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에 핀 꽃들 - 우리가 사랑한 문학 문학이 사랑한 꽃이야기
김민철 지음 / 샘터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에는 '노란 동백꽃'이 나온다. 동백꽃은 일반적으로 붉은색인데 김유정은 왜 노란 동백꽃이라고 했을까.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는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해서 나온다. 왜 하필 여뀌일까.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일본어판 표지는 왜 장미 덩굴로 뒤덮여 있을까.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소화와 외서댁은 무슨 꽃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박범신의 장편 <은교>에 나오는 쇠별꽃은 어떤 꽃일까. (프롤로그 中_4쪽)

 

 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나보다. 이렇게 짚어주는 궁금증을 보고 나서야 의문이 생긴다. 정말 왜일까? 어떤 꽃일까? 궁금한 마음이 샘솟는다. 저자는 2003년 봄 무렵부터 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닐곱 살 먹은 큰딸이 아빠에게 계속 무슨 꽃이냐고 질문을 해대니, 얼버무리기도 여러 번. 결국에는 꽃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하게 된다. 10년 동안의 야생화 공부와 젊은 시절부터의 소설 읽기를 결합한 결과물로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은 기획 자체가 신선하다. 그동안 소설을 읽어도 그 안에 나오는 꽃에 대한 기억은 강렬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스레 꽃을 보아도 책에 나온 부분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두 가지를 결합해서 보게 되었다. 그동안 소설을 읽으며 흘려넘겼던 꽃들에 이제야 관심이 생긴다. 자세히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미 읽은 소설이지만 새롭게 다가오고, 또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이 책 『문학 속에 핀 꽃들』의 장점이었다.

 

 가장 먼저 나오는 동백꽃, 김유정의 단편 소설에 나오는 노란 동백꽃은 강원도에서 '생강나무'를 부르는 이름이다. <소양강 처녀> 2절에 나오는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도 마찬가지로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이다. 아주까리 동백꽃도 마찬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1990년대까지도 김유정의 소설집 표지를 붉은색 동백꽃으로 그린 출판사가 있었다는 점. 김유정의 동백꽃이 붉은 동백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노란 동백꽃이 생강나무를 일컫는다는 것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흐드러진 능소화가 무수한 분홍빛 혀가 되어 그의 몸 도처에 사정없이 끈끈한 도장을 찍으면......"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에 나온다는 능소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어사화라고 불리게 된 이야기, 능소화에 대한 속설 등 다양한 방면으로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책을 보며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능소화를 집 안에서 키우면 좋지 않다'라는 말은 능소화 꽃가루에 독성이 있어서 눈에 들어가면 좋지 않다는 속설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능소화 꽃가루 때문에 시력을 잃을 위험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수백 년 동안 별문제 없이 집 안팎에서 자라고 꽃을 피운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217쪽)

 

 정유정의 <7년의 밤>에 가시박이 나온다. 흥미롭게 빠져들어 읽었던 소설인데도 '가시박'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이 책을 보며 다시 한 번 그 소설을 떠올린다. "가시박덩굴이 그 넓은 숲을 다 덮어버렸으니까. 사람이 들어가려면 낫을 들고 쳐내야 할 정도요." 음침하고 스산한 소설에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에 쓰인 장치가 세령호의 안개와 '가시박'이라는 식물이다. 최근 들어온 외래종으로 생태계 교란식물인데, 녹색 저승사자,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자라면서 주변 식물들을 덮어버려 말려 죽인다.

 

 문학 속에 상징적인 꽃들이 등장할 때, 매력적인 문체가 된다는 것은 <태백산맥>에 대한 글을 보며 재인식하게 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1986년 첫 단행본이 나온 이후 판매 부수 1,000만 부를 돌파한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작. 태백산맥의 여인들을 꽃과 연결해보는 시간이 흥미롭다. 대하소설답게 등장인물도 많지만 꽃이 많이 등장하고, 태백산맥에서 그 표현을 재미있게 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꽃에 대한 관심여부를 떠나 새로운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어떤 관점에서 작품을 보느냐는 개인의 관심분야에 따라 많이 달라지겠지만, 꽃으로 바라본 소설에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 책을 보며 꽃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많았다. 관심이 생긴다. 앞으로 보게 되는 문학작품 속에서 '꽃'에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게 될 것이다.

 

꽃은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문학은 꽃의 '빛깔과 향기'를 더욱 진하게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꽃과 문학만큼 잘 어울리는 환상적인 마리아주도 없는 것 같다. 작가들이 꽃에 더 관심을 가지면 그만큼 더 우리 문학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32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