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스릴 넘치는 소설을 읽고 싶었다. '미스터리, 스릴러'로 설명되는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은 긴장감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도 한다. 소설을 읽을 때에 스포일러에 김이 새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접근하게 된다. 이 책 역시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이라는 제목과 표지에 있는 '사과'에 관한 글이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아는 전부였다.

인류 역사를 바꾼 세 개의 사과 - 이브, 뉴턴, 세잔의 사과

그리고 한 천재가 베어 먹은 네 번째 사과의 비밀!

 

이 책은 제목에서 주는 느낌과 실제로 읽었을 때의 느낌이 좀 달랐다. 제목을 보고 언뜻 떠오른 것은 방정식과 그에 얽힌 지적 스릴러였다. 실제 책을 읽기 시작하니 예상했던 내용이 진행되는 소설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던 긴장감은 부족한 듯하나 이 책을 통해 앨런 튜링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수확이었다. 엄청난 일을 해낸 천재 수학자에 대해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세상에 내가 모르는 일이 정말 많구나, 생각된다.

 

앨런 튜링이라는 천재 수학자가 있었다.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 앨런 튜링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나온다.

"사회는 나에게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가장 순수한 여자가 선택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앨런 튜링(1912-1954)

그제야 그가 실존 인물이었음을 알아채고 검색을 하게 되었다. 영국 국립물리학연구소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 팀장, 1939.09 영국 암호학교 암호해독반 수학팀장 등의 이력이 눈에 띈다.

158,962,555,217,826,360,000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해군의 암호 생성기인 에니그마가 만들 수 있는 조합의 수. 앨런 튜링이 이를 해독함으로써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소설은 앨런 튜링이 죽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비오는 날, 경찰인 젊은 경관 레오나드 코렐은 사건 현장에 가게 된다. 좁은 침대 위에 한 남자가 똑바로 누워 있었다. 시체. 남자는 검은 머리에 서른이 갓 넘어 보였다. 입가의 하얀 거품이 뺨을 타고 흐르다가 말라 흰 가루만 남았다. 두 눈은 반쯤 뜬 채 돌출형의 둥근 이마 아래 깊숙이 파묻혔다. 코렐은 톡 쏘는 아몬드 향. 유리찬장에서 발견한 청산가리. 수학 방정식으로 가득찬 수첩 등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호기심은 이제 시작된다.

삶과 생활의 흔적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실험, 메모, 계산. 마치 삶이 중간에 뚝 끊어져나간 것만 같았다. 이곳에 누가 살았든 간에, 삶이 지긋지긋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깊이 개입해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다지 신기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는 누구나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살이라니, 선택한 방법이 너무 복잡하지 않나? 스스로 목숨을 취할 생각이었다면 왜 독극물을 병째 마시고 헤까닥 가지 않았을까? 저 친구는 약을 냄비에 끓이고 천장에서 전선을 뽑고 사과를 반쪽 내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뜻이다. (33쪽)

 

동성애에 대해 사회적 평판은 지금도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 시대에는 앨런 튜링의 위대한 업적조차 덮어버릴 만큼 파장이 컸다. 그가 어느 정도 연기력이 되거나,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을 솔직하게 말해버리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튜링이 불쑥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 호모다." (345쪽)

앨런 튜링은 화학적 거세를 선고받고 여성 호르몬을 투여받는다. 이 책에는 앨런 튜링만이 아니라 또다른 동성애자인 코렐의 이모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책 속의 또다른 주인공인 코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이 소설에 덤으로 주어지는 매력이다.

 

꽤나 두꺼운 소설이다. 앨런 튜링에 대해 이름조차 몰랐던 사람에게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읽어보도록 만드는 묘미가 있다. 이 소설은 실존인물을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살짝 얹은 것이기에 어느 부분까지 사실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나가게 되었다. 이 책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은 <밀레니엄>시리즈 4부 작가인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지적 스릴러 소설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영감을 불어넣은 단 한 권의 소설이라는 점에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와 책을 비교해서 이해하면 더욱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나저나 제 4의 사과는 애플사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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