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느끼던 밤을 기억하네 - 엄마 한국대표시인 49인의 테마시집
고은.강은교 외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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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대표시인 49인의 테마시집이다. 여러 시인이 쓴 '엄마'에 관한 시를 모은 책이다. 한국 대표시인의 테마시집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점찍어 놓았다. 그동안 같은 시인의 다른 글은 읽었어도 이렇게 한 테마로 묶인 여러 시인의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기에 궁금한 마음이 가득해졌다. 엄마에 관한 시를 모았으면서 이 책의 제목이 『흐느끼던 밤을 기억하네』인 점도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강하게 했다.

 

 

 
이 책에는 고은, 강은교를 비롯하여 도종환, 손택수, 정호승 등 시인 49인의 시 한 편과 시작 메모가 실려있다.

강은교/고영/고영민/고은/권대웅/김명리/김승희/김완하/김응교/김이듬/김종철/김종해/김주대/김태형/노혜경/도종환/류근/문인수/문정희/박주택/박지웅/배한봉/손택수/송수권/신현림/신혜정/오세영/유안진/윤관영/이건청/이근화/이승하/이재무/이진명/이진우/이창수/이흔복/장석남/전윤호/정병근/정일근/정진규/정한용/정해종/정호승/조동범/조현석/최돈선/함민복

 

내 마음에 쏙 들어온 시, 최돈선 시인의 〈치매엄마〉라는 시다. 지나치게 감성적이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삶 속에서 건져낼 수 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았다. 상황을 떠올리니 픽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치매엄마

                                   최돈선

 

도요새 한 마리 구워 먹고 싶다 얘야

저건 까마귀예요 엄마

검은 그림자 끌며 달로 가는 까마귀를

손가락 들어 도요새라 엄마는 부른다

 

호수는 위태롭게 수은처럼 맑다

갈대 한두어 줌 꺾어 하늘에 흔들며

도요새 한 마리 구워 먹고 싶다 얘야

저건 까마귀예요 엄마

까마귀인지 도요새인지 이젠 분명치 않은

그 새의 길을 엄마는 조용히 비질을 한다

밤하늘이 조금씩 기울어 별이 쏟아지면

호수는 제 몸 드러내어 빛나는 것이다

 

매일 밤 호숫가로 가 밤새를 기다리는 엄마

세상 기억을 몽땅 잃어

이젠 환히 한 장의 백지로 남아

대체 무얼 그려야 할까 얘야

엄마 도요새를 그려요 그걸 맛나게 구워 드세요

까마귀도 도요새, 콩새도 도요새, 구슬픈 호오새도

도요새 그 이름만 남거든

남몰래 그림자 되어 오래도록 가고 싶은 나의 엄마

 

 

최돈선 시인의 시작메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밤이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엄마. 밤이면 달보고 봉선화 참 곱게 피었네 우기는 나의 엄마. 강아지도 금붕어라 우기고 메뚜기 한 마리 날아가면 금붕어야 어디 가니? 손 흔드는 나의 엄마…….

 

이진우 시인의 시작 메모를 보며 작년 우리집을 배회하던 길고양이들 생각이 나서 깜짝 놀라게 되었다. 어쩜 이렇게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우리 동네 길고양이도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마당에 놀러왔다. 새끼들이 다 먹은 후에야 어미가 먹는 모습까지도 닮았다. 모든 걸 다 내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연 같은 모습. 자연의 모습에 배우게 된다. 같은 것을 바라보아도 시인의 감성으로는 다르게 표출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 안의 시심을 시인들이 대신하여 시로 표현해낸 것일테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상 속의 감성을 붙잡아 내어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시인의 역할인가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일상 속의 어머니 모습을 특별하게 재발견하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어머니를 다양한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책에서는 '엄마'라는 한 가지 테마로 여러 시인의 시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시를 음미하고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그림 또한 인상적이다. 읽다보면 사는 것이 뭐 그리 바쁘다고 이런 시간조차 미루고 있었는지 아쉬워진다. 이 책은 마음이 잔잔해지는 어두운 밤, 혼자만의 시간에 누구도 말 걸지 않는 시간에 볼 것을 권한다. 시는 그런 시간에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다른 테마로도 이렇게 다양한 시인들의 시를 엮어서 책으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한 생각으로 다른 표현을 해내는 시인들의 언어에 귀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먹먹하니 감동 속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이 첫 시도였다면 독자로서 꽤나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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