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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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인 조르바>는 유명한 책이다. 제목만 들어도 이 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예전에 읽었다는 것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의미이다. 지금 이 책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책을 읽는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어보기 시작했으나,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찬찬히 읽어보게 된다. 지금의 나는 이 책을 한 줄도 빠짐없이 꼼꼼히 정독하며 조르바의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나는 이 책을 펼쳐들었고, 이 책은 기가 막힌 표현으로 나를 작품 속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책을 보면 조르바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성품 표현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작품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투박한 말로 할 말 다하고, 툭툭 던지는 말이 다 맞는 말이니, 어찌 재미있지 않겠는가. 조르바의 여성 편력도 그렇다. 속되지 않고 오히려 경건하고 성스럽게 느껴진다. 속된 표현도 성스럽게 할 수 있는 묘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나쁜 짓을 해도 조르바가 하면 나쁘게 생각되지 않는다. 조르바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이 생명력을 갖고 태어나는 느낌이다. 나도 이 책의 두목처럼 어느덧 조르바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그러니 조르바의 부재 또한 못견디게 허전한 일이었을테다.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지겨운 일상사가 우리가 하느님의 손길을 떠나던 최초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다. (78쪽)

 

 조르바는 단순명료한 사람이다. 조르바가 말하면 욕을 해도 욕같지 않고 재미있는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조르바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테다. 아마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책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르바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한다. '두목, 나 지금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외다. 나는 하느님이 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좀 더 크고, 힘이 세고, 나보다는 돌아도 좀 더 돌았겠지요만(155쪽)' 약간 위험한 듯한 발언도 조르바가 하면 괜찮게 느껴지니, 묘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신랄하게 뱉어내는 후련함, 시원함,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조르바를 통해 인간의 절망적이고 슬프고 힘들었던 부분을 실컨 뱉어내고, 두목은 그러한 감정을 흡수해서 어루만져준다. 그들의 대화를 보다보면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충분히 공감하며 빠져들게 된다. 조르바는 진정, 행동파 휴머니스트이다.

 

 작품이 다 끝나고 이 책을 번역한 이윤기의 글 <20세기의 오디세우스>를 읽는 것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깊이를 더해준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445쪽)

 

카잔차키스가, 자기 삶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마지막으로 꼽는 인물,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야생마 같은 주인공 조르바는 실제 인물이다. (458쪽)

소설을 다 읽고 가볍게 읽다가 실제로 그런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에 부러움이 가득해진다. 하지만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였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영국의 문예 비평가 콜린 윌슨의 말은 두고두고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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