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철학 - 질문으로 시작하여 사유로 깊어지는 인문학 수업
함돈균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는 바깥세상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 보다 새로운 것을 보면 기분 전환이 되리라 생각했고, 보다 큰 뜻을 가져야한다고만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오더라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곳으로 가게 되고, 생각에 잠기려면 거창한 철학 사상에 심취하려고 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러면서 주변의 소소한 일상적 사물에는 눈길을 주지 못했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그 소중함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내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내 관찰력이 부족하면 어떤 곳에 가든 새로운 것을 보아낼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상의 사물을 보고 읽고 사유하라!"

 

이 책 『사물의 철학』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사물을 모아놓았다. 가로등, 거울, 달력, 립스틱, 명함, 버스, 생수, 선글라스, 연필, 의자 등 이미 내 주변에서 수시로 보게 되면서도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임을 깨닫는다. 항상 내 주변을 맴돌았지만 나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았던 다소 사소한 것들에 대해 세세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렇게 콕콕 짚어주는 일상 속 사물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생각에 잠긴다. 그만큼 이 책은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에 잠겨도 괜찮은 일이겠구나, 깨닫게 된다. 각각의 사물에 대해 한두 장에 걸쳐서 짧게 기술하고 있는데, 글을 읽다보면 촌철살인의 관찰력을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도 이렇게 관찰력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룬 것들은 사전적 정의나 범주로 보자면 예외 없이 모두 도구다. 그러나 나는 이 사물들을 쓸모의 차원에 종속된 도구(만으)로 대하지 않았다. 이 문명의 도구들을 자연도 인공적 대상도 아닌 그 사이에서 출현하고 유동하며 인간과 관계 맺는 사물의 차원에서 만났다. (프롤로그 中에서)

이 책의 저자는 함돈균. 문학평론가이다. 2006년 문학평론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첨예한 사유의 모험과 표현의 실험, 깊이 있는 인문정신의 종합이 문학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고 한다. 별 것 아닌 도구도 달리보면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도마] 거룩한 희생제의, [립스틱] 생활인을 예술가로 바꾸는 지팡이, 미래에서 온 타임캡슐 [생수], 권력의 사각 프레임 [쇼핑카트], 둘이 있어야만 시작되는 '사람다움' [젓가락], 개별성이 살아있는 구멍들 [후추통]

이 책을 보며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매일 이용하기도 하는 물건들에 대해 재인식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생각해보니 주변에 사물이 가득하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 있는 물건이 되기도 하고, 한낱 잡동사니에 불과한 물건이 되기도 한다.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물들을 저자의 이야기로 바라보고, 그동안 미처 의미를 두지 못했던 부분까지 끌어내게 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매일 음식을 하며 도마를 꺼내들고 음식재료를 칼로 썰어내지만, 도마라는 사물은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나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도마라는 사물은 칼과 재료의 몸이 맞부딪히는 물리적 장이며, 무언가(재료)의 관점에서 보면 몸의 분할이 이루어지는 경계면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물은 생사가 나뉘는 시간과 세계의 경사면이라 할 수 있다. (62쪽)

사라진 것들이 無존재가 아니라 존재였기에 사라지지 않고 형상을 바꾸어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갈' 뿐이라는 저자의 말을 보며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세계를 교과서 속이 아닌 일상 생활 안에서 만나보는 느낌이었다. 이런 식으로 주변을 바라보니 기적 아닌 것이 없고, 감탄하지 않을 것이 없다.

 

이 책에서 보게 되는 그림 또한 시선을 자꾸만 머물게 한다. 글과 그림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최대한 끌어내어 눈앞에 보여준다. 그 어떤 것도, 별다른 느낌이 없는 사물일지라도, 섬세한 눈으로 날카롭게 바라보면 어마어마한 우주의 무게를 담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 책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의미 있었다. 조금씩 음미하며 문장 속에 빠져드는 맛을 느끼기에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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