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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문학 - 철학이 사랑한 사진 그리고 우리 시대의 사진가들
이광수 지음 / 알렙 / 2015년 1월
평점 :
어떤 사진이 잘 찍은 사진인지 분별해내는 능력이 내겐 없다고만 생각했다. 사진 전시회에 가보았을 때,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당연히 잘 찍은 작품이라 생각했다. 잘 찍은 사진만 골라 전시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 안에서 배우려고 했다. 사진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고만 생각했다. 사진을 보는 방식을 열심히 배워도 언제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그렇게 생각했던 내 태도를 바꾸게 한다. 셔터속도, 조리개, 줌 기능 등의 기계조작법도 물론 필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담느냐 하는 나만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역사학자의 사진 비평이 궁금해서 읽어보게 된 이 책 『사진 인문학』을 통해 사진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사진에 대해 잘 모른다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이 책은 사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단순히 프레임에 대상을 담고 셔터를 누름으로서 사진을 얻어냈다면, 이 책을 읽으며 그 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책에서는 사진은 우연의 소산이고, 아무리 뛰어난 사진가라고 할지라도 특정 장소와 시간에서 어떤 장면을 찍을 때 필름의 잔상에 무엇이 담길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사진은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 무엇인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프레임 안에 집어넣기도 하지만, 행위 자체는 무엇인가 어떤 존재를 배제시켜 버림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진은 틀이라는 존재에 의해 그때 그 자리에 다른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것이 갖는 권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진이라는 이미지 안에 담긴 중요한 인문학 개념의 출발 지점이 바로 여기다. (15쪽)
사진가는 촬영 행위에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직접 개입은 하지 못하지만, 이미지 프레이밍을 통해 간접 개입을 한다는 점, 세상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조직한다는 점에서 사진과 사진가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사진을 통해 인문학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진이 모사가 아닌 재현을 하기 때문이라는 말에 주목하게 된다.
이 책의 1부를 통해 사진의 뜻을 어디에 둘지 파악해보고, 사진의 인문학적 고찰을 함께 따라가본다. 사진을 인문학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이 책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동안의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지고 내 안에 새로운 탑을 쌓아가는 느낌이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글 속에 설명되어진 모든 사진이 이 책에도 실려서, 독서에 끊김없이 바로 바로 글과 사진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궁금해지는 사진가와 작품을 따로 검색해보아야 하기 때문에 읽어나가는 속도가 더디게 된다. 그렇게 하자면 책을 만드는 비용이 엄청 많이 들테니 아쉽지만 욕심은 접고 통과! 이 책에 실린 사진작가와 작품을 따로 검색해보고 싶을 만큼 호기심이 강해지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사진에 담긴 생각을 어떻게 읽어볼지 함께 생각하게 된다. '한 장의 사진을 볼 때 독자 개인의 생뚱맞은 느낌이 사진가의 의도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거나 열등한 느낌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그래서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으로 나눌 수는 없다.(44쪽)' 그동안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으로 나누려고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던 나의 시선을 점검해본다. 왜 사진은 사진으로만 말할 수 없는 것인지, 텍스트가 사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구체적인 사진과 설명을 통해 바라보게 된다. 사진을 보며,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고, 저자의 설명을 읽어보며, 비로소 조금씩 이해의 폭이 확장된다. 3부에서는 사진으로 어떻게 말을 할 것인지 사진으로 철학하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사진만이 갖는 특성을 잘 살려 이미지로 은밀하게 말하고, 언어가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도록 해석의 공간을 열어주는 게 더 좋다는 의견이다.
이 책에 담긴 글을 보며 내 안의 소리를 들어본다. 사진을 찍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이다. 앞으로 사진을 찍으며 어떤 점을 염두에 둘지, 내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어떤 세상을 담을지,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 이것은 사진의 생각 읽기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192쪽)
다소 생소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사진을 주로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고, 사진에 대해 틀에박힌 해석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사진에 관한 다양한 인문학적 서적을 읽어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질 수 있는 분야이니까.
사진은 과학도 되고 예술도 되고 역사도 된다!
그래서, 사진은 인문학의 보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