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아침, 같은 아파트 동에 사는 여고생을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정장 투피스에 하이힐 차림." 오랜만입니다.회사 다니시나 봐요" 하고 인사했더니 "네 좀 됐어요..." 합니다.그런데 완전히 성인과 똑같습니다.9월에 봤을 땐 교복 입은 여고생이었는데...여상 졸업반 중에선 가을 무렵 취업해서 직장인이 되는 경우가 있지요.
가끔 가다 시내에서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여고생들이 정장 차림으로 나들이 나온 광경을 볼 때가 있습니다.이렇게 어른 흉내를 아무리 내봐도 어린 티가 납니다.하지만 분명히 현재 여고 3년 생인 그녀는 완전히 직장여성과 똑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왜 그런지 생각해 봤습니다.그것은 그녀가 어른 흉내를 내려고 정장차림을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독립된 경제주체인 직장인이기 때문입니다.만약 같은 또래의 여고 3년생이 수능을 끝 낸 기념으로 파마머리를 하고 좀 진한 메이크업을 한들 어색했을 것입니다.그것은 어울리지 않은 가면을 쓴 것과 같으니까요.하지만 아무리 같은 나이라도 실제 직장인인 그녀는 어른 흉내를 내고자 정장을 한 것이 아닙니다.그러니 어엿한 직장인 분위기를 풍기게 된 것이죠.
나는 중학교나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을 꽤 알고 있으며 그들과도 어울려 지낸 지 꽤 오래됩니다.스무살 무렵, 처음 그런 이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것은 같은 또래인 대학생들보다 더 어른스럽다는 것입니다.외모로 보나 마음가짐으로 보나...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 점은 더 두드러집니다.나와 같은 처지인 대학생들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그들과 만나 이야기 해보면 훨씬 더 어른스런 내용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대학생들은 용돈을 부모에게 타서 쓰지만 이들은 자기가 직접 돈을 벌면서, 때로는 가족의 생계에 보탬을 주기도 했습니다.또 다양한 직업 분야에서 일하는 그들의 직장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맨날 어떤 교수는 어떻다더라...어느 학과의 누구와 누가 연애했다더라...하는 이야기만 들으면 좀 지루하기도 했고요.
재학 중인 대학생도 그렇고 대졸 출신들도 그렇고, 대학물을 먹은 사람들은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바로 사회생활에 뛰어든 이들과 어울린 경험이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대학 재학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생활에 뛰어들어서도 대졸자들과만 어울리지요.남자들은 군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요즘은 한 내무반이 몽땅 대학 재학 중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경우도 많으니 역시 군대에서도 일찍 사회생활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습니다.
나는 초면인 사람에게 대학 학번을 물어보는 못된 버릇을 들이지 않았습니다.대학생 시절부터 일찍 사회생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대졸자들 중에는 대학 안 나온 사람들이 무식한 줄로만 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실제로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나는 대학 안 나온 사람은 이해가 안 가, 왜 대학을 안 간 거야?" 하는 막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습니다.하지만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우리나라 대졸자들이 특별히 교양이 뛰어나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인격이 더 훌륭하다는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어느 40대 후반의 남자는 대졸자인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학번을 물어보는 관행을 정착시킨 데 대해서 다른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한다".방송에서도 실생활에서도 대학이 어떻고 학번이 어떻고 하는 말이 워낙 많이 나옵니다.최근에는 신문기사에 ' 하우스 푸어, 90년대 학번 많다'고 나왔습니다.그냥 연령을 표기하면 됐지 거기에 왜 학번을 들먹인 것인지, 참으로 기사작성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벌주의를 없애기 위해 갖가지 묘안이 많이 나옵니다.고졸자를 위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학번 묻는 관행만 없어져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그리고 신문 스포츠 면 기사에 '고졸 신인 등장...'이런 제목도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그냥 '19세 신인 등장' 하면 될 것을 왜 거기에 고졸을 들먹이는지...
신문이고 방송이고 온통 수능이니, 대학이니 하는 이야기만 그득해서 조금 다른 이야기 좀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