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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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멋진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펼친다.
사랑에 행복해하는 모습이나 사랑에 상처를 입는 모습이나 예뻐보인다.
아무 옷이나 걸쳐 입어도 예쁘게 느껴지고, (사실은 그게 아무 옷은 아니라고 하더라.)
게다가 우는 모습까지도......
현실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가끔 못생긴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이후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저 안경을 벗거나, 묶었던 머리를 푸는 것 만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워진다.
비현실적이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읽을수록 ’현실’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었다.
못생겼다는 자신의 열등감때문에 사랑을 밀어내는 여자의 모습이 마음 아프면서도 왠지 더 현실적이었다.
그녀가 왜 갑자기 떠나게 되었는지,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것은 마냥 어둡기만 한 현실을 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자주가는 켄터키 치킨 집에서 단골 손님이 왔다고 닭다리 일곱 개를 내주었을 때,
"이거 지네예요?"하고 묻는 요한의 이야기에 웃음이 터져나왔고,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의 이야기에서 그것이 엔딩이 아니라 더 긴 일상으로 그럭저럭 엔딩까지의 이야기를 펼칠 때
"맞아! 맞아!" 공감하게 되었다.
고양이의 이름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그냥 고양이’였다가 고양이 이름에 ’쥐’가 들어간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는 그녀의 생각을 더해 ’쌩텍쥐페리’라는 이름을 주고, 그다음 요한의 의견도 포함해 ’그냥 생텍쥐페리’라는 이름으로 마무리 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그냥’에서 사랑이라는 환상으로, 시시하지 않게 상상해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속의 이 문장이 특히 마음에 닿았던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그러면서 마지막에 요한의 이야기와 그녀의 이야기를 읽을 때, 모든 매듭을 풀고 생각을 마무리짓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이 소설은 그냥 그런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록에 담긴 음악을 들으며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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