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 미술관에서 명화를 보고 떠올린 와인 맛보기 Collect 14
정희태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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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와인, 이 두 가지를 엮어서 가볍게 담은 책을 만났다. 이렇게 엮는 것도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에서 명화를 보고 떠올린 와인 이야기를 해준다니 솔깃했다. 독특한 느낌에 일단 시작도 전에 이 책의 매력에 빠져든다.

게다가 명화도 보고 교양이 되는 와인 지식도 챙기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없이 가벼운 와인 지식, 그리고 좀처럼 늘지 않는 미술 감상 능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기로 한다.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를 읽으며 명화와 와인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의 저자는 정희태. 와인과 미술에 취해 파리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와인의 중심 부르고뉴 지역에서 소믈리에 과정과 와인 시음 과정을 수료했고, 프랑스 각지의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와인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이후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했고,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한 프랑스 문화재에서 10년째 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어느 날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는데 문득 샹볼 뮈지니라는 와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림에서 전해지는 꽃향기와 따스함, 연못에 고인 물의 습함이 피노 누아로 만든 샹볼 뮈지니 와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와인을 들고 모네가 그림을 그린 장소에 찾아갔습니다. 마치 모네가 된 것처럼 모네가 보았을 풍경을 바라보며 이 와인을 마셨습니다. 이때 제가 느낀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그림과 와인을 연결 지으며 마시니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게 미술과 와인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작품을 볼 때마다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이미지 혹은 작가의 인생과 성향에 따라 어울리고 의미가 연결되는 와인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반대로 와인을 마시면서는 향과 맛에 따라 연상되는 그림을 떠올려보았죠. 서로 닮은 작품과 와인을 함께 즐길 때 배가 되는 이 감동을 혼자서만 느끼기엔 아까웠습니다. 와인만 마실 때, 또는 그림만 볼 때 느낄 수 있는 각기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함께하면 감동은 배가 됩니다. 제가 느낀 이 감동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에서 와인과 미술을 공부한 내용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썼습니다. (7쪽)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된다. 머리말 '와인과 미술의 공통된 가치와 감정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을 시작으로, 1장 '와인과 미술에 담긴 가치', 2장 '작품과 와인에 스며든 감정', 3장 '명화 속 와인'으로 나뉜다.



이 책의 구성이 참신했다. 와인 하나, 명화 하나, 차근차근 음미하며 읽어나가는 느낌이 든다. 두 가지 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소재이지만, 그렇기에 저자의 역할이 큰 것이다. 어떻게 설명해주느냐에 따라 감흥이 다르게 다가오니 말이다.

그리고 와인과 그림의 접점을 짚어줄 때 그 또한 흥미롭게 접근한다. '똑같은 식물의 열매인 포도인데도 품종에 따라 와인에서 느껴지는 향과 맛이 달라지듯, 그림 역시 사용한 물감에 따라 작품에서 풍기는 느낌이 달라집니다. (50쪽)'라는 설명을 보고 나서야 '아, 그렇네.'라면서 그다음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리아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 고기에는 레드 와인"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았겠지만, 그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효과적으로 좋은 마리아주를 찾는 방법은 우선 맛을 서로 보완해주고 잘 어울리는 맛의 상관관계를 알면 좋다는 것. 음식의 색에 맞추어 와인을 고르거나 소스의 색에 맞추어 와인을 고르는 등의 고전적인 방법도 있다고 한다.

음식의 무게감과 비슷한 무게감을 지닌 와인을 고르거나, 음식이 태어난 곳에서 만든 와인을 고르는 방법도 있다고 하니, 와인을 고르는 마리아주의 다양함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역시 거기에 이어 배색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 색 마리아주 이야기가 이어지니 이 또한 흥미롭다. 와인과 음식처럼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색에도 서로의 마리아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알려주고 짚어주어야 비로소 보인다. 프랑스에서 와인과 미술 공부 10년의 세월을 이렇게 책을 통해 나눠주니, 눈을 반짝이며 읽어나간다.



상당히 정성스레 글을 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와인에 대한 글도, 그림에 대한 글도, 각각 따로 놀지 않게 부드럽게 교차하며 글을 풀어나간다. 섬세한 연결이 이 책만의 특징이다.



와인을 디캔팅 하는 이야기가 나오니 문득 예전에 만화를 통해 디캔팅을 접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나는 왜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 너른 포도밭을 뛰노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느냐며, 나의 능력을 지레 포기하며 와인과 더 멀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이 책에서는 와인이 디캔팅 과정을 거치듯 예술 작품도 관람자가 최상의 상태에서 보고 크게 감동할 수 있도록 복원작업을 거친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렇다면 수많은 복원 방법 중 가장 좋은 복원은 무엇일까요?

