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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1월
평점 :
'경제학'이라는 단어를 보면 먼저 드는 생각은 '어려운 것'이다. 알고 싶지만 알기 힘들고,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인지 난해해서 변죽만 울리게 된다. 그저 '그래도 계속 접하다보면 어느 정도는 알게 되겠지.' 막연한 생각 뿐이었다. 이 책은 이런 나에게 어렵지 않게 다가온 책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때?' 편안하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조금은 경직된 마음으로 불황의 경제학을 어떻게 바라보면 될지 도전적인 자세로 접근한 나에게 '경제도 우리 삶에서 나오는거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일러준다. 이토록 눈에 쏙 들어오는 경제학이라니! 이 책을 통해 거시적인 안목으로 세계 경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먼저 이 책의 맨 앞에 있는 '폴 크루그먼과 이 책에 대한 세계 언론의 서평'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불황의 경제학』은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지난 20여 년 간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금융과 경제 붕괴의 비극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_로이터
▶크루그먼의 솜씨는 대단하다. 복잡한 경제 문제들의 숲과 나무를 함께 보고, 이를 알기 쉽게 해설한다. 어이없을 만큼 간단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독자들은 종종 다음과 같이 자문하게 된다. 왜 나는 이런 생각을 진작 못했던 거지?_보스턴글로브
▶지금까지 경제학의 핵심 명제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공짜 점심은 있다고, 다만 이것을 어떻게 가져오는지 알면 된다고 말한다._가디언
가끔은 책의 추천사를 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읽어보면 앞에 나열한 세계 언론의 서평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프린스턴 대학교의 경제학 및 국제관계학 교수이다. 혹시 교수의 글이 난해하고 읽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면, 이 책은 그런 선입견도 깨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나에게도 그랬으니까.
저자는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을 무미건조한 경제학 전문서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딱딱한 방정식이나 어려운 도표, 알쏭달쏭한 전문용어 등은 가급적 피했다. 나 역시 명망 높은 경제학자로서 아무나 읽지 못하는 어려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 또한(나 자신의 것을 포함해서) 그 읽기 어려운 글들이 이 책의 이론적 바탕이 되어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행동이다. 이런 종류의 행동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려면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개진되어야 한다." (들어가는 말 中 12쪽)
보스턴글로브의 추천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복잡한 경제 문제들의 숲과 나무를 함께 보고, 이를 알기 쉽게 해설한다.' 경제학 서적이지만 '경제는 정치적 배경을 벗어날 수 없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포괄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기에, 전체적인 것을 아우르면서도 세세한 부분까지 속속들이 언급한다. 세계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아시아 각국의 문제까지, 이 책을 읽으며 하나 하나 짚어보게 된다.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읽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그 책을 통해 세계를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시켜 살펴본 세상은 좀더 이해하기 쉬웠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는 '베이비시팅 협동조합'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된다. 이 이야기는 조안(Joan Sweeney)과 리처드 스위니(Richard Sweeney) 부부가 1978년 「통화이론과 그레이트 캐피톨힐 베이비시팅 협동조합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기사의 내용이다. 그 이야기를 적재적소에 끌어들여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었다. 언뜻 보면 그 일화로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잘 들어맞는 표현에 감탄하게 된다. 거창하게 생각하면 어렵기만 한 세계 경제를 베이비시팅 협동조합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주니 이해의 속도가 빨랐다.
문제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되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아니라고 했던가? 얼핏보면 먹고 사는데에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올까 생각되지만, 불황, 공황, 그런 단어들에 마음이 움츠러드는 느낌이 든다. 다행히도 저자는 공황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세계 경제는 공황에 빠지지 않았다. 현재의 위기 규모가 크긴 하지만 세계 경제는 십중팔구(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공황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공황 자체는 재현되지 않겠지만 (1930년대 이후로 잊고 있던) 불황 경제학이 놀라운 컴백을 했다." 이 책에서는 세계경제상황을 짚어준 이후, 불황 경제학에 대해 말하며, 비상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을 이야기해준다. 물론 개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이 책의 흐름대로 전체의 큰 틀에서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큰 그림을 보며, 어떤 방식으로 가면 좋을지 방향을 짐작해본다.
'경제학'이라는 것을 이렇게 대중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다. 경제에 문외한이라고 생각되거나, 경제를 낯설고 어렵게만 느끼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렵게만 생각하지말고 이렇게 생각해보자. 의외로 간단하다'고 일러준다. 눈에 쏙쏙 들어온다. 편안하게 읽으며 불황의 경제학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