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몇 개월 전,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중간부터인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글로 채워진 책이었다. 그 책은 나른한 오후에 졸음이 올 듯 말 듯한 상태로 책을 읽어나가다가 보면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잠에서 확 깨는 순간이 오는 그런 책이었다. 그때의 그 감동을 잊지 않고 '김연수'라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이번에는 김연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어보게 되었다. 소설가의 소설은 '나중에 읽어야지'라는 변명을 하며 미뤄두고 산문을 먼저 읽는 것은 소설읽기는 늘 뒤로 미루는 나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에도 산문이 더 익숙하고, 소설가 김연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먼저 이 책의 제목 '지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다보니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김연수 소설가는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뛰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일본 만화 <좋은 사람>에 나오는 조언, 즉 "가장 천천히 뛴다고 생각하면 가장 빨리 뛸 수 있어."를 읽고 크게 깨달은 뒤 매일 달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작가는 달리기를 통해 깨달은 점을 알려준다.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9쪽)

 

이 책의 뒷표지에 보면 이 책의 취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소설가 김연수가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체험한 사랑, 자연, 문학, 사람 그리고 지지 않는다는 말이 담겨있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에서도 그의 세상 보는 섬세한 눈을 엿볼 수 있었고, 생활 속의 어떤 사소한 소재라도 이야깃거리로 탄생되는 연금술에 감탄하며 읽어나갔다. 말 그대로 '이런 것도 글로 쓸 수 있구나.'라는 감탄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남들이 별 일 아니라고 넘기는 일에도 탁월한 관찰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가볍게 툭 던지는 말에서 삶의 철학을 담아낸다. 이 책을 읽으며 달리기에 대해 다양한 방면에서 접근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도 직접 달리기를 취미생활로 하고 싶지는 않으니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힘든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근육통과 지루함을 참아 내는 것은 오직 러너로서의 관용 덕택이다. 그렇지만 달리기는 고급 예술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절망을 좋아하는 척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을 참아 내는 것은 오직 인간으로서의 관용 덕택이다. 그렇지만 삶은 고급 예술이다. (22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