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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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함께 '본격 식재료 에세이'라는 문장을 보고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밥을 해 먹고 살고 있고, 식재료도 내가 구입하기 때문에 식재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냥 하루 종일 살림은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싶지만, 사람살이 어찌 마음대로 되겠는가. 음식 준비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그 틈을 비집고 책 읽고 리뷰 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음식 평론가이며 번역가인 이용재. 건축가이며 남자 음식평론가이면서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식재료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관심이 생겨서 이 책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를 읽어보게 되었다.



어제 장을 봐왔다. 오이 6개인가 묶음에 1,980원이어서 엄청 싸다면서 두 봉지를 집어왔다. 그런데 무얼 해먹을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상하면 곤란하니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지난번에 부추 싸다고 한 묶음 샀다가 뭘 해먹을지 난감해하며 힘들게 먹어치운 기억도 떠오른다.

그런데 식재료에 대해 이 책이 나의 생각을 다르게 해주었다. 오이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이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벽돌에게 물어본다. "무엇이 되고 싶으니?"

그럼 벽돌이 대답한다. "저는 아치가 되고 싶어요."

_루이스 칸(1901~1974)

건축가 루이스 칸의 '벽돌과의 대화'는 유명하다. 벽돌에게 물어보면 건물의 어떤 부분 혹은 요소가 되고 싶은지 대답해줄 거라는 이야기인데, 건축 재료가 순리에 따라 되고 싶은 모습, 즉 지향하는 건축의 요소가 있을 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루이스 칸과 벽돌에 비하면 훨씬 실용적이지만 나도 그런 대화를 짐짓 머리에 그리며 이 원고를 썼다. 식재료가 순리에 따라 되고 싶은 음식과 요리는 과연 무엇일까? 이를 인간의 시선으로 바꿔 말하면 식재료마다의 '포인트', 즉 알아두면 좋을 식재료 정보라 하겠다. 먼저 양파에게 물었더니 진득하게 볶아 캐러멜화를 시켜 단맛을 뽐내고 싶다고 답했다. 딸기는 어차피 생으로 먹는 과일이니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손질법이 최고라고 했다. 식초나 감칠맛 조미료는 종류와 맛의 특성, 쓰임새 등을 두루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런 '식재료와의 대화'를 일상의 맥락에서 시도 및 정리해 '세심한 맛'이라는 제호 아래 <한국일보>에 연재했었다. 2018년부터 토요일 지면을 맡아 격주와 매주를 넘나들며 3년여 동안 꼭 100화를 연재하고 마쳤다. 쌓인 원고를 일상의 체로 한 번 더 걸러 60여 편의 원고로 추려 다듬은 책이 바로 본격 식재료 에세이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다. (9~10쪽)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된다. 1장 '향신료와 필수 요소', 2장 '채소', 3장 '육류와 해산물', 4장 '과일', 5장 '달걀과 유제품류', 6장 '곡물', 7장 '알아두면 좋을 식재료 이야기'로 나뉜다. 카레, 허브 등 향신료, 후추, 소금, 설탕 등 필수 요소, 마늘종과 마늘, 파프리카, 올리브, 토마토, 가지 시금치, 애호박, 브로콜리, 당근, 감자 등 채소, 닭가슴살과 닭다릿살, 돼지 안심과 갈비, 새우, 홍합, 연어, 조개관자 등 육류와 해산물, 사과, 레몬, 파인애플, 딸기, 수박, 귤 등 과일, 달걀, 버터, 우유, 크림, 요구르트 등 달걀과 유제품류, 두부, 귀리, 밀가루, 호두 등 곡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흔히들 군대 이야기라면 좀 그렇다고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군대 이야기는 달랐다. 군대에서 요리한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아냈다. 4급 현역 입대자였던 저자는 몇몇 보직을 전전한 뒤 식품 담당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양파를 손질하는 요령을 배웠다고 한다.