바로 전혀 손대지 않는 것입니다. (146쪽)

여기에는 <밀로의 비너스>와 <사모트라케의 니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뒷이야기가 이 작품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와인과 그림 이야기를 이렇게 풍부하게 들려줄 수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주제로도 와인 이야기 한 번, 명화 이야기 한 번, 교차하며 풀어나가니 두 가지가 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풍부한 사진 자료도 한몫한다. 더욱 입체적으로 수업을 듣는 듯 현장에서 강의를 듣는 느낌으로 읽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와인과 미술에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기를, 와인과 미술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소에 와인을 좋아하고 미술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새로운 시선으로 2가지 문화를 함께 만나며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와인과 미술이 이렇게 서로 닮은 꼴이며, 함께 하니 더욱 매력이 발산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와인과 미술, 동시 입문서로 손색이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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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 -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김유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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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고의 스릴러 작가로 불리고 있는 후안 고메스 후라도의 장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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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 -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김유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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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소설 읽는 맛을 잘 몰랐는데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잠 안 오는 밤에는 스릴러가 제격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시간이어서 그럴까.

띠지에 있는 이 말을 일단 믿고 읽어보기로 했다.

"지난 10년간 스릴러 소설 중 단연코 최고의 작품!"

전대미문의 사이코패스 등장으로 3년 만에 다시 시작된 전설의 붉은 여왕 프로젝트.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천재 비밀요원 안토니아 스콧과

힘세고 성질머리 더러운 경찰 존 구티에레스가 범인의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모든 사건의 스토리에는 증거가 남는 법이지." (책 뒤표지 중에서)

심장을 쫄깃쫄깃 쫀득하게 해주는 스릴러 작품을 기대하며 《붉은 여왕》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후안 고메스 후라도.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다. 그의 작품들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6년, 스릴러 소설인 《흉터》는 당시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자책으로 뽑혔고, 안토니아 스콧과 존 구티에레스의 환상적인 케미가 돋보이는 《붉은 여왕》을 시작으로 《검은 늑대》,《화이트 킹》의 총 3부작은 전 세계 1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책날개 발췌)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안토니아 스콧은 하루에 3분만 자살을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3분은 아주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에겐 아니다. (…)

그녀는 프로포폴(간호사에게 뇌물을 먹여서) 같은 규제 약물을 구할 계획을 세우고, 1년 내내 얼어붙는 호수 중에서 집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을 알아낸다(소리아에 있는 '네그라 호수').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건 별로 당기지 않는데, 우선 창문이 너무 작고, 혹시라도 상처만 입고 입원하게 되면 병원 식당에서 주는 구역질 나는 음식이 곧장 엉덩이 살로 갈 것 같아 찜찜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자살 방법을 생각하는 그 3분은 오로지 자신만의 3분이다. 그 시간은 신성하다. 그녀가 온전한 정신으로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6~7쪽 발췌)

소설의 시작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안토니아 스콧은 왜 그런 걸까. 어떤 사연이 있어서 자살을 생각하는 걸까. 그것도 하루에 3분만… 이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호기심이 일어나서 그다음 이야기까지 펼쳐보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은 소파에서 죽어 있는 십 대 소년을 보여주며 이 소설이 스릴러임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준다.

그 소년은 열여섯 살이나 열일곱 살밖에는 안 되어 보였다. 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있고, 한때 갈색빛이 돌던 그의 피부는 이제 소파 커버와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옅어져서 거의 투명할 정도였다. 삶의 모든 흔적이 몸을 떠났고 믿기 힘들 정도로 많이 야위었지만,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은 정자세로 곧았다. 한쪽 다리는 다른 쪽 다리 위로 꼬고 있고, 오른손은 무릎에, 왼손은 진하고 거무스름한 액체가 가득한 와인 잔을 들고 있었다. 신발이나 양말은 신지 않았고, 맨발은 입술과 같은 청록색을 띤다. 눈은 뜨고 있고, 공막은 노르스름했다. 웃는 듯하게 살짝 열린 입이 꽤 외설적이었다. 아랫입술에서 피떡이 떨어져 턱의 패인 부분에 몰려 있었다. (58쪽)

그런데 그 와인 잔 안에는 와인이 아니라 피가 들어있었는데…….

"범죄 현장에는 피가 한 방울도 없습니다. 물론 컵만 빼고요." 박사가 말했다. 그 진한 액체는 소년이 손에 들고 있는 보헤미아 크리스털 유리잔 안쪽 벽에서 이미 굳기 시작했다. 그 살인자가 거기에 피를 부을 때, 분명 와인을 채우듯 잔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68쪽)



이 책의 제목 '붉은 여왕'을 보았을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올랐다. 거기에서 나온 이름 맞고, 책에서 앨리스와 붉은 여왕이 달리고 달리는 구절을 언급한다.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자신의 나라에서 가만히 있으려면 달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포식자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적응이 필요한 거죠." (78쪽)

붉은 여왕 프로젝트는 유럽 연합의 각 국가에 있는 중앙 부서 및 특수 단위로, 언론에 숨겨야 했던 목표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연쇄 살인마, 파악하기 어려운 폭력 범죄자들, 소아성애자, 테러리스트….

