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가루 백년 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나에게 일본 소설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은근한 불을 서서히 지펴서 마음을 데우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 즉 잔잔한 감동이 있는 소설과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되는 소설, 그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 책은 전자에 해당된다. 이 책을 읽으니 <카모메 식당>이나 <무지개 곶의 찻집>이 떠오른다. 이 책의 저자가 <무지개 곶의 찻집>의 저자인 모리사와 아키오라는 점에서 더욱 끌렸다. 내가 즐기는 소설은 '이건 소설이다. 현실에 없는 허구다.'라고 느껴지는 소설보다는 '음...이 정도의 이야기는 충분히 있을만 해.'라고 느껴지는 소설인데, 이 책 역시 나에게 소설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이 소설에서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잔잔한 감동을 주며 펼쳐낸다.

 

 이 책도 역시 은은하고 잔잔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설이다. 처음부터 강렬한 시작을 알리거나, 대단한 사건이 빵빵 터지는 그런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은근하게 불을 지펴지며 서서히 가동되고, 서서히 불을 달구다가, 어느덧 소설 속 이야깃속으로 풍덩 빠져드는 느낌을 받게 된다.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이 말이 마음에 찡하게 남는다. 요즘 세상에 오래도록 가업을 이어가거나 옛 것을 소중히 여기며 보존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그런 것이 더욱 애잔하게 마음에 남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오모리 식당의 메밀국수와 벚꽃 풍경이 머릿 속을 맴돈다. 어떻게든 이어지는 이들의 인연을 따라가며, 쓰가루  메밀국수를 맛깔스럽게 떠올려본다. 쓰가루 메밀국수는 도쿄의 그것과 만드는 법이 완전히 다르다며 조목조목 작업 과정을 이야기해준다. 눈앞에 메밀국수를 수작업으로 제조하는 과정을 보는 듯 상상하는 시간이 맛깔스럽다. 똑같고 개성 없는 정크푸드가 퍼져있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를 이어가는 쓰가루 오모리 식당의 소박한 자존심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아가는 자연 속 이야기에 눈길을 주는 것도 또다른 재미였다. 나나미의 자연에 관한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나나미가 이야기하는 '은행나무의 수그루와 암그루를 구별하는 방법'은 흥미로웠다. 또한 요짱이 네잎클로버를 뜯어 나나미에게 선물하려 했는데 싫다고 했던 일화도 마음에 와닿았다. 어찌 그런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안 돼, 안 돼, 뜯으면 안 돼. 불쌍하잖아. 살아 있는 생물인데."

"그래도."

"우리가 뜯어버리면 모처럼의 행운이 혼자만의 것이 돼버려. 여기에 그냥 두면 다른 사람에게도 행운이 갈 텐데 말이야." (197쪽)

 

 이 책을 읽고 부러움 가득한 느낌으로 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요짱으로 불리는 요이치는 이 책의 주인공으로 오모리 식당의 4대손이다. 지금은 도쿄에서 피에로 복장으로 풍선 아트 쇼를 하고 있는데, 그가 만나는 여인은 사진작가를 꿈꾸는 나나미. 얼핏 생각하면 그들은 서로 갈 길이 달라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데, 이들의 인연은 어떻게 이어질지, 살짝 어긋나기도 하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들의 운명에 왠지 마음이 찡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카모메 식당>처럼 영화화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저자 후기를 보며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에 담긴 장면이 기대된다. 벚꽃 흩날리는 날, 이들이 몰래 철망을 넘어가서 보트를 타고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려고 애쓰는 장면이 상상된다. 쓰가루 메밀국수를 만드는 장면과 함께 멋지게 담아냈으리라 기대된다.

 

 마음과 마음의 이어짐을 그린 <쓰가루 백년식당>은 많은 독자 여러분과 이어져서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그 외에도 다양한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모리사와 아키오의 저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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