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처럼 여행하기
전규태 지음 / 열림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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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한부를 선고받으면 낯선 병원에서 죽을 때까지 치료받고 병마와 싸우다가 눈을 감게 된다. 병때문이 아니라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리고 무기력하게 삶의 끈을 놓는 방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현대의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병에 걸리면 돌아다니지 말고 병원에서 치료받아야한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아온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대안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치의는 내게 객사를 권했다."

살아야 한다, 살 수 있다, 이 믿음 하나로 시작된 여행.

이 책의 띠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객사'라는 말은 다소 자극적인 단어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치의가 무책임하게 한 말이 아니라 충분히 저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게 삶의 끈을 놓지 않도록 최대한의 조언을 해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때의 상황이 어땠고 무슨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는지 짐작하게 된다. 그 상황에는 그것이 적합한 처방이었고 그렇게 했기에 삶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떠났다기보다는 도망쳤다는 말이 맞겠다. 이미 파산한데다가 가정이 해체되어 기존의 삶을 버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주치의의 말대로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난 지 벌써 스무 해.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린 것은 그러므로 잡스의 '부유富裕'가 아닌 내가 선택한 '부유浮遊'였던 셈이다. (25쪽)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부유浮遊'하다가 생체의 '조화'를 되찾게 되었다고, 그렇게 죽음을 삶으로 바꾸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27쪽)

 

'단테처럼 여행하기'라는 제목도 시선을 끈다. 책을 펼쳐들면 이런 말이 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찾아 떠나듯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긴 여행길에 나섰다.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읽다보면 나온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사랑하면서도 고백하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괴테도 샤를로테를 사랑하면서도 떠나보냈다. 바이런도 진정 사랑한다면 떠나라고, 떠나보내라고 했다. 주치의는 여행을 떠날 때에도 단테나 괴테처럼 사랑을 생각하며 여행하라고 했다. (55쪽)

 

이 책은 전규태 산문집이다. 그의 첫 여행, 어린 시절의 생각, 여행지에서의 생각,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담긴 책이다. 어찌보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니 한정된 삶을 보다 깊게 누리기 위해서는 여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여행이 어떻게 우리를 살게 하는지, 혼자 여행하기가 어떻게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따금 훨훨 털어버리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면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활력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얻을 수 있다. 혼자 여행할 때면 자기 모습을 '유체이탈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된다. 그 눈으로 보면 나그네의 모습은 얼핏 쓸쓸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많이 괴로워하다가 길을 나선 나그네가 어느샌가 여느 사람의 슬픔이나 괴로움을 함께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50쪽)

 

여행을 통해 우리는 '부유浮遊하는 소우주'를 만나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도 접하게 되지만 못 보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행을 하면 일상에서는 뜨이지 않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마음의 감각을 되살리며, 스스로도 놀랄 만한 새로운 발견과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행은 꿈꾸는 중임을 알면서 꿈을 꾸는 자각몽 같기도 한 것이고, 우리에게 실존의 기회를 제공하는 소중한 보물이다. 이 책을 통해 여행에 대해 색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고 가치를 발견해내는 시간을 갖는다.

 

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돌아온 후 이를 반추하면서, 나는 나의 남은 시간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세상은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자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213쪽)

여행은 여행자를 한껏 성장시킨다. 마음은 좀더 너그러워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폭이 넓어진다. 이 책을 읽으며 여행과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하며 존재할지 조금은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이 책은 죽음의 경계에서 건져올린 사색의 결정체이자 여행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담아낸 폭포수같은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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