그리고 한 명의 붉은 여왕이 필요했는데, 그 여왕은 범죄 현장에 나타나서 보고 떠나는데, 진짜 경찰의 어깨너머로 보면서 변두리에서만 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3개월 전에 스페인에만 붉은 여왕이 없었는데, 마침내 그녀를 알아보고 발굴한 것이다.

맨 처음에 나오는 하루 3분 자살을 생각할 수 있는 안토니아 스콧 말고, 천재적인 붉은 여왕 안토니아 스콧이 눈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소설 속 세계에 몰입해서 읽어나간다.

"제가 볼 때, 이 살인자는 완전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실수를 저질렀어요. 그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겼습니다… 두 가지를…." (123쪽)

두 가지가 무엇일까. 격하게 궁금하다. 그런 궁금증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을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원동력이고 작가의 필력이다.

이 책은 유럽 최고의 스릴러 작가로 불리고 있는 후안 고메스 후라도의 장르소설이다. 전 세계 1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거침없는 필력과 속도감, 영화를 보는 듯한 생동감으로 가득한 중독성 있는 이야기로 대중은 물론 비평가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토니아와 존은 다시 돌아온다고 하니,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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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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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본격 식재료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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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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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함께 '본격 식재료 에세이'라는 문장을 보고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밥을 해 먹고 살고 있고, 식재료도 내가 구입하기 때문에 식재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냥 하루 종일 살림은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싶지만, 사람살이 어찌 마음대로 되겠는가. 음식 준비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그 틈을 비집고 책 읽고 리뷰 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음식 평론가이며 번역가인 이용재. 건축가이며 남자 음식평론가이면서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식재료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관심이 생겨서 이 책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를 읽어보게 되었다.



어제 장을 봐왔다. 오이 6개인가 묶음에 1,980원이어서 엄청 싸다면서 두 봉지를 집어왔다. 그런데 무얼 해먹을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상하면 곤란하니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지난번에 부추 싸다고 한 묶음 샀다가 뭘 해먹을지 난감해하며 힘들게 먹어치운 기억도 떠오른다.

그런데 식재료에 대해 이 책이 나의 생각을 다르게 해주었다. 오이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이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벽돌에게 물어본다. "무엇이 되고 싶으니?"

그럼 벽돌이 대답한다. "저는 아치가 되고 싶어요."

_루이스 칸(1901~1974)

건축가 루이스 칸의 '벽돌과의 대화'는 유명하다. 벽돌에게 물어보면 건물의 어떤 부분 혹은 요소가 되고 싶은지 대답해줄 거라는 이야기인데, 건축 재료가 순리에 따라 되고 싶은 모습, 즉 지향하는 건축의 요소가 있을 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루이스 칸과 벽돌에 비하면 훨씬 실용적이지만 나도 그런 대화를 짐짓 머리에 그리며 이 원고를 썼다. 식재료가 순리에 따라 되고 싶은 음식과 요리는 과연 무엇일까? 이를 인간의 시선으로 바꿔 말하면 식재료마다의 '포인트', 즉 알아두면 좋을 식재료 정보라 하겠다. 먼저 양파에게 물었더니 진득하게 볶아 캐러멜화를 시켜 단맛을 뽐내고 싶다고 답했다. 딸기는 어차피 생으로 먹는 과일이니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손질법이 최고라고 했다. 식초나 감칠맛 조미료는 종류와 맛의 특성, 쓰임새 등을 두루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런 '식재료와의 대화'를 일상의 맥락에서 시도 및 정리해 '세심한 맛'이라는 제호 아래 <한국일보>에 연재했었다. 2018년부터 토요일 지면을 맡아 격주와 매주를 넘나들며 3년여 동안 꼭 100화를 연재하고 마쳤다. 쌓인 원고를 일상의 체로 한 번 더 걸러 60여 편의 원고로 추려 다듬은 책이 바로 본격 식재료 에세이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다. (9~10쪽)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된다. 1장 '향신료와 필수 요소', 2장 '채소', 3장 '육류와 해산물', 4장 '과일', 5장 '달걀과 유제품류', 6장 '곡물', 7장 '알아두면 좋을 식재료 이야기'로 나뉜다. 카레, 허브 등 향신료, 후추, 소금, 설탕 등 필수 요소, 마늘종과 마늘, 파프리카, 올리브, 토마토, 가지 시금치, 애호박, 브로콜리, 당근, 감자 등 채소, 닭가슴살과 닭다릿살, 돼지 안심과 갈비, 새우, 홍합, 연어, 조개관자 등 육류와 해산물, 사과, 레몬, 파인애플, 딸기, 수박, 귤 등 과일, 달걀, 버터, 우유, 크림, 요구르트 등 달걀과 유제품류, 두부, 귀리, 밀가루, 호두 등 곡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흔히들 군대 이야기라면 좀 그렇다고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군대 이야기는 달랐다. 군대에서 요리한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아냈다. 4급 현역 입대자였던 저자는 몇몇 보직을 전전한 뒤 식품 담당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양파를 손질하는 요령을 배웠다고 한다.

