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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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라.”
세상의 모든 진리가 책 속에 있다고 책 읽기를 강조하는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그 이야기부터 문제제기를 하며 시작한다.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 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책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 여지는 전혀 없으며 그런 까닭에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과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책 속에서)
그리고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까지!
어쩌면 우리는 책을 읽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읽지 않아도 될 책까지 읽으며 지식을 갈구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 진리를 찾기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문장이 있다.
책(冊)의 어원이 대나무 죽간에 글자를 써서 묶은 것임을 생각해볼 때,
그것 다섯 수레는 분명 지금의 다섯 수레와는 부피상으로 비교도 안될 분량이라며,
우리는 책을 참 많이 읽는 것이라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옛날과 비교해볼 때, 지금이 더 지혜로운가에 대해 논의해보자면 특별히 그렇지도 않다는 것에 우리의 한계가 있다. 

생활이 편리해지고 저장되는 도구가 많아지면서 사실 우리의 기억력은 영향을 받고 있다.
사실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들은 서서히 기억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니까.
나만해도 예전에는 자연스레 외워져서 줄줄이 꿰던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이제는 외우게 되지 않는다.
그저 검색해서 통화 버튼만 누르면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에 나오는 문자 이야기가 떠오른다.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문자에 의존하게 된 인간은 스스로 생각해 내는 힘을 잃었다고 소크라테스에게 말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장대한 서사시를 기억하는 시인에게 문자 지식을 전한 순간 모든 기억을 잃고 말았다는 예가 세계 각지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책의 세계를 통상적인 시간 순에 따라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흔히 고전이라고 하는 책을 제대로 손에 잡아보지 않았던 나에게는 이 책이 다른 방법으로 손쉽게 고전을 접하는 방법이 되었다.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는 즐거움까지!
하지만 여전히 책의 세계는 난해하다.
저자는 고전이 보여주는 자아들을 자기 몸에 넣어보고, 다시 빠져나와보고, 다시 또 다른 것을 넣어보고, 또다시 빠져나와본 다음에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저 책의 세계는 누구에게나 난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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