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 36 : 회화 -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백인산 지음 / 컬처그라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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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했던 때에 관람하러 간 적이 한 번 있다.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에 가보았다. 진경시대 그림을 보기 위해서 그날 하루 즐기기로 했다. 점심 시간에 줄 서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 밥 먹으러 간 사이라 일찍 들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여기부터 전시장까지 2시간 걸립니다'라는 표지를 보고 '설마 그렇게까지 걸릴까?' 생각했는데, 그 이상을 기다리게 되었다.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데 몇 시간을 기다리며 기나긴 길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리는 상황, 지루한 시간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왜 간송미술관의 전시회에 오는 것일까? 어쩌면 봄과 가을에 보름동안 잠깐 문을 열기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것이고, 전시장 내의 인원을 제한하면서 기다리게 하기 때문에 악으로 깡으로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정작 전시장에 들어가니 에너지가 고갈되고 말았다. 막상 간절히 기다리던 그림 앞에 서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기다렸나 허무해지기까지 했다. 전시장 안에도 역시 인원을 제한하긴 하지만 사람들에 치이고, 작품 하나 하나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치이고 밀려가다보니 그저 '그림이구나!' 생각할 밖에.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감상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은 산산히 부서졌다. 하긴 나도 밖에서 2시간 이상 기다렸으니, 지금껏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얼른 보고 나가야겠지? 결국 전시장에서 나와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나는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이 책 『간송미술 36』은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읽어보게 되었다. 가장 앞에 나오는 '편집자와의 대담'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2008년도 가을 간송미술관에 관람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온 적이 있었는데, 전례가 없던 엄청난 인파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과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혜원 신윤복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시에는 겸재, 추사, 단원 등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서화가들의 작품이 다 나와 있었는데, 오로지 혜원, 그것도 <미인도> 하나만 찾는 대중 모습에 화가 나셨다고.

 

사실 나도 그런 대중 중의 하나이기에 대중의 심리 또한 이해가 된다. 아는 것은 별로 없고, 어쩌다 이슈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어 휩쓸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드라마가 나왔을 때 남장여자라는 설정에 처음에는 기가막혔지만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되었다. 이렇게 대중 문화는 그 영향력이 커서 왜곡되면 위험한 것이겠구나, 생각했기에 이 책이 반갑다. '대중과 더불어 즐기고 공감을 받는 것'을 생각하고, 기왕이면 왜곡되지 않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쉽고 올바른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의 말에, 지금이라도 관련 지식인으로서 대중과의 소통을 꿈꾸고 이 책을 집필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대중을 위한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진 책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예술가들의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때로는 작가의 시선으로, 때로는 그 당시에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으로, 세세하게 작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책에 실린 그림의 화질이 뛰어나고, 관련 지식에 대한 설명이 술술 풀어져나가기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아는 것밖에 안 보인다는 말도 될 수가 있어요. 게다가 자기가 알아낸 것도 아니고 남이 알려 준 거잖아요. 그때는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금방 쉽게 잊어버립니다. 한계가 명백합니다. 산수화는 그저 멋진 경치를 보듯, 인물화는 사람을 대하듯, 화조화는 주변의 꽃을 보듯 그렇게 시작하면 됩니다. 어떤 꽃을 감상하는 데 심오하고 정확한 생물학적인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지는 않잖아요.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그림과 소통하다 보면, 그걸 누가 그렸는지, 왜 그렸는지, 어떤 시대였는지 등등 궁금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게 되고, 공부가 깊어지면서 아는 게 더 많이 보이고. 이런 게 더 선순환적인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이 책은 이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더 알고 싶다, 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8쪽)

그런 점에서 보면 내가 이 책을 읽은 시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전혀 관심없던 그림에 조금씩 눈길이 가고 관심이 생기고, 현대 미술관에도 가고 옛그림에도 눈이 뜨이면서 조금씩 호감을 갖고 있었다. 옛그림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었으나 기억에 희미해질 즈음, 이 책이 그림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붙여준다.

 

그림 하나 하나를 읽어나가는 시간이 유익하다. 간송미술관에 직접 갔을 때에는 그저 그림을 봤다는 기억만을 안고 왔는데, 지금은 방 안에서 찬찬히 시대를 아우르며 그 당시의 분위기와 이들의 마음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그렸는지, 그들이 담고자 하는 세계는 무엇이었는지, 그 그림에 담긴 속뜻은 무엇인지 하나 하나 알아가게 된다. 이 책으로 신사임당을 시작으로 이정, 이징, 조속, 김명국, 윤두서, 정선, 변상벽, 유덕장, 조영석, 심사정, 강세황,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김정희 등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에 대해서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는 인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사실《혜원전신첩》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일본의 저명한 미술사학자인 세키노 다다시가 『조선미술사』에서 <주유청강>과 <상춘야흥>을 소개하면서부터이다. 당시 《혜원전신첩》은 우리 땅을 빠져나가 도미타 기사쿠라는 일본인 수장가가 소장하고 있었다. 후일 간송 선생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되찾아오긴 했지만, 혜원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인이었던 셈이다. (258쪽)

일본인이 혜원의 그림을 가져갔지만, 후일 간송선생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되찾아왔기에 현대의 안목으로 우리가 직접 그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인정을 못받았던 그림이지만, 간송선생의 노고에 지금은 후손인 우리가 그 예술성을 다시 재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가 짚어줘야 그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일반 대중이기에, 지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림을 폭넓게 바라보는 안목을 제공받는 것이다. 예술의 세계에 초대받는 느낌이 들었다.『간송미술 36』을 통해 36폭의 회화 작품을 하나 하나 뜯어보며 과거 시대상을 가늠해본다. 깊이 있는 감상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이 책이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서 편안하게 옛그림을 바라보며 옛 그림 36폭에 얽힌 속깊은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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