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문학, 공항을 읽다 - 떠남의 공간에 대한 특별한 시선
크리스토퍼 샤버그 지음, 이경남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1월
평점 :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모르던 책을 건져내게 되는 즐거움에 즐겨 듣게 된다. 이 책 『인문학, 공항을 읽다』도 그 방송을 듣다가 건져낸 책이다. 빨간책방 107회 방송 '내가 산 책'에 소개된 책인데,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 책이다. 그동안 공항이라는 공간을 그저 여행지에 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치게 되는 장소라고만 생각했다면, 얼마 전에 읽은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 책을 시작으로 공항이라는 공간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때마침 '인문학'과 연계된 이 책의 제목은 나에게 호기심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공항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 이끌려 이 책 『인문학, 공항을 읽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크리스토퍼 샤버그. 미국 뉴올리언스 로욜라 대학교 영문학과의 현대문학 및 비평이론 교수이다. 그는 공항의 '텍스트성(textuality)'에 관해 문화 비평적으로 사색한다. 이 책을 통해 문학이나 문화 속에서 볼 수 있는 공항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된다.
이 책은 공항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회자되는 평범한 공항 이야기이면서 공항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공항의 겉모습에 감추어진 당황스럽거나 언짢은 이야기다. 이 책은 공항의 '텍스트성(textuality)'에 관해 사색한다. 텍스트는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소설과 시는 물론이고, 예술작품, 영화의 장면들 그리고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잡지 광고도 모두 텍스트다. 텍스트는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어렵든 단순해 보이든, 해석을 요구한다. (들어가는 말 8쪽)
저자는 텍스트적(textual)'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설명을 자제하고 유포시키는 방식에서부터 읽는 행위와 해석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함축적 의미를 한데 모으기 위한 포석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공항은 텍스트성에 크게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공항과 텍스트의 긴밀함을 입증하고 있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된다.
'텍스트'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이 책에 대한 접근성을 조금은 멀게 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무게감을 덜어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책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공항이라는 공간이 보다 가까이 실질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공항이라는 테마로 여기 저기에서 한 권의 책 안에 모아진 다양한 텍스트에 더해, 저자가 공항에서 일할 때의 경험담이 녹아들어 보다 생생해진다. 지금껏 공항에 대해 취합된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읽어본 적이 없기에 이 책의 의미는 그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1장 '공항 읽기'를 시작으로 서서히 워밍업을 한다. 911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접해보고, 공항 검사에 대한 내용, 공항 투어라고 불리는 공항이 그 자체로 목적지가 되는 가상적 상황 혹은 실험에 대한 글, 공항과 환경적 미학의 교차점에서 '기다림'의 현장과 감흥을 기반으로 하는 공항의 생태학적 독법, 마지막으로는 수하물 찾는 곳의 텍스트성을 반성함으로써 전체적인 내용을 마무리한다. 여행의 시작에서 끝으로 시선을 이동하면서 기나긴 여정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문학 및 비평이론 교수의 시선으로 공항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본 것인데,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양한 참고문헌을 통해 신뢰도를 높였고,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일반 대중을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관련 학계의 연구자들이 참고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처음의 낯선 느낌을 극복하면, 뒤로 갈수록 흥미로운 책이었다. 정독이 필요한 책이다. 글을 곱씹어보다보면 어렵게 쓰인 학문적인 언어를 쉽게 일상의 언어로 치환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파악해볼 수 있다. 이 책으로 공항을 집중적으로 분석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