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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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하는 사람마다 기억이 다르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때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나기도 한다. 오늘 본 것과 내일 본 것이 정반대의 감흥을 주기도 한다. 그런 점이 여행의 매력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메시지를 준다면 별 매력이 없을 터. 이 책에서는 여행의 속도를 이야기한다. "각기 다른 속도로 여행하다보면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다. 여행지에 가면서 비행기를 타고 갈 때와 버스를 타고 갈 때의 느낌이 다르다. 여행지를 다니면서도 걸어다닐 때와 차를 타고 다닐 때의 느낌이 다르다.

 

저자는 기차  여행을 가장 인간적인 여행 방식 중 하나라고 꼽으며 각지에서 찍은 기차 사진을 소개해준다. 객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편안히 앉아 창문 밖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기차여행을 좋아하기에 이런 사유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고속열차는 청춘의 뜨거운 피다. 짧은 시간 안에 꿈에 닿기 위해 전력으로 내달리는 질주본능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청춘을 붙잡고 싶은 중년의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얼마나 많은 꿈들이 실현되지 못하고 사라져 갔는지 깨닫는다. 돌이켜 보면 가보고 싶었던 곳들 중 반도 가보지 못하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다. 하늘이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더 허락할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중년의 여행은 청춘의 그것처럼 느긋할 수 없다. 일반열차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참아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유한한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일생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34쪽)

 

이 책은 사유하는 건축학자 리칭즈가 들려주는 여행과 인생 이야기다. 먼저 이 책의 구성이 인상적이다. 이 책 제목인 '여행의 속도'에 맞춰 총 7파트로 글을 나누고 있다. 250-350km/hr의 고속열차부터 0km/hr의 고요한 묘지 여행까지. 빠른 속도로부터 점점 느리게 여행지를 안내해준다. 이 책의 순서에 따라 읽어나가며 직접 여행에 참여하는 듯 긴박한 속도감을 느낀다. 이 책에 빠져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꼭 가봐야할 명승지나 흔한 여행 책자처럼 맛집 혹은 숙소 등을 다룬 책이 전혀 아니어서 새로운 느낌이 든다. 신선한 기분이 들어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게 된다.

 

처음에는 여행의 속도에 관한 사색에 대한 글 위주로만 담겨있을거라 짐작하고 읽게 되었는데, 읽다보니 건축학자답게 각 지역의 독특한 건축물을 담고 그에 대한 생각을 풀어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마 내가 직접 그곳에 여행하더라도 그런 건축물에 시선이 가서 사진도 찍고 마음에 담아오는 일은 극히 드물지도 모른다. 건축학자의 섬세한 감성이 더해져 그런 결과가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지루하게 건축물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색할 수 있게 다양한 코드를 심어놓았다. 여행지를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그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이 책을 누리는 최대의 즐거움이었다. 이 세상은 정말 가볼 곳이 많고, 느낄 점도 충분히 많다. 다만 내게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나가게 된 책이었다. 줄어드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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