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황석영 생애 최초 전작 장편소설이라는 <낯익은 세상>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한 신문 기사를 보고 난 후 호기심에서였다.
짧지만 가볍지 않은 작품이라며, 간단히 소개를 했는데, 흥미로웠다.
황석영의 신작 <낯익은 세상>은 자본주의 욕망의 집결소, 쓰레기장을 삶터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곳을 문명의 끝으로 보지만, 문명의 시작인 슬픈 열대가 그러한 것처럼 그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작가가 이곳을 ’꽃섬’이라 부르는 이유다.
"우리가 살면서 소비하고, 버리고, 잊어버린 얘기를 좀 쓰고 싶다 했더니 누군가가 ’쓰레기장 얘기가 어떻습니까?’ 그래요. 우리가 근대화 기간 살아왔던 욕망의 잔재들이 묻어 있는 곳이니까요. 그 말 듣고 ’카프카가 난지도를 쓴다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주간 한국<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
“카프카가 난지도를 쓴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는 쓰레기 매립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낯선, 그러나 가장 낯익은 세상,
쓰레기장 ’꽃섬’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14세 소년 딱부리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쓰레기장 세상은 ‘버려진 곳’이다.
물건도 사람들도 모두 버려진 곳, 못 쓰는 물건들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소외되고 잊혀진 사람들과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14세 소년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책을 읽는 독자로서도 어느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었다.
예전에 강남몽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소설의 제목을 ‘강남몽’이라고 정했다.“
이번에도 저자의 말에서 꿈과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을 느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아주 쓸쓸한 장면들이었다.
어찌 가족뿐이랴,
불교에서는 백년 사이에 온 세상이 바뀌어 변하고 나타나는 것을 거대한 런던아이(London Eye)처럼
‘수레바퀴의 한 회전’에 비유한다.
백년 뒤에는 현재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거기 살아가는 이들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새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만 모두 사라지고
앙코르와트의 흔적과도 같이 무성한 밀림과 새와 나비들만 남아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가의 말)
철저히 낯선 곳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우리네 삶은 그다지 크게 다를 바 없고, 우리에게 사용되고 버려진 것들이 모여있는 꽃섬은 낯익은 세상이다.
하지만 그 낯익은 세상도 한 세대가 지나가면 전혀 다른 사람들로 채워지고,
다시 우리에게는 낯선 세상이 된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세상이 되고......
우리네 인생은 한바탕 꿈같다.
한바탕 꿈이 끝나고 나면 세상은 낯설다.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물건들은 항상 변화한다.
환상일수도 있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이고, 언젠가는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어린 소년인 딱부리의 한 마디가 마음 깊이 파고든다.
“옛날 동네...... 그게 정말 있었을까? 우리가 꿈꾼 거 아냐?” (199p)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왠지 모든 게 낯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