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의 시간을 담다 -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구본창 글.사진 / 안그라픽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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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덜어냄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에는 무엇을 찍을까, 무엇을 더 담을까 고민하지만, 어떤 것을 뺄지 생각하는 것이 더 힘든 작업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에서 느껴지는 간결함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라는 표현이 내 마음에 잔잔한 흔적을 남긴다. 이 책을 통해 사진가 구본창의 30년 사진 인생을 엿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구본창. 사진 매체의 실험적 가능성을 개척해 온 국내의 대표 사진가라고 한다.

이 책은 내가 사진가로서 세상과 소통하며 이야기를 발견해 간 과정을 담은 것이다. 한 사진가가 모아 온 시간과 인연의 기억을 기록한 사진 이야기이다. (프롤로그_15쪽)

 

이 책은 읽기 전부터 마음에 끌리는 책이었다.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고, 느낌이 좋은 책이다. 이런 경우에는 포장만 화려하고 내용이 빈약하면 기대에 비해 실망이 크게 되는데, 이 책은 기대 이상의 책이었고, 천천히 음미하며 사진과 글을 마음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는 담백하지만, 책장을 열어보니 내용은 알차게 꽉꽉 채워진 느낌이었다. 사진만 담겨있는 것보다는 에세이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 책의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서 작가의 지나온 인생과 사진에 영향을 준 계기, 소소한 물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등 다양한 방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진작가 구본창만의 시각으로 담아낸 사진을 보는 경이로움이 으뜸이다. 그의 사진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듯한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여러 사진가가 촬영한 사진들 가운데서도 당신의 작품은 쉽게 구별됩니다. 항상 일관된 느낌이나 인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얘긴데, 당신의 사진은 대상이 사람이건 아니건 대체로 아스라함이나 애잔함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 면에선 당신의 예술 작품과 상업적인 일로 하는 사진 간에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2006년 《포토넷》인터뷰(인터뷰어 신수진) 중에서

 

카메라는 그저 아무렇게나 순간을 담아내는 도구로만 사용하던 나에게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망이 새록새록 샘솟도록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 조금이라도 사진에 대해 생각해보고, 내가 담으려는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 새로이 창작해야하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살았던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닫고 생각하게 된다.

사진가라면 찍으려는 대상물에서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의미를 찾아낸다. 내가 찍은 사진에는 나의 감성과 자아가 반영되어 있다. 바다를 찍으려 한다면 그 바다는 나에게 특별한 것이고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그 순간 촬영자와 대상물 간에 긴장과 교감이 발생하고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나만의 대상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새로운 영상 언어를 찾아내는 것은 사진가가 끝까지 지고 가야 할 숙명이다. (152쪽)

 

이 책을 통해 사진 작품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사진작가 구본창이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지, 그렇게 찍은 사진은 어떤 작품인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말하는 '공명'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의 작품은 진정 에너지처럼 필름 속에 스며든 결정체다.

'나는 내가 찍은 사물과의 교감이 일종의 에너지처럼 필름 속에 스며든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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