양파를 손질하는 요령을 배운 것도 그때였다. 훔쳐봤다는 표현이 맞겠다. 양파를 왼손으로 잡고 수직으로 도마 위에 세워 윗동과 밑동을 썰어낸다. 그리고 손바닥에 올려 식칼로 가볍게 탁 내리치면 겉껍질부터 맨 바깥쪽 켜에 칼집이 들어간다. 덕분에 맨 바깥쪽 켜와 함께 껍질을 손쉽게 벗겨낼 수 있다. (86쪽)

취사병들은 정말 무섭다 싶을 정도로 빠르고도 경쾌하게 3백 명분의 양파를 매 끼니마다 처리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양파의 캐러멜화 설명에 저절로 시선을 고정시키며 읽어나간다.

금방 지어낸 밥 한 숟가락에 푹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 그리고 캐러멜화한 양파를 조금 올려 먹는다. 요즘 유행인 '단짠'의 '밀당'은 물론, 매운맛을 가르며 파고드는 단맛이 입안 구석구석을 메운다. '이것이 한식이 꿈꿔야 할 이상적인 맛의 폭발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89쪽)



가지도 흔히 사 오는 식재료이기는 한데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찌거나 조림을 해서 먹고 있다. 그런데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들으니 가지가 남달리 보인다.

사시사철 어디에서나 살 수 있을 정도로 흔하지만 조리는 너무나도 만만치 않은 채소가 가지다. 반질반질한 보라색 껍질에 칼이 딱 사뿐사뿐하게 들어가는 느낌이 좋아서 하루 종일 썰어도 즐거울 것 같은 채소가 가지다. 그러나 거기까지. 조건반사처럼 별생각 없이 사 와서 도마에 올려놓으면 비로소 본격적인 고민이 밀려온다. 가지는 대체 어떻게 먹는 게 좋을까?

정답은 '아무렇게나'다. 가지는 다른 맛을 굉장히 잘 흡수하는 식재료다. 그래서 나물부터 샐러드, 구이부터 튀김까지 웬만한 요리에는 모두 고개를 들이밀 수 있다. 눈치도 꽤 빨라서 이런저런 식재료와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말하자면 잠재력이 엄청난 채소인데 교육과 훈련이 좀 필요하다. 잠깐의 학습만으로도 잠재력이 활짝 피어나지만, 배려해 주지 않으면 눈치 없이 거의 모든 음식을 완벽하게 망칠 수 있다. 전혀 과장을 보태지 않고 가지의 미래가 우리의 손에 달렸다. (94쪽)

또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닷가재의 목숨을 끊는 여러 가지 방법도 인상적이었다.

바닷가재는 기본적으로 육식동물이며 심지어 자기들끼리 잡아먹기도 하며, 생기가 있다 못해 성깔을 부리는 바닷가재가 더 맛있다는 것이다. 주눅이 들어 있거나 피곤해 보이는 바닷가재보다는 성깔 있는 바닷가재가 더 나은 선택이긴 한데, 조리는 어떻게 하나?

거기에 대한 방법이 다음 페이지까지 이어지니, 오, 나는 그냥 바닷가재는 사 오지 않아야겠다. 그래도 사람 일은 혹시 모르는 것이니 이 책에 바닷가재에 대한 글이 있다는 것은 기억해두어야겠다.



희귀하거나 비싸거나 쓰임새가 한정된 것들보다 동네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식탁에 흔히 오르는 식재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또한 일상의 최전선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이들에게 더 잘 먹을 수 있는 요령을 즐겁게 소개하고 싶었다. (…) 요리에 밑준비가 필요하듯 요리 공부의 밑준비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내가 생활인으로서 경험하고 검증해 담았다. 요리의 초기 단계부터 참고하면 기초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을 펼쳐들면 저자의 글 솜씨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가게 된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흥미로운 시간도 보내고 말이다.

특히 아는 식재료들도 많아서 반가운 마음에 읽어나갔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재료, 언제든 나도 구입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식재료도 다뤄주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도 각종 식재료에 관한 다방면의 이야기에 솔깃할 것이고, 요리에 일가견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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