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 - 고전 속 지식인들의 마음 지키기
박수밀 지음, 강병인 서체 / 샘터사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가끔은 옛날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현대의 삶에서 편리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없다는 것은 조금 불편할 것이다. 치통이 있을 때에 치과 한 번 다녀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을 몇날 며칠을 앓기만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멀리 떨어져있어도 전화 한 통화면 해결될 일을 말을 타거나 하염없이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옛날 선비들의 단촐한 살림살이와 깔끔한 책상머리는 부럽다. 그저 살아가는 걱정 없이 경서 읽기에만 몰입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삶의 겉모습만을 생각한 것일테다. 좀더 깊숙이 들어가 내면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어떤 좌우명을 가지고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았을지에 대해 궁금해진다. 이 책이 그런 궁금증을 한데 모아 해결해준다.

 

이 책은 옛 지식인의 삶을 이끈 한마디 문장과 그 문장을 오롯하게 드러내 주는 인생의 아름다운 국면을 이야기한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 말할 때 사람의 면면을 일일이 기억하고 그 삶 전체를 오롯하게 말하기란 정말 어렵다. 아니,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 도리어 그 사람을 말해 주는 단 하나의 문장,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좌우명은 그 사람의 일생을 요약해서 말해 주는 인생 자체가 아니던가? (9쪽)

 

이 책에는 이순신, 이이, 허균, 김득신, 이익, 박지원 등의 좌우명이 담겨있다. 월간 <샘터>에 '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으로 연재된 글과 영묵 강병인의 멋글씨(캘리그래피)가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그저 술술 넘기다가 마음이 잡아끄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도 좋을 것이다. 단순히 좌우명만 나열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과 삶의 태도가 드러난다. 이 책을 읽으며 좌우명에 담긴 그들의 인생을 바라본다.

 

이 책을 보다보니 저자가 어떤 부분을 덜어내야할지 고민을 많이했으리라 짐작된다. 평소에 좋아하고 관심 가졌던 김시습, 이익,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홍길주 등도 막상 삶을 이끈 한마디 말을 고르려니 난감했다(10쪽)는 저자의 고민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고민과 핵심을 잡아내는 노력으로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더욱 빛날 수 있었으리라 본다.

 

처음에는 단순히 좌우명이 궁금해서 한 번 읽게 된다. 멋글씨와 좌우명에서 남다른 힘을 느끼기도 하고, 왜 그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을지 궁금해진다. 그 다음에는 옛사람들의 삶을 이끈 문장의 배경이 궁금했고, 인물 됨됨이까지 상세하게 살펴보게 된다. 눈에 띈 좌우명을 먼저 찾아서 읽으며 그 저변에 깔린 옛사람들의 삶을 읽어나가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혹시라도 놓쳤을지도 모를 보물을 건져올리는 시간을 갖는다. 남명 조식의 《남명집》중 <좌우명>을 자꾸 곱씹어보게 된다. 멋글씨에도 굳건한 힘이 들어가있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다. 조식은 배운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행동가이다. 조식이 61세 되던 해, 지리산 덕천동에 들어가 산천재를 짓고 그 방에 좌우명을 내걸었다. 그 좌우명이 바로 이 글이다.

"항상 미덥고 삼가며 사악함을 물리치고 참됨을 보존하리.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으면 봄날의 꽃처럼 환히 빛나리라."

이렇게 접하게 되니 좌우명에 대한 전후 이야기와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 한 번에 살펴볼 수 있어서 의미 있다.

 

별다른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좌우명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큰 틀에서 볼 때 삶의 진행 방향을 잡아주는 금귀이고, 인생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될 것이다. 옛사람들의 좌우명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니 나의 인생을 이끌어줄 좌우명이 어떤 것이 있을지, 내 인생을 담아낼 문장을 무엇으로 할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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