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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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제목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국내 최초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의 신작 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생겼다.

한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로서 강력한 시점이 담겨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역시나 기대 이상이었다.

문장의 칼날이 예리하게 가슴을 쿡쿡 찌르고 도려내는 듯했다.

안타깝고 가슴이 찌릿찌릿, 그 시대의 아픔이 전해져왔다.

그래서 한눈에 들어와서 한달음에 다 읽어버린 책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책으로 나에게 강렬한 폭풍처럼 다가온 소설이다.

폭풍이 지나간 듯 커다란 여운을 남겨준 소설이다.



김홍신

장편소설 『인간시장』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 소설가가 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는,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8년 연속 의정평가 1등 국회의원(제15, 16대)'으로 소신과 열정의 삶을 펼쳤다. 이후 건국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집필활동에 복귀했다. 현재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평화재단 고문, 동서문학상 운영위원장, 의료복지봉사단체 동의난달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성장했으며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및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인간시장』 『칼날 위의 전쟁』 『바람 바람 바람』 『내륙풍』 『난장판』 『풍객』 『대곡』 등으로 대한민국에 소설 폭풍을 일으키며 한국소설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을 수상했고,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는 대하역사소설 『김홍신의 대발해 (전10권)』를 발표해 통일문화대상과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했다. 2015년 장편소설 『단 한 번의 사랑』으로 한국문학상을 수상했고, 2017년 장편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발표하며 상처를 끌어안는 사랑의 향기를 전했다.

그 외에도 『삼국지』, 『수호지』 등의 중국고전 평역서와 『자박자박 걸어요』 『하루사용 설명서』 『인생견문록』 『인생사용설명서』 『인생사용설명서 두 번째 이야기』 『그게 뭐 어쨌다고?』 『인생을 맛있게 사는 지혜』 등의 에세이를 포함해 130여 권의 책을 출간하면서 신념 있는 삶을 살아가는 기쁨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책날개 중에서 저자 소개 전문)



이 소설에서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인 주인공 한서진이 처한 상황은 우리 역사 속 비극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친 삶과 시대의 아픔 속에 써 내려간 한 사람의 일대기이자 스러져간 모든 이름들의 연대기입니다. (5쪽,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된다. 작가의 말과 프롤로그 '한 남자의 마지막'을 시작으로, 1장 '운명적인 인연과', 2장 '그해 여름', 3장 '불안한 나날', 4장 '영원히 남을 붉은 낙인', 5장 '남한산성이라는 지옥에서', 6장 이토록 처절하게 완벽한', 7장 '가장 아름다운 복수'로 이어지며, 에필로그 '하늘의 뜻, 함께할 운명'이 담겨 있다.

해설 '운명의 덫, 또는 이념의 압제와 사랑의 완성_김종회 (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로 마무리된다.



이 소설은 프롤로그에서 한 남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가 남긴 유언은, 반드시 군복을 입히고 땅에 묻되 그가 일군 텃밭 위쪽 비탈진 곳에 북향으로 묻어달라는 것과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봉분 없는 무덤에 꽂아달라는 것이다.

왜 그런 유언을 했을까?

한 사람의 마지막이 이토록 안타까운 느낌으로 다가오니 시작부터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거기에 얽힌 사연은 무엇일까?

바로 그 사연이 이 소설에서 대장정으로 펼쳐진다.

한 사람의 일생이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이처럼 깨지고 박살 나는지 그 과정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어쨌거나 나는 대한민국에서 공인된 빨갱이가 되어버렸다. 변호인의 말처럼, 현행법상 용공 분자는 고등군법회의나 대법원에서도 감형받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백인종도 황인종도 흑인종도 아닌 적인종(赤人種)이 된 것이다. 나는 내 죽음을 어두운 허공 속에서 보았다. 불행도 보았고, 내 존재의 가치 없음도 깨달았다. 세상이 나를 지구 밖으로 내던진 것도, 내 핏속에 붉은색의 악마가 채워진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 고뇌가 없으면 이미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고뇌와 고통이 없으면 죽은 목숨일지 모른다. 나는 남을 죽이지도 않았고 강도질을 한 것도 아니다. 남을 못살게 굴지도 해코지하지도 않았다. 남을 비난하거나 질시하지도 않았다. 때리거나 욕을 내뱉은 것도 아니다. 총 맞아 죽은 인간을 애도했을 뿐이다. (186쪽)

빨갱이로 살게 된 주인공의 여정이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너무 안타깝고 기가 막힌 일이다.

그저 애도했을 뿐인데, 이름도 모르는 북한군 장교의 시체 앞에서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주고 애도했을 뿐인데, 그걸로 인해 빨갱이로 낙인찍혀서 적인종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스스로는 현행법으로 따지면 죄인일지 모르지만 윤리적으로 따지면 적인종이 아니라 따스한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부근에 있는 육군형무소로 이감되어 죽고 싶을 만큼 각종 형벌에 시달리게 된다.

그 과정을 상세하게 가슴 아프게 토로해놓았다.

그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잘도 그려낸 소설이다.

그 시대의 감정에 처해있는 것처럼 가슴이 아려오고 눈물겨웠다.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고통받고 죽었다니, 그 시대의 인생살이가 얼마나 고달팠는지 이 책을 통해 바라본다.

"제가 그들의 시신에 경의를 표한 것은, 인간에 대한 순수한 경외심 때문입니다. 시신 자체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으로서 기능할 수 없는, 물질일 뿐입니다. 제가 직접 사살한 건 아니지만, 우리 소대 부하들이 한 일이니 적의 죽음은 저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적장이 죽었을 때 모자를 벗고 예의를 표한 경우도 있습니다." (67쪽)

너무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생각인데, 그 생각과 행동으로 평생을 고통받고 살 수도 있다니, 그것이 원통하고 애절하기만 했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각종 형벌을 받으며 견뎌낸 그의 삶이 너무 처절했다.

암담한 시대를 살다간 그 시대의 그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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