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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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을 통해 정여울 작가의 인상적인 여행에 동참한 시간을 가진 이후로 작가의 테마 여행 이야기에서 여행서를 읽을 때 느끼던 갈증을 채웠다. 각각의 이야기가 간단명료하면서도 강한 끌림이 있기에 책 속의 다양한 여행지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고, 저자의 이야기는 여행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교감을 이룰 수 있기에 친근하게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은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읽기를 자꾸 뒤로 미루고 있었던 책이다. 작가의 이름을 보고 반가운 생각이 들었으면서도 '시간이 나면 언제 한 번 읽어야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거리감 때문인지 무언가 거창한 느낌 때문인지, 뜨끈뜨끈한 신간은 출간된지 조금 지나고 시간을 묵히고 나서야 내 눈길을 받았다. 헤르만 헤세가 말년을 보냈다는 스위스의 몬타뇰라에 대해 궁금해진 다음에야 이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이 책은 일단 펼쳐들면 읽게 되고, 읽다보면 푹 빠지는 매력이 있다. 헤세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이 책을 통해 알아가게 되고, 나도 헤세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책도 역시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쉬는 여행이 아니라, 헤르만 헤세라는 테마 하나 만으로도 이렇게 여행서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면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미 읽어본 유명한 책도 다시 한 번 읽고 내 마음을 뒤흔드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신기하게도 내 손에는 헤르만 헤세의 책들이 쥐어져 있었다. 입시 지옥에서 헤맬 때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있었고,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때는 『데미안』을 읽고 있었으며, 내게는 도무지 창조적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가슴앓이를 할 때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고 있었다. 의미 없이 나이만 먹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려올 때는 『싯다르타』를 읽고 있었으며, 내 안의 깊은 허무와 맞서 싸워야 할 때는 『황야의 이리』를 읽고 있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지만, 내가 살아온 '무의식의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어쩌면 아름다운 필연이었다. (프롤로그 中)

 

이 책의 1장과 3장은 짧은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부담없이 읽어나가게 된다. 매력있는 책의 특징은 슬슬 넘겨도 다시 앞으로 가서 정독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감상하며 짧은 이야기를 슬쩍 읽어나갔는데, 다시 앞으로 가서 제대로 읽어나가게 된다.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는 책 중의 하나여서 가슴 두근거리는 느낌으로 읽었다. 지금껏 잘 몰랐지만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리라는 생각이 들고, 그의 수채화 작품에도 마음이 끌린다.

 

이 책은 잔잔한 강물같이 나긋나긋 흘러가며 나를 휘감아버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살짝 발을 담갔는데 어느새 푹 빠져버리는 마력이 있다. 다른 책을 읽다가 잠깐 집어들었는데, 헤어나오지 못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어버렸다.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다음 번에 또 다시 읽어보고 싶고, 또다시 감동에 휘감기고 싶어진다. 이 책을 통해 헤르만 헤세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헤세로 가는 길'이 마음에 맴돌며 강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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