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본 적이 있다. 그때는 되는대로 즉흥적으로 꼽기만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나는 그 말들을 살고 있었다.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그래서 글을 쓰고 산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좋아하는 말을 여기저기에 갖다 놓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쪽)
좋아하는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보고 기록하고, 그 말들을 살고 있다니! 그러고 보면 살면서 접하는 단어가 한정적인데 문학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좀 더 폭넓게 단어를 접하곤 한다. 그동안 못 보던 단어까지 말이다. 역시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제각각 다른 단어로 살아간다. 같은 언어를 쓰는 데도 말이다.
바람, 이야기꽃, 동무, 그러나, 그리메, 오래뜰, 밥, 나무, 오도카니, 맬겁시… 저자는 그렇게 열 단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글은 각종 문예지, 사보, 종교 잡지, 신문 등의 청탁이 있어 쓴 글이 대부분이지만,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글은 자발적으로 '맬겁시' 쓴 글이라고 한다. 맬겁시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이라는 전라도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머리말 '나는 그 말들을 살고 있다'를 시작으로, 1장 '사랑에 젖다', 2장 '낯선 풍경, 함께하는', 3장 '글의 품 안에서', 4장 '소란한 밤을 끌어안다', 5장 '사라져가는 것들의 뒷모습'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사랑, 진도는 오늘도 구슬픈 가락으로 일렁이고, 다시 살아야 하는 고향의 삶, 서늘한 그리움을 남기다, 봉숭아 물들이기, 꽃잎 떨어지는 소리 눈물 떨어지는 소리, 내 맘대로 정한 글쟁이 등급, 아름다운 일을 한 게 없으면서 '아름다운 작가상'을 받았다, 착한 일도 하지 말라 했거늘,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사는 값을 하고 있다, 뒷모습은 눈물 아닌 것이 없으니,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하나인 바에야 등의 글이 담겨 있다.
그리움에 더욱 목마른 사람은 그 섬에 가서 한 십 리쯤 아무 쪽으로나 걸어보라. 발부리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 여름 햇살에 졸고 있는 풀잎 하나에도 그리움이 서려 있을 것이다. 천 년을 넘게 그 자리에서 그렇게 아무렇게나 있으면서 자고 깨는 그리움이 거기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해 질 녘이면 무작정 포구로 가라. 저녁 포구에 가면 물감이 풀리듯 황홀하게 깔리는 낙조 속에 올망졸망한 그리움으로 앉아 있는 작은 섬들이 또 막무가내로 누구든 불러댈 것이다. 그 섬, 그곳은 진도. 거기엔 단단하고, 오래되고, 설레고, 아찔하고, 가슴 시린 그리움이 있다. 외로울수록 더욱 팽팽해지는 그리움. 그 섬엔 팽팽한 그리움이 있어 소리가 있고, 춤이 있고, 묵향이 있다. 아니 무엇보다도 부서지지 않은 오랜 세월이 아직 있다. (26쪽)
저자가 말한 열 단어 중 '맬겁시'는 전라남도 사투리라고 한다. 글을 읽다 보니 아마 저자는 그렇게 그 섬을 걸어보았고 거기에서 자고 깨는 그리움을 직접 목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표현할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