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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평점 :
몇 년 전, 류시화가 엮은 하이쿠 모음집 『한줄도 너무 길다』를 읽어보았다. 바쇼, 이싸 등의 시인들이 짧게 표현한 하이쿠를 읽으며, 하이쿠의 매력에 푹 빠져보았다. 두꺼운 책을 읽다보니 글이 너무 많아 답답했고 좀 쉬어가자는 생각으로 찾아 읽게 되었다. 하이쿠를 읽어보고 싶어서 검색했는데, 아쉽게도 품절이었고,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빌려보았다. 절제된 문자로 표현된 강한 임팩트, 가끔은 웃으며 가끔은 공감하며 책을 읽었고, 소장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새책은 품절이고, 중고서점에는 원래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올라가 있었으니, 그저 다시 발간된다면 꼭 구매하겠다고 점찍어둘 뿐이었다. 아쉬운 마음만 가득한 채 다음 기회로 넘기게 되었다.
다행이다. 좋은 책은 그냥 그렇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탄탄히 내실을 다지며 보강되고 있었다. 드디어 류시화 시인의 해설로 하이쿠를 읽어볼 수 있는 책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가 출간되었다. 소장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결국 내 곁에 두었다. 두고두고 읽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니 말이다. 하얀 표지에 때가 타는 것이 아까우면서도 자꾸 손이 가서 조금씩 세월의 흔적이 묻어가고 있다.
이 책은 예전보다 두꺼운데다가 캘리그라피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이 시대에 맞게 눈으로 보며 하이쿠를 감상하기에 좋은 책이다. 시와 그림이 잘 어우러져서 더욱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 된다. 게다가 류시화 시인의 시인 감성으로 해설을 읽을 수 있으니, 글자 하나하나 꼭꼭 눌러가며 읽게 된다. 일본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어 원문도 함께 있으니, 공부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교재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하이쿠는 설명이 더해졌기 때문에 그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때로는 너무 짧아서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알지 못하면 그저 단숨에 읽고 넘어가며 잊어버리기에 충분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하이쿠 시를 찬찬히 다 살펴보고 나면, '언어의 정원에서 읽는 열일곱 자의 시'라는 '하이쿠의 이해'를 넓힐 수 있는 해설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일컬어지는 하이쿠는 본래 5.7.5의 열일곱 자로 된 정형시이다. 450백 년 전쯤 일본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나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애송되고 있고, 현재도 많은 시인들이 자국의 언어로 하이쿠를 짓고 있다. (590쪽)
열일곱 자에 인생의 생로병사와 삶의 진리까지 모두 담아낼 수 있다고 하는데, 하이쿠를 읽다보면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긴 글을 쓰는 것보다 짧은 글에 모든 것을 담는 것이 얼마나 강렬하게 마음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하이쿠에 대한 설명을 읽음으로 당시 시대상과 하이쿠의 역사, 규칙 등을 살펴보게 된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하이쿠를 읽으면 또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곁에 두고 틈틈이 꺼내들어 펼쳐보게 되는 책이다. 마음에 와닿는 하이쿠를 읽게 되면 가슴이 뛰는 그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생각해보니 이런 책을 가까이 두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펼쳐들었을 때 내 가슴이 뛰는 그런 책 말이다.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 것 이상으로 마음에 감성을 눌러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읽다가 설레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내 곁에 둘 필요가 있는 책이다. 그저 갖고 싶은 책이 아니라, 간직해야만 하는 책이다. 주기적으로 내가 손을 뻗어야할 책이고, 나에게 소중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하이쿠를 읽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주고 싶은 한 권의 책이다. 하이쿠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하이쿠를 소개하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