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의 만찬 - 한식 문화로 본 우리의 아름다운 음식 이야기
이영애.홍주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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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이영애의 만찬>은 SBS 스페셜로 지난 2월 2일과 9일, 두 차례 방송되었다. 다큐멘터리 1부에서는 '소통'을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음식 이야기를 다뤘고, 2부에서는 '교류'에 초점을 맞춰 2000년을 이어온 한국인의 육식문화를 이야기했다. 120분이라는 방송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방송에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을 덧붙여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당 방송을 접하지 못해서 '동명이인인가?' 생각했는데, 장금이 이영애라니!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당장 이 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금>을 인상적으로 보았기에 호기심이 가득해졌다. 반갑고도 궁금한 마음에 이 책 『이영애의 만찬』을 읽어보게 되었다.

 

 <대장금>을 하면서 궁중음식도 접해봤고 비빔밥 홍보대사로 재능기부도 해왔지만 '정작 우리 음식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별로 없었구나',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음식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이영애의 만찬> 다큐멘터리 제안을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조심스러우면서 신중하고 차분한 느낌이 든다. 탁월한 선택이다.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음식은 곧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문화다." 이런 마음을 갖고 밥상을 대하니 밥상 위에 놓인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한 그릇의 밥과 국은 오랜 세월 우리의 민족과 같은 길을 걸어와 오늘날 우리의 밥상에 올랐을 것이다. 그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변모하기도 했을 테다. 귀족의 식탁에 오르던 상화가 분식집 찐빵으로 탈바꿈하기까지, 광해군이 즐기던 잡채가 당면잡채로 변모하기까지, 단아한 자태의 빈자법이 펑퍼짐한 빈대떡으로 변신하기까지. 그 음식이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그 속에 담긴 사연들도 많을 것이다. (95쪽)

 

 조선시대의 탐식가들 이야기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중 <대장금>을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만한전석'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띈다. 방송이 나간 후 예리한 시청자들이 만한전석은 청나라 때 생겨난 음식인데 명나라 사신에게 내놓은 것은 옥에 티라는 지적을 했다는 점. '청나라 초기까지만 해도 만주족의 음식으로 차린 연회를 만석이라 부르고, 한족의 음식으로 차린 연회를 한석이라고 구분지어 불렀다. 그런데 청나라 건륭제가 자신의 회갑잔치에 65세가 넘은 노인 2천 8백여 명을 초청하여 성대한 잔치를 벌였고, 이 연회에 만주족과 한족의 궁중요리를 총 망라한 음식을 선보였다. 이것이 곧 오늘날의 만한전석이 된 것이다.'(21쪽)

제대로 된 만한전석을 맛보려면 한 상에 우리 돈으로 무려 3백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놀라웠고, 정식 만한전석은 하루에 2차례씩 사흘간 계속되고, 무려 180가지가 넘는 요리가 오른다고 하니 흥미진진하다.

 

 수라상은 12첩이 아니라 7첩이었다?에 보면 왕가의 일상식을 유일하게 기록해둔 문헌이 <원행을묘정리의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장금이와 나인들이 매 끼니 고심해서 올렸던 그 많은 음식들이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궁중음식이라고 알려진 '구절판'은 사실 궁중음식이 아니라는 것도 새로운 사실! 1930년대 구한말 궁궐에서 음식조리를 담당하던 숙주들이 궁궐을 떠나 차리게 된 기생집에서 일부 기생집 요리가 궁중음식으로 둔갑한 것이다. 12첩 수라상 역시 어지러웠던 구한말에 탄생된 왕의 밥상이었다고 한다.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조선은 수라상도 소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 고기음식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 민족 최초의 고기 양념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보니, 순탄치 않은 제작 과정이 눈에 보이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수많은 노력이 담긴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고기라 불리는 음식이 등장한 것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자료를 뒷받침해 이야기해준다.

'불고기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문헌은 1922년 4월 1일 <개벽> 22호에 실린 현진건의 소설 <타락자>다. 그 이후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문헌과 자료, 심지어 대중가요에서도 불고기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146쪽)

또한 불고기의 본래 명칭을 알기 위해서 불고기의 기원을 찾아간다. 여러 설 중 조선시대 설야멱에서 진화된 음식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고, 전통음식 연구가 윤숙자 선생님이 재연한 설야멱 조리법도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오늘날과는 다른 조리법이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고 차근차근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문헌적인 뒷받침도 해주니, 이 책을 읽으며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다. 다큐멘터리에 이렇게도 다양한 정보가 다 담길 수는 없었을터. 책으로 출간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 속에는 한민족이 걸어온 길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 땅에서 오랜 세월 갖은 풍상을 견디며 살아온 옛 사람들의 삶과 지혜가 알알이 박혀있다. 그렇기에,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한국인의 삶을 대변해주는 산물이자, 우리 민족의 오랜 삶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137쪽)

 

이 책은 음식의 역사와 그에 담긴 정서를 읽을 수 있어서 기대 이상인 책이었다. 작가 홍주영은 이야기한다. '그동안 한식에 관한 수많은 다큐들이 제작됐지만, 음식에 담긴 한국인의 철학을 다룬 작품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음식에 담긴 한국인의 생각, 그리고 음식을 통해 보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의도가 잘 반영된 책이고, 볼거리와 느낄 점이 가득한 책이었다. 잘못 알고 있던 음식문화를 이 책을 통해 정정해보는 시간이 되었고, 얼핏 알던 지식을 보강하는 의미로도 알찬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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