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푸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5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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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좀비'나 '뱀파이어' 같은 이야기를 보면 시큰둥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게 말이 돼?'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깃속으로 흥미롭게 빠져들지 못했다. 얼마 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메르스 사태가 없었다면 이 소설에도 시큰둥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이 없는 일이 발생하고 보니 이 소설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의 현실에 있을 법도 한 좀비 스릴러를 30대 여성 유다영의 달콤살벌한 로맨스와 곁들여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단 이 책은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번 손에 쥐면 그 다음에 어떻게 돌아갈지 궁금해져서 단숨에 읽어나가게 된다. 게다가 『로맨스 푸어』라는 제목만으로는 예상할 수 없었던 피 칠갑을 한 주차 요원이 휘적휘적 모퉁이를 걸어나오는 좀비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정신을 번쩍 차리며 빠져들게 되었다. 사실 피, 좀비같은 무서운 이야기는 아예 읽기 싫어하기 때문에 좀비에 대해 미리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 소설인데, 모르고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었다. 무력해지는 한낮에 활력소가 되었다.

 

이 책에서 보게 되는 또 하나의 장점은 공상의 세계 속에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데에 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30대 여성인 유다영이 어떤 선택을 할지 내 의견을 말하며 간섭하고 싶어진다. 마음은 가지 않지만 재력이 있는 이성욱이냐, 대책없이 정의감만 앞서는 가난한 꽃미남 강우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지금처럼 아무 문제가 없는 현실이면 모르겠지만 좀비로 득시글한 세상이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유다영의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에서 자꾸 대상을 바꾸게 된다. '그 상황이라면 대충 맞춰주고 마음 편하게 사는게 나은거 아닌가?,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낫잖아?' 마음속에 두 가지 질문이 수시로 교대하며 떠오른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 속의 상황이 아니어도 충분히 현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영의 생각을 일러주며 독자에게 현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묘미였다.

인류 역사상 결혼이 낭만의 영역에 존재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결혼은 서로의 신분을 섞고 세탁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재화 혹은 권력은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숨만 쉬어도 갚아야 할 빚이 늘어가는 이 사회에서, 서로 나눌 게 전혀 없는 남녀간의 결합은 사회,경제적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이 뒤집어지기 훨씬 전부터, 이곳은 그랬다. (206쪽)

 

소유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었다. 물질만능의 세상이지만 그것을 외면하거나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길에서 잔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을까? 아파트에서 산다고 그들보다 행복할까? 쓴웃음이 나온다. 잠깐이나마 이런 헛생각을 하는 건 모두 베스트셀러의 세뇌 때문이다. 버리고 행복하라, 같은. 정작 저자 본인은 하나도 안 버리면서 쓰는 책들. 못 가질 수는 있다. 안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생기면 얘기는 달라진다. 같이 못 가질 수 있다. 같이 안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나혼자 덜 가질 수는 없다. 적어도 남들만큼은 가지고 살아야 했다. (225쪽)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는 그렇게까지 변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오늘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예측하게 된다. 그래도 소설 속 세상에서는 작가의 상상에 따라 별별 일이 다 생긴다. 생각지 못했던 세상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는 볼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읽다보면 어느 정도 현실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고, 그럴 때에 소설에 대한 몰입도는 높아진다. 손에 쥐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을 소설이다. 다영의 시선으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우리는 내 영혼 어디까지 내다 팔 수 있는가'라는 말이 화두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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