양파를 손질하는 요령을 배운 것도 그때였다. 훔쳐봤다는 표현이 맞겠다. 양파를 왼손으로 잡고 수직으로 도마 위에 세워 윗동과 밑동을 썰어낸다. 그리고 손바닥에 올려 식칼로 가볍게 탁 내리치면 겉껍질부터 맨 바깥쪽 켜에 칼집이 들어간다. 덕분에 맨 바깥쪽 켜와 함께 껍질을 손쉽게 벗겨낼 수 있다. (86쪽)

취사병들은 정말 무섭다 싶을 정도로 빠르고도 경쾌하게 3백 명분의 양파를 매 끼니마다 처리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양파의 캐러멜화 설명에 저절로 시선을 고정시키며 읽어나간다.

금방 지어낸 밥 한 숟가락에 푹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 그리고 캐러멜화한 양파를 조금 올려 먹는다. 요즘 유행인 '단짠'의 '밀당'은 물론, 매운맛을 가르며 파고드는 단맛이 입안 구석구석을 메운다. '이것이 한식이 꿈꿔야 할 이상적인 맛의 폭발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89쪽)



가지도 흔히 사 오는 식재료이기는 한데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찌거나 조림을 해서 먹고 있다. 그런데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들으니 가지가 남달리 보인다.

사시사철 어디에서나 살 수 있을 정도로 흔하지만 조리는 너무나도 만만치 않은 채소가 가지다. 반질반질한 보라색 껍질에 칼이 딱 사뿐사뿐하게 들어가는 느낌이 좋아서 하루 종일 썰어도 즐거울 것 같은 채소가 가지다. 그러나 거기까지. 조건반사처럼 별생각 없이 사 와서 도마에 올려놓으면 비로소 본격적인 고민이 밀려온다. 가지는 대체 어떻게 먹는 게 좋을까?

정답은 '아무렇게나'다. 가지는 다른 맛을 굉장히 잘 흡수하는 식재료다. 그래서 나물부터 샐러드, 구이부터 튀김까지 웬만한 요리에는 모두 고개를 들이밀 수 있다. 눈치도 꽤 빨라서 이런저런 식재료와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말하자면 잠재력이 엄청난 채소인데 교육과 훈련이 좀 필요하다. 잠깐의 학습만으로도 잠재력이 활짝 피어나지만, 배려해 주지 않으면 눈치 없이 거의 모든 음식을 완벽하게 망칠 수 있다. 전혀 과장을 보태지 않고 가지의 미래가 우리의 손에 달렸다. (94쪽)

또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닷가재의 목숨을 끊는 여러 가지 방법도 인상적이었다.

바닷가재는 기본적으로 육식동물이며 심지어 자기들끼리 잡아먹기도 하며, 생기가 있다 못해 성깔을 부리는 바닷가재가 더 맛있다는 것이다. 주눅이 들어 있거나 피곤해 보이는 바닷가재보다는 성깔 있는 바닷가재가 더 나은 선택이긴 한데, 조리는 어떻게 하나?

거기에 대한 방법이 다음 페이지까지 이어지니, 오, 나는 그냥 바닷가재는 사 오지 않아야겠다. 그래도 사람 일은 혹시 모르는 것이니 이 책에 바닷가재에 대한 글이 있다는 것은 기억해두어야겠다.



희귀하거나 비싸거나 쓰임새가 한정된 것들보다 동네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식탁에 흔히 오르는 식재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또한 일상의 최전선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이들에게 더 잘 먹을 수 있는 요령을 즐겁게 소개하고 싶었다. (…) 요리에 밑준비가 필요하듯 요리 공부의 밑준비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내가 생활인으로서 경험하고 검증해 담았다. 요리의 초기 단계부터 참고하면 기초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을 펼쳐들면 저자의 글 솜씨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가게 된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흥미로운 시간도 보내고 말이다.

특히 아는 식재료들도 많아서 반가운 마음에 읽어나갔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재료, 언제든 나도 구입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식재료도 다뤄주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도 각종 식재료에 관한 다방면의 이야기에 솔깃할 것이고, 요리에 일가견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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