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산행 꽃詩
이굴기 글.사진 / 궁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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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왔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듯한 추위에 정신을 번쩍 차리며 산에 오르는 것은 꽃피는 봄이 오면 생각해보기로 한다. 사실 올 한 해 자꾸 미루기만 하다가 산에 한 번 오르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산에 오르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일단 오르고 보면 좋다는 경험이 있기에 가고 싶어지기는 한다. 산에 오르면 꽃을 보고, 자연 속에서 정화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볼 수 없는 풍경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 산에 올랐을 때에나 알 수 있는 후련함이다.

 

 

 
 

이 책은 '꽃산행 꽃시'라는 제목에서 일단 내 시선을 끌었다. 계절에 따라 꽃을 노래한 시를 한 권의 책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끌렸다. 식물조사를 위해 전국의 들과 산을 봄,여름,가을,겨울, 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다는 저자의 이력도 이 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였다. 많이 다니면서 꽃을 보고, 꽃을 노래한 시가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주옥같은 시가 한 권의 책에 모여있는 것, 자연 속의 꽃을 테마로 다양한 시를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 기대되는 책이었다.

 

 

매화나무를 보다가 저자는 벌 한마리를 유심히 보게 된다. 꿀벌은 꿀을 따고 있는 게 아니었고, 꽃에서 꿀을 따다가 꽃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풍장일 것이라며 머릿속으로 화장(花葬)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어쩌면 나도 보았을지 모를 풍경이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는 세세함이 나에게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을 더 느린 속도로 읽게 된다. 빨리 가면 놓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각각의 글에서 다양한 식물과 시를 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정현종 시인의 <한 숟가락 흙 속에>를 볼 수 있다.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 5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 마리 미생물이 밀어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

 

글을 보다가 언뜻 던져지는 시 한 수를 음미해보며 읽는 재미를 느꼈다. 내가 이토록 식물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었나 느끼게 된 독서의 시간이었다.

 

이 책에서 신선한 시도를 느꼈다. 보통 식물에 대한 책을 보면 그 식물의 학명과 특성, 그 식물에 얽힌 이야기 정도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주관적인 느낌과 함께 시 감상까지 할 수 있으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감성적이다. 나도 천천히 산행을 나서 꽃을 감상하고, 나무를 바라보고 싶어진다. 시 한 편을 보며 식물 하나 떠올리고, 마음에 자연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천천히, 보다 감성적으로 산행을 하고 싶어진다. 산에 가면 정상에 오르겠다고 부지런히 행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분명히 놓치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을 세세하게 감성적으로 마음 속에 담아가려면 정상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세밀하게 자연을 관찰하는 힘이 있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시는 너무 낯설지도 않고, 너무 익숙하지도 않아서 좋았다. 적당히 어우러져 시 읽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계절 별로 나뉘어서 분위기를 띄워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전체적으로 저자의 경험과 느낌 위주로 글을 실었고, 시는 약간의 조미료가 되어 감칠맛을 더해준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가까운 산으로 가서 내 감성도 충전시킬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발걸음을 떼고 싶은 들썩임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부디 앞으로의 꽃산행에서 이 식물들과 모두 만날 수 있기를!

머지 않아 지하에서 저 나무들과 만났을 때 쓴소리 듣지 않기를!

그 언젠가 저 뿌리들과 몸 섞을 때 서로 낯설어 데면데면하지 않기를!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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