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착오다. 남자아이가 입양되는 줄 알았는데 여자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곤란한 일이 벌어져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초록지붕집의 매슈 커스버트씨죠? 반갑습니다. 전 아저씨가 데리러 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만약에 아저씨가 오시지 않으면 저기 있는 커다란 벚나무 위에서 밤을 지낼 생각이었어요. 하얀 벚꽃과 달빛이 이불처럼 포근하게 감싸 주면 근사하겠죠? 전 아저씨가 오늘 안 오시면 내일은 꼭 오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30~31쪽)
이렇게 밝고 맑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니! 앤은 시작부터 나에게 에너지를 팍팍 선사해준다. 재잘재잘 떠들며 모든 것이 신기하고 경이로운 느낌이 드는 듯 앤의 시선을 따라 나도 원더풀 아일랜드 프린스에드워드 섬으로 향해 간다.
"아저씨, 온통 꽃으로 덮여 있는 그 길 이름이 뭐예요?"
"가로수 길 말이냐? 정말 볼 만하지?"
"아휴, 아저씨, 볼 만하다니요? 그렇게 황홀한 길을 그 정도로 표현하면 안 되지요. 다른 이름은 없나요?"
"글쎄, 그냥 가로수 길이라고 부르는데."
"음, 그 길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 줘야겠어요. 새하얀 환희의 길. 어떠세요, 근사하죠?"
아이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또 배리 연못을 지나갈 때도 아이는 '반짝이는 호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38쪽)
책은 역시 읽을 때마다 내 마음에 들어오는 부분이 다른 듯하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비슷한 듯 다른 사람이어서 그런가 보다. 앤의 말 하나하나에 '어쩜 이런 표현을 다 하지?'라며 읽어나간다. 그런 마음을 잊지 말아야 삶이 경이롭고 그만큼 행복지수도 높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