쉬웠던 점은 딱 하나였다. 책을 덮은 뒤, 소설의 내용들이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보통 호흡이 긴 장편 소설보다는 여러 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엮여있는 ‘단편집’에서 더 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단편 각각의 소재나 줄거리가 선명한 인상을 남기지 않으면, 그것들이 내 머리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 뒤섞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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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역시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단편집이다. 출판사 소개글에서도 그렇고 작가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듯이, 이 작품집에는 수록된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짝사랑’이다. 이것은 비단 남녀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사랑을 비롯하여 존경, 우정, 애증(?) 등등 다양한 상황과 그에 맞는 감정들이 각각 다르게 존재하지 않는가. 작가님은 그 마음들을,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다양한 ‘짝사랑’에 대한 여덟 편의 이야기를 이 작품집에 풀어놓으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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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좋으면서도 싫다(?). 다시 말해,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엮인 소설들이기에, 제각각의 이야기들이 묶인 소설집보다는 맥락을 공유하는 느낌이 더 강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어쩐지 책을 읽는 내내 단편 마다 내용이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각각의 소재들은 전부 다르고, 어쩌면 ‘색’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완독 후 책을 다시 떠올렸을 때, 공통적으로 드는 감상 외에 단편 별로 다르게 느끼는 것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그 점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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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제목과 작가 이름 옆에 ‘⭐️’을 붙인 이유는, 즉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작가님의 ‘문장’ 때문이다. 한국문학을 읽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외국 문학의 번역된 문장에서는 절대로 느껴지지 않는 특유의 ‘읽는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상황들과 감정들을 만나더라도 어휘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것을 바깥으로 드러내기가 어렵거나 혹은 뭉뚱그려 말하게 되는데, 한국 문학의 작가님들은 그런 마음들을 더할 나위 없이 적확한 문장과 표현으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신다. 그래서인지 독자들은 그런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공감을 넘어서는 ‘통쾌함’까지 느끼고는 하는데, <나주에 대하여>를 읽으면서도 그런 문장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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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성장하시길 바라요. 그런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체가 좀 이상했을 뿐이다. 애정어리고 조심스러운 말에 사람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놀라웠다. (26p)

🗣 너는 너만 그렇게 현명하고, 그래서 남이 들어오고 들어오지 말아야 할 선을 분명히도 알고 있고, 그걸 나만 모른다고 생각하지. 나만 너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고, 네가 아무리 가까이 와도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더 깊이 너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그 선을 조정해가며 우리 둘이 만들어가는 걸 텐데 너는 이미 선이 있고 항상 단호하고 나는 선이 있던 적이 없으니까. (64p)

🗣 상대가 내 맘에 들든 맘에 들지 않든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상대의 마음에 드는 일. 그게 중요했다. 은주에게 나는 좋은 인상으로 남겠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 부근에서 전신으로 따뜻한 물질이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은 늘 그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었다. (190p)

🗣 친구는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스스로도 알고 있으나, 이게 한때의 흔들림인 건 아닌지에 대한 걱정과 오래 만나며 많은 걸 나누고 쌓아온 남자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사라지지 않아 괴롭다고 말하고 있었다. (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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