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 씨는 1985년 2월 김대중 씨가 귀국할 때 함께 온 미국인들 중 한명이었습니다.1983년 필리핀의 아키노가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유사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해서 미국인들이 비행기에 함께 타고 온 겁니다.하지만 역시 김포공항에 김씨 일행이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한국의 기관원들과 충돌이 있었고 몸싸움과 주먹질이 이어지면서 미국인 몇이 얻어터지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이때 일을 회상한 커밍스 씨의 글에는 '서울 거리에 전경들과 검은 교복입은 학생 운운'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검은 교복? 복식고증에 능한 사람이라면 이게 오류라는 걸 알았을 것입니다.그때는 중고생들이 머리도 기르고 사복 입고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한국사를 연구하게 된 미국인들은 두 부류가 있는데 주한미군으로 있다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가 있고(제임스 팔레, 존 메릴 등), 평화봉사단으로 왔다가 한국을 연구하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커밍스는 후자의 경우입니다.그가 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왔던 것은 박정희 정부 때였고, 군사독재의 억압의 상징으로 검고 획일화된 교복을 떠올리다 보니까 1985년의 상황을 언급하면서도 학생들이 검은 교복을 입었던 때와 혼동한 것이죠.이런 실수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독재와 획일성을 상징하는 것이 시커먼 교복입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쓴 리영희 씨는 칼럼이나 수필류의 글에도 장기가 있습니다.범우문고에는 그런 류의 글 몇 개를 모아놓은 게 있는데 역시 똑같은 교복과 머리모양을 한 박정희 정부 당시 학생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이런 복장으로 창의성이 싹 틀 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리영희 씨 역시 군사정권엔 시커먼 교복이 연상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런 형편이니 커밍스 씨가 전두환 정부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박정희 시대처럼 학생들이 시커먼 교복을 입었으리라고 기억에 착각이 일어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창시절의 추억 하면 남학생은 시커먼 교복에 스포츠머리, 여학생들은 단발머리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치마복장을 떠올렸습니다.최양락 씨가 나왔던 90년대의 개그코너인 '추억은 방울방울'이 그랬고, 소풍 때 사이다를 마시던 빡빡머리 남학생들을 흑백으로 처리한 화면은 방송에서 진부하다는 느낌이 날 정도로 자주 써먹었습니다.교문 앞의 복장검사, 엎드려 뻗쳐, 체벌을 넘어선 구타 등등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 시절 풍경을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입니다.
지금 청소년들이 입고 다니던 교복은 옛 교복과는 달리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입니다.제 아무리 전통을 사랑하는 교장도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교복을 학생들에게 입히겠다는 생각은 안 할 것입니다.하지만 머리를 박박 밀어버리는 악명높은 두발규제는 지금도 있는지 잊을 만하면 신문기사에 오릅니다.2000년대 들어와서 학생들 중 일부는 교복자율화, 두발자율화운동을 하고 있더군요.하지만 이들이 그렇게 애타게 갈구하는 교복자율화 두발 자율화는 이미 5공 6공 때 실시했던 것입니다.군사정권에서 누린 자유를 지금은 못누리고 있다?
참여정부 때 개봉한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학생들은 시커먼 교복을 입었습니다.요즘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써니'에 나오는 학생들은 사복을 입고 있습니다.그 학생들이 이젠 40줄에 접어들었습니다.교복자율화의 단맛을 본 사람들은 이 영화에 상당히 열광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제 지인 중 시커먼 교복을 입고 청소년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영화 내용도 그렇지만 "우리는 교복을 못입어본 세대 운운 "하는 자율화세대의 발언에는 거부감조차 지니는 것입니다.시커먼 교복을 입고 다닌 이들은 "교문 앞에서 복장검사 안 받아보고 학교 다닌 것만 해도 어디냐 ! "하는 반응이지요.지금의 청소년들 역시 "야! 사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구나, 좋았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교복 자율화를 경험한 이들이 교복이 가지고 있는 억압문제에 둔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교복을 입었다가 나중에 사복을 입고 학교다니게 된 사람들은 그냥 솔직하게 "답답한 교복 대신 사복을 입으니 좋았다"고 말하면 될 것입니다.그런데 그런 감상을 말하는 이들이 적습니다.누구나 자기 세대는 다 고생했다고 여기는 사람 심리를 감안한다면 "우리는 자율화를 맛본 게 아니라 교복을 못입어본 불행한 세대다" 고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하지만 그들의 인생선배 혹은 후배들 중 교복을 입고 학교다니다가 복장검사라는 더러운 경험을 해본 사람들 입장에선 "교복을 입어보지 못했다" 는 발언은 곱게 보아넘기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시커먼 교복을 입고 다녔던 저의 지인이 '써니'에서 교복자율화세대들의 무신경을 가장 잘 나타낸 장면으로 유호정이 딸의 교복을 입어보는 장면을 꼽았습니다.그 장면이야말로 "우리는 교복을 못입어본 불쌍한 세대야." 하는 심리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억압의 상징인 교복이 이 영화에선 입고 싶은 대상이 되었으니 말입니다.그 지인의 결정적인 한마디." 교복을 못입어 봤다고? 쌀밥에 고기국 먹고 다니는 사람이 '나는 깡보리밥에 신김치를 못먹어봤어'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 말이여!"
사실을 말한다면 이렇게 분노한 제 지인 역시 자율화세대와 그다지 나이차가 많지 않습니다.50이 채 안되었으니까요.그런데도 영화 '써니'에 대해서 자율화세대와는 천양지차의 반응을 보입니다.자율화세대는 "나도 이제 40줄에 접어들었으니 우리 옛추억을 얘기해보자," 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어린 청소년들은 부모뻘이 되는 자율화세대가 어떤 발언을 해주기를 바랄까요. " 어이, 군사정권 때도 해본 교복자율화야! 그땐 어르신들의 반대가 심했지. 학생들이 사복을 입으니 교외지도가 안 될 것이다...나이트 클럽에 들어갈 것이다...등등...하지만 그런 우리도 이젠 결혼해서 자네들 낳고 제 몫하고 있잖아...자네들도 교복없이 학교다녀봐. 얼마나 좋다구!" 정도의 말? 그러나...
40이 넘으니 미녀도 추녀도 별 차이가 없이 퉁퉁한 아줌마가 되더라...40이 넘으니 젊어 한때의 진보주의자도 꼰대가 되더라..하는 우스개말이 있습니다.우리나라의 교복자율화는 학생들이 투쟁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자율화세대로서는 "지금 생각해 보니 누군가 떠먹여준 것 같은 자율화를 누리고 다녔다는 생각에 어쩐지 부끄럽고 민망하다" 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커밍스 씨도 리영희 씨도 시커먼 교복을 독재의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거꾸로 말하면 교복자율화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지요. 군사정권 때 자율화가 실시되어 어색하다면 21세기인 지금 실시하면 어울리겠습니까? 역시 "요즘 애들이 사복입고 학교다니다니...그건 안 돼!" 가 결론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