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추리소설'이 떠오른다. 그런 것 때문일까? 이 책은 추리소설이 아님에도 추리소설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기게 된다. 누구나 그렇듯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은 추리소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이름은 너무도 강렬해서 책의 장르마저 고정관념으로 눌러버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이 책의 첫 번째 매력이다.

 

이 책을 접하고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1930년부터 1956년까지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필명을 쓴 것은 추리소설 독자들을 혼동시키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고, 이는 애거사의 뜻에 따라 오십 년 가까이 비밀에 부쳐졌다고 한다. 이 책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이름으로 출간되었고, 만약 그러한 언급 없이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면 끌림이 약했을 것이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긴 하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그리는 사랑은 색다른 느낌이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이 소설이 애거사 크리스티가 노년기에 쓴 소설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작가의 이름보다는 내용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사랑을 배운다』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노년기에 쓴 소설로 원제는 The burden 즉 '짐'이다. 언니 로라와 동생 셜리, 자매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랑이라는 '짐'에 대해 그린다.

(312쪽_옮긴이의 말)

애거사 크리스티가 전해주는 사랑 이야기가 어떨지 궁금하여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약간의 의아함으로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은 일단 다 읽고 나니 작가의 이름보다는 내용이 여운으로 남는다. 사랑을 생각하게 하고 삶을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의 표지에는 단아한 여성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이 여성이 주는 무게감만큼 이 소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바라보기에 따라 다른 무게감을 전해주는 것일테다.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고 버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각자가 느끼는 사랑의 무게는 자신이 지고 나아가기에 조금씩 버거운 정도라는 생각도 든다. 이 소설 속 여인들의 모습을 보면 적당한 짐을 무겁게 이고 가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게 되지만, 그 누구도 그녀들의 짐을 덜어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오빠가 죽자 로라는 부모의 사랑을 받을 거라는 은밀한 기대에 들뜨지만 갓 태어난 동생에게 또다시 부모의 사랑을 뺏긴다. 로라가 하느님에게 동생을 천국으로 데려가달라고 기도하던 날 밤에 집에 화재가 나고, 로라는 위험에 처한 동생 셜리를 구하면서 죄책감과 강한 사랑을 느낀다. 이후 로라의 삶은 오직 셜리에 대한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채워지고, 이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애거사 크리스티는 사랑을 주고받는 것의 본질을 탐구한다. (312쪽)

 

이 책은 표지에서 주는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는다. 스토리 자체도 읽을만 했고, 그 과정에서 로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기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맹목적인 사랑을 받는 동생 셜리의 속마음을 알아채고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희생','헌신'이 주는 '짐'을 이들의 상황을 읽어나가며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기도 한다.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내 안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부분이고 주변에서도 보게 되는 면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기준에서 조정하려다가는 상대를 불행에 빠지게 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음에도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되면 어리석은 판단을 하기도 한다.

나는 백 가지 사랑의 기술을 알았으나

그 하나하나가 연인을 슬프게 만들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봐라, 꼬마 로라."(97쪽)

 

이 소설을 읽으며 사랑의 일그러진 단면을 바라보다가 인생을 보게 된다. 점점 시야를 확장해서 인간을 바라보는 신의 모습까지 생각하도록 작가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인간을 증오하느니 차라리 신을 중오하는 게 훨씬 나아요. 그래봐야 인간은 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신은 우리 인간에게 상처를 주죠."

"그렇지 않아요. 인간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죠."

"신의 탓으로 돌려버리라는 건가요?"

"그게 바로 신이 하시는 일이에요. 신은 우리의 짐을 짊어지시죠. 우리의 반감이라는 짐, 미움이라는 짐. 그리고 사랑이라는 짐." (212쪽)

 

이 소설은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모은 시리즈인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고보니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인간을 바라보는 예리한 통찰에 푹 빠져들게 된다. 한동안 여운으로 남을 소설이다. 오랜만에 소설 속 세계에 빠져들어보았다.

"넌 사랑을 주고만 싶지 받고 싶지는 않은 거야. 사랑받는다는 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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