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사랑의 기술』(1956), 『소유냐 존재냐』(1976)와 같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쓴 사상가다. 프롬이야말로 20세기 사상가 중에서 일반 대중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사상가일 것이다. 『사랑의 기술』은 세계 전역에서 무려 2,500만 부가 팔렸으며, 오늘날까지도 하버드대학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힌다. 『소유냐 존재냐』 역시 전 세계적으로 1,500만 부 이상 팔렸다. 철학자 중에서 일반 대중에게 이렇게 많이 읽힌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19쪽)
에리히 프롬은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중의 큰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 전문 철학계에서는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했나 보다. 깊이 없는 통속적인 사상가라고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찬국 교수의 생각은 어떠할까.
나는 프롬이야말로 심원한 사상을 명료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개진한 대표적인 사상가라고 생각한다. 또한 프롬의 글은 정신분석가로서의 체험을 담고 있어서 매우 구체적이다. 약간이라도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면 프롬은 항상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프롬이 이렇게 글을 쓴 이유는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글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프롬의 글쓰기에서 독자들에 대한 존중을 본다. (22쪽)
쇼펜하우어에 대한 책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는 지금도 점점 에리히 프롬에 한 걸음 한 걸음 호감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처럼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다. 호기심이 점점 커지면서 말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에리히 프롬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었구나, 새삼 깨닫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니 무의 상태에서 하나씩 알아가는 시간이 더욱 경이롭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프롬이 대중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일으켰던 또 하나의 원인은 프롬의 개방적이고 균형 잡힌 사유 태도에 있다. 프롬은 인류 역사에 나타난 다양한 종교적·철학적·심리학적 통찰을 폭넓게 수용하면서, 이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종합한 사상가다. 프롬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종합 능력은 20세기 사상가 중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프롬은 특정한 종교는 물론이고 철학이나 심리학의 어떤 특정한 사조에 구속되지 않고, 선불교, 유대교 신비주의, 기독교 신비주의, 실존철학, 마르크스 사상,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의 통찰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 인간의 성장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모든 통찰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24쪽)