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서재가 궁금하다. 서재를 어떤 책들로 어떻게 꾸밀지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어찌보면 그 사람에 대해 잘 볼 수 있는 것이 서재다. 그러기에 잘 모르는 사람이 나의 서재를 본다는 것은 내 속을 들여다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주저하게 된다. 내 서재를 남에게 보이는 것은 꺼리게 되지만, 다른 사람의 서재를 보는 것은 호기심 가득한 일이 된다. 어찌 되었든 그 사람에 대해 한 걸음 다가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시절 지식인들의 서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엿보고 싶었다. 특히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그 분들의 서재가 궁금했다. 2015년을 맞이하여 정말 아끼는 책을 모아 내 서재를 채우고 당당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싶은 생각을 하던 차였기에, 이렇게 조선 지식인의 서재에 관한 책이 나왔다니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머릿말부터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이 책의 저자 박철상의 서재 이름은 '수경실'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의미를 알기 힘들다. '수경'이라는 한자가 낯선데, '긴 두레박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출처와 함께 그 의미를 들으니 그 이름이 탐난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려면 두레박줄이 길어야 하듯이 옛사람의 학문을 탐구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려면 항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해야함을 경계한 말이다.' 역시나 서재 이름을 탐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고, 다른 선생님들께 서재 이름을 지어준 일화를 보니, 서재는 단순히 책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전체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재의 이름은 조선 문화를 탐색하는 하나의 실마리이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08년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2년 반 동안 『국회도서관보』'서재이야기' 코너에 매월 연재했던 것이다. '서재이야기'는 본래 조선시대 지식인의 서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실으려고 기획되었지만, 서재 자체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은 탓에 서재의 이름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형식으로 바꿨다. (10쪽_머리말 中)

 

이 책에 실린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는 다음과 같다.

정조의 홍재, 홍대용의 담헌, 박지원의 연암산방, 유금의 기하실, 이덕무의 팔분당, 유득공의 사서로, 박제가의 정유각, 조수삼의 이이엄, 남공철의 이아당, 정약용의 여유당, 김한태의 자이열재, 서형수의 필유당과 서유구의 자연경실, 심상규의 가성각, 신위의 소재, 이정리의 실사구시재, 김정희의 보담재와 완당, 초의의 일로향실, 황상의 일속산방, 조희룡의 백이연전전려, 이조묵의 보소재, 윤정현의 삼연재, 이상적의 해린서옥, 조면호의 자지자부지서옥, 전기소와 유재소의 이초당.

 

 

 

먼저 궁금했던 담헌 홍대용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 박물관 소장 그림인 <연행도 유리창>그림을 보며 그 시절의 분위기를 가늠해본다. '유리창은 조선 사신들이 서책과 서화를 사기 위해 꼭 들르던 명소였고, 이곳에서 청나라 문사들과 많은 교유가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곳에서의 일화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담헌이라는 호를 가진 홍대용의 서재 이름도 역시 담헌. 지금 우리 시대 지식인의 진정성이 바로 다음 세대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에서는 연암산방이라는 장소가 그의 문학의 산실이며, 일생을 지배한 마음의 고향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곳엔 연암의 해학과 유머가 가득했고, 이는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는 설명에 동의하게 된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힘들고 어려울수록 웃음이 필요할 것이다. 나의 서가가 다소 딱딱하고 경건하게 흘러가지만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 책에서는 잘 모르던 조선 지식인들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 중 황상의 일속산방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일속산방'은 '좁쌀만한 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어나갈수록 좁쌀 하나가 단순히 좁쌀 하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처가 말한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는다"는 의미와 걸맞는 세계를 보게 된다. 황상은 일찍부터 은거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다산에게 그 방법을 묻기도 했는데, 다산이 알려준 방법이 아주 자세하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다산이 생각한 은거는 단순히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나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247쪽)

 

소치 허련이 황상에게 그려준 일속산방의 모습

 

이 책을 읽고나니 역시 지식인의 삶에서 서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그의 인품과 그 모든 것이 드러나는 공간이고, 그들의 삶과 연관지어 이렇게 흥미로운 책 한 권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재라는 소재로 조선 지식인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의미 있다. 그들의 서재를 보고 나서 내 주변을 바라보게 된 다. '나중에 정리해야지.'라며 미루기만 하던 나의 서재에 눈이 간다. 서재의 이름은 뭐라고 할까, 어떤 책으로 채워나갈까, 고민이 많아